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여는 시]수묵 정원 9-번짐 - 장석남

이건상 기자 2025. 6. 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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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이미지뱅크

수묵 정원 9-번짐
                  장석남

번짐,
목련꽃은 번져 사라지고
여름이 되고
너는 내게로
번져 어느덧 내가 되고
나는 다시 네게로 번진다.
번짐,
번져야 살지
꽃은 번져 열매가 되고
여름은 번져 가을이 된다.
번짐,
음악은 번져 그림이 되고
삶은 번져 죽음이 된다
죽음은 그러므로 번져서
이 삶을 다 환히 밝힌다
또 한 번 저녁은 번져 밤이 된다.
번짐,
번져야 사랑이지
산기슭의 오두막 한 채 번져서
봄 나비 한 마리 날아온다.

번짐, 번진다는 것이 이렇게 멋질 때가 있다.
먹물이 번져가며 수묵화를 완성하듯이, 이 시는 번짐을 모티프로 시상을 전개한다.
여기서 번짐은 관계들을 서로 스며들게 하고, 조화롭게 이어지게 한다.
목련꽃은 여름으로, 너는 내게로 나는 네게로, 꽃은 열매로, 여름은 가을로, 음악은 그림으로, 삶은 죽음으로 죽음은 삶으로, 저녁은 밤으로, 산기슭 오두막은 봄 나비 한 마리로 번진다.
이처럼 번짐을 통해 자연과 인간과 시간이 서로 연결되고, 순환되고, 변화되고, 확장된다.
번져야 사랑인 것처럼 사람들의 관계는 서로 물들며 동화되는 것이다. 너와 내가 따로가 아닌 우리로 번지듯이, 우리 정답게 물들면서 살자.

정훈탁 / 광주 국어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