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웰다잉’ 마지막을 존엄하게 (3)연명의료, 누구를 위한 것인가
연명의료 중단 놓고 ‘자기결정권’과 ‘생명 존중’ 찬반
복잡한 절차와 제도적 한계로 실효성 논란 지속
한국, 임종기 환자만 대상…해외는 말기환자까지 허용

니어링의 선택은 극단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의 이야기가 던지는 질문은 오늘날 우리 모두가 마주해야 할 현실이다. 사람이 삶의 끝을 어떻게 마무리할 것인지는 단순한 의료 행위의 선택을 넘어, 인간의 존엄성과 사회의 철학을 묻는 본질적인 문제다. 특히 의료 기술이 고도화되면서 죽음마저 ‘선택’할 수 있는 시대가 되자, 이른바 ‘연명의료(연명치료)’를 둘러싼 논의는 한국 사회에서도 점점 더 현실적인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현행법상 한국의 연명의료 중단은 ‘임종기’, 즉 사망이 임박한 상태에서만 가능하다. 환자가 연명의료를 받지 않으려면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먼저 담당 의사와 해당 분야 전문의 1인으로부터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라는 의학적 판단을 받아야 한다. 임종 과정에 있는 환자란 회생 가능성이 없고 치료에도 더 이상 회복되지 않으며, 급속도로 증상이 악화해 사망에 임박한 상태를 의미한다.
이후 환자 또는 환자 가족이 연명의료를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고 그다음 환자가 의사를 표현할 수 있는 상태면 담당 의사만, 의사 표현을 할 수 없다면 담당 의사와 전문의 1인의 확인이 있어야 한다. 연명의료계획서 작성, 사전연명의료의향서 확인, 환자 가족의 진술과 합의 등의 과정을 모두 거쳐야 비로소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한계가 있다. 근원적인 회복이 불가능한 말기 환자나 의사결정이 어려운 식물 상태, 중증 치매 환자는 이 제도의 적용 대상에서 제외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는 환자가 의식 없이 장기간 연명의료를 이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환자가 미리 연명의료 거부 의사를 밝혀도, 의사는 현행법에 따라 임종이 시작되기 전까지는 치료를 중단할 수가 없다. 이에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임종까지 기다리는 시간은 환자에게 고통이고, 한편으로는 자원 낭비이며 가족들도 환자 상태가 더 나빠지는 걸 보고 있어야 하느냐”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찬성 측은 “연명의료 중단은 환자의 존엄한 죽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장치”라고 말한다. 불필요한 고통과 의료비 지출을 막고, 삶을 스스로 마무리할 수 있는 권리를 존중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특히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와 행복추구권이 중요해진 현시대에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것으로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 호스피스 담당 의사는 “의미 없는 생명 연장보다는 환자와 가족이 남은 시간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진정한 의료”라고 말했다.
반면 반대 측은 “연명의료 중단은 제도의 남용 가능성과 판단의 불명확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로는 환자의 의사가 아니라 가족의 판단이나 ‘연명치료를 하지 말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 혹은 경제적 상황에 따라 연명의료 중단이 이뤄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 생명윤리 전문가는 “환자 본인의 진정한 의사인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려는 배려인지 구분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며 “자칫 ‘사회적 압력’에 의한 선택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밖에 제도의 실효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복잡한 서류 절차와 상담 체계 부족 등으로 제도 이용이 쉽지 않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환자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를 대비한 대리인 제도다. 영국은 ‘의사능력법’에 따라 의사 능력이 결여된 환자에게 가족이나 친구가 없으면 ‘의사결정지원제도(IMCA)’를 운영한다. 대변인이 환자의 과거 신념이나 치료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의견서를 내면 의사가 연명의료 여부를 판단한다. 미국 역시 사전지시서를 통해 환자 본인이 대리인을 지정할 수 있어 자율적인 선택권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도 변화의 움직임이 있다. 정부는 2024년 ‘제2차 호스피스·연명의료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상담 인프라 강화, 호스피스 기관 확충, 의료기관 내 임종실 설치 등을 예고했다. 하지만 아직 ‘연명의료 중단’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더 필요한 상황이다.

같은 날 이일학 연세대 의료법윤리학과 교수도 “말기 단계에서의 연명의료 중단을 허용해야 한다”고 동의하며 “환자가 삶의 질과 가치에 대해 이해하고 치료 목표에 대한 명확한 의견을 내는 등 진정한 자기결정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죽음을 미리 이야기하는 것은 여전히 낯설고 조심스러운 주제다. 하지만 웰다잉이 단지 ‘아프지 않게 죽는 것’이 아니라 ‘나답게 마무리할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합의라면, 연명의료결정제도는 그 중심에 놓여 있다. 100살까지 살며 자신만의 철학으로 죽음을 맞이한 스콧 니어링처럼 모든 사람이 극단적인 선택을 할 필요는 없다. 중요한 것은 선택할 수 있는 권리와 그 권리를 존중하는 사회적 분위기다.
이제는 법과 제도의 틀을 넘어, 사회 전체가 죽음과 마주할 용기를 낼 때다. 과연 연명의료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이 질문을 외면하지 않는 일이 진정한 웰다잉의 출발점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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