웅장한 ‘셰익스피어 극’ 보는 듯한 늑대 복원 프로젝트 [.txt]
1995년 ‘재야생화 프로젝트’에 합류한 ‘늑대 해설가’
하루 10시간 넘게 관찰한 기록 바탕으로 재구성

늑대 8은 “너무 작아서 하마터면 찾지 못하고 내버려둘 뻔”했다. 1995년 캐나다에서 잡은 늑대 열네마리가 미국 옐로스톤 국립공원으로 이동했다. 옐로스톤 늑대 복원 프로젝트의 일환이었다. 잿빛 늑대 8은 크리스털크리크 무리의 일원으로 이 무리는 알파 수컷과 암컷 아래 네명의 형제로 구성되었다. 8번은 다른 덩치 큰 검정 형제들에게 괴롭힘 당하곤 했다. 잠을 잘 때도 멀찌감치 떨어져서 잤다. 자고 있는데 형제들이 덤벼들면 8번은 도망쳤다. 잠시 맞섰다 싶다가도 줄행랑을 놓았다. 고기도 맨 마지막에 먹었다. 서열이 가장 낮다는 표시였다. 그런 8번이 로즈크리크 무리의 알파 수컷이 된 데는 몇 가지 행운이 따랐다.
로즈크리크 무리의 알파 수컷 10번은 인간에 의해 불법 사냥당했다. 수컷이 죽은 날 그 무리의 알파 암컷 늑대 9는 여덟마리의 새끼를 낳았다. 수컷이 없는 상태에서 암컷이 사냥을 나가게 되면 새끼가 위험할 수 있었다. 늑대 프로젝트팀은 무리를 울타리에 가두고 먹이를 제공했다. 그런데 폭풍이 불어 울타리 구멍이 뚫렸고 장난꾸러기 새끼들이 구멍으로 나갔다. 야단법석 끝에 울타리 안으로 집어넣었지만 결국 세마리를 찾지 못했다. 어느 날 늑대 8이 이들 울타리 밖의 새끼들과 즐겁게 노는 것이 관찰되었다. 꽤 친한 사이로 보였다. 곧 보호 시기가 끝나 울타리 밖으로 나온 9번 암컷은 8번을 ‘페어 본드’(짝짓기 전의 일자일웅 관계)로 받아들인다. 더 성장하자 늑대 9번은 늑대 8을 자신을 지켜줄 수컷으로 선택한다. 10번이 죽지 않았더라면, 울타리 구멍이 뚫리지 않았더라면, 새끼랑 친해지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못할 일이었다. 늑대 8은 책임감과 성실함으로 무리를 이끌어나가고 가장 세력이 큰 무리로 키워낸다.

늑대 프로젝트는 생태계 균형을 복원하기 위해서 시행됐다. 옐로스톤이 국립공원(한국 전라도 정도의 면적)으로 지정되면서 입장객들의 안전을 위해 정부는 늑대 박멸에 나섰고, 1926년 마지막 늑대가 사살된다. 그 뒤 ‘안전’해진 옐로스톤에는 풀이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엘크가 증가했다. 5천마리의 적절 수용량인 엘크는 1만9천마리까지 증가했다. 캐나다에서 늑대 34마리 늑대를 데려와 이 균형의 추를 옮긴다는 야심 찬 계획은 이후 재야생화의 ‘교과서’로 불릴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엘크는 최종적으로 6000~7000마리 수준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이 프로젝트에 ‘늑대 해설사’로 릭 매킨타이어가 투입된다. 매킨타이어는 알래스카에서 늑대를 20년간 관찰하면서 책을 여러권 썼고 늑대 프로젝트의 강력한 지지자였다. 늑대 해설사의 일은 관광객들에게 프로젝트를 설명해주고 망원경을 빌려줘서 그들이 눈으로 보고 생태계 복원의 정당성을 실감하게 하는 것이었지만, 그는 그 이상을 해냈다. 1999년 여름과 가을 일주일 평균 78시간씩 일하며 “어쩌면 나는 그해 여름 연방정부에 고용된 직원 가운데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고 할 정도로 늑대 관찰에 공을 들였다. 2000년~2015년 6175일간 연속으로 야외 관찰에 나섰고, 25년간 기록한 관찰일지는 1만2000쪽, 관찰 횟수는 9만9937회에 이르렀다. 프로젝트의 리더인 더글러스 스미스는 “오직 릭을 통해서만 이 경이적인 위업에, 즉 늑대의 사고를 이해하는 길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한다.

‘울프 8’은 방대한 관찰일지와 주변 프로젝트 참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쓴 ‘옐로스톤 알파 늑대’ 시리즈의 첫번째 책이다. 소설이 아니라는 점을 빼고 ‘시튼 동물기’나 ‘라이언 킹’와 비슷하다. 늑대의 놀이와 교육, 사냥 방법, 세력 간의 관계 등을 세밀하게 서술하면서도 개체의 서로 다른 성격과 비밀, 그들의 주어진 운명을 흡인력 있게 그려낸다. 거기다 처음에 가졌던 의문을 뒤에 가서 밝히는 식으로 ‘다큐멘터리적 수법’으로도 집중력을 높인다. 참여자에게 번호를 준다는 면에서 ‘짝’ 같은 관찰 예능 같지만, 작가가 노린 건 운명이 내포한 비극과 관계가 자아내는 긴장감으로 사람을 옴짝달싹 못하게 하는 셰익스피어 극이다. 실제로 어떤 장 제목은 ‘로미오와 줄리엣’. 그래서 빨려들어 읽다 보면 순식간에 끝장의 비극에 닿는다.

늑대 8은 자기 자식이 생기고도 의붓자식들에게 기꺼이 식량을 나눠 주었다. 모든 늑대가 8번처럼 관대하진 않다. 그런 아버지 밑에서 무리는 관용적으로 운영된다. 의붓자식 중 하나인 21번은 8번을 향해 언제나 복종하는 자세를 취했고 그를 거스르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 2년간 짝짓기도 늦추면서 늘어가는 무리의 동생과 조카를 돌본다. 무리의 베타 수컷인 21번은 뒤늦게 짝을 찾아 떠난다. 그리고 찾아간 곳은 바로 8번의 친아버지를 무찌른 ‘무법자’ 드루이드 무리. 21번은 그 무리의 알파 수컷으로 자리 잡는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로즈크리크 무리와 드루이드 무리가 일전을 치러야 할 때가 온다. 겨울 하울링을 통해 서로의 존재를 확인해가며 긴장감이 높아져 간다. “8번의 관점으로 보면, 지금 다가오는 적은 자신의 가족 셋을 죽인 원수다. 21번의 입장에서 적들은 지난해에 태어난 새끼 여섯마리 가운데 넷을 죽였다. 이것은 21번에게는 질 수 없는 싸움이 될 터였고, (최근 사냥에서 크게 다친) 8번에게는 승산이 없는 싸움이 될 듯했다.” 그리고 실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일전이 벌어진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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