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보리창고’…“정부, 수급안정에 적극 나서야”
농협 대부분 계약물량 확보 못해
일부지역, 계획 대비 30% 수준
재배면적 줄고, 작황부진 겹쳐
생산량 부족에 가격 급등 이어져
흉작 지속…재고량 감소도 ‘한몫’


“창고에 보리가 없습니다.”
16일 찾은 전북 김제 금만농협의 쌀보리 저장시설. 산물수매를 하는 농협인 만큼 예년 같았으면 보리로 가득 차야 했을 창고가 휑했다.
최승운 금만농협 조합장은 “예년 이맘때 쌀보리 수매량이 600t인데 현재 120t밖에 없고 더 들어올 물량도 60t정도에 불과하다”면서 “역대 최악의 작황이었던 지난해에도 이 시기에 320t은 들어왔는데 올해는 더 심각하다”고 한숨을 쉬었다.
보리 수확기를 맞아 주산지 관계자들이 당혹감에 휩싸였다. 물량 부족으로 산지 거래가격이 치솟으면서 농협 수매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남·전북·제주 등 보리 주산지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대부분의 농협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농협경제지주의 계약재배 대행물량을 채우지 못할 위기에 처해 있다. 농협경제지주와 한국주류산업협회는 보리 재배농가의 생산기반을 유지하기 위해 연간 5만t 규모의 계약재배를 이어가고 있다.
채병덕 전북 익산 오산농협 조합장은 “수매철이지만 들어오는 물량이 없다”면서 “재배가 잘 안된 농가일수록 줄어든 수확량으로 수익을 극대화하고자 민간에 물량을 넘기고 있어 농협도 뭐라 할 수가 없다”고 말했다.
고재우 제주고산농협 상무는 “최악의 경우 올해 수매물량은 계획 대비 30% 수준에 머물 수 있다”고 진단했다.
물량 부족의 근본 원인은 재배면적 감소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보리 적정 생산량은 연간 12만여t으로, 적정 단수(10a당 400㎏)로 계산 시 재배면적이 2만9000㏊ 수준이다. 하지만 통계청에 따르면 보리 재배면적은 2021년 2만8800㏊를 정점으로 이후 2만3000∼2만5000㏊에 머무르고 있다.
여기에 전남과 제주지역의 작황 저조까지 겹치면서 생산량이 평년 수준을 밑돌 것으로 예상된다.
전남도농업기술원 관계자는 “전남의 경우 보리 줄기가 옆으로 갈라지며 자라는 3월 분얼(分蘖)기 때 기온이 낮고 강우량이 부족해 줄기수가 줄었다”며 “일반적으로 보리 한포기에서 줄기 6∼7개가 나와야 하는데 올해는 3∼4개로 줄기가 적게 나온 만큼 이삭수도 줄어 전체 수확량 감소로 이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김남철 농협맥류전국협의회장(전남 영광 굴비골농협 조합장)은 “지난해 일조량 부족으로 보리 작황이 부진했는데 올해에도 면적당 수확량이 평년보다 10∼20% 감소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물량 부족은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주미옥 영광 백수농협 상무는 “40㎏ 기준 찰보리는 8만1000원, 쌀보리는 7만5000원에 거래되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며 “보리 작황이 나빴던 지난해에도 5만∼6만원에 거래됐는데, 재배면적 자체가 줄고 재고량도 감소하다보니 올해 가격이 크게 뛰었다”고 했다.
김기수 전북 서군산농협 조합장은 “쌀보리는 7만5000원선, 겉보리는 6만원대를 넘어섰다”면서 “자고 일어나면 보리가격이 몇천원씩 오른다고 할 정도”라고 짚었다.
최근 몇년 새 흉작이 이어지면서 보리 재고가 바닥난 것도 가격 상승을 부추긴다. 농협경제지주에 따르면 보리 재고량은 2020년말 7만7000t, 2021년말 6만3000t, 2022년말 2만8000t, 2023년말 1만2000t으로 해마다 줄어 지난해엔 3000 t수준까지 떨어졌다.
박현수 농협경제지주 전작사업팀 과장은 “재배면적 감소로 인한 절대적인 생산량 부족이 몇년간 지속된 결과 산지유통인들이 물량을 넉넉히 확보하려는 차원에서 가격을 높이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주산지 농협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주 상무는 “시중 거래가격과 농협 계약재배가격 차이가 2배 가까이 나다 보니, 농민들이 당장 수확한 물량을 내놓지 않고 관망하는 분위기”라며 “보리 매입에 차질을 빚으면 내년도 물량에 영향을 미치는 등 불이익이 있을지 우려된다”고 밝혔다.
김영호 제주 한림농협 단장은 “재배면적과 면적당 생산량이 동시에 감소하는 현상이 지속될 것”이라며 “최근 농협경제지주 수매단가와 시세 간 차이가 커져 이를 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농협경제지주의 보리 계약단가는 주정용 쌀보리 40㎏들이 한포대당 3만8000원이며 수확기 시세를 반영해 최대 3000원까지 추가 지원된다.
이에 정부가 보리 수급안정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최 조합장은 “정부가 2012년 보리 수매제를 포기한 뒤로 정책적 지원은 사실상 손을 놔버렸고, 다른 동계작물인 밀만 전략작물직불금을 받게 된 이후 농가들의 재배의향이 크게 꺾였다”면서 “보리의 적정 생산량에 맞게 수급 조절할 수 있도록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제·군산·익산=윤슬기, 영광=이시내, 제주=심재웅 기자 sgyoon@nongm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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