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봉준 등 동학서훈 문제를 해결해야

박용규 2025. 6. 19.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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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규(민족문제연구소 연구위원)
박용규 연구위원

국가보훈부는 똑같은 독립운동을 했음에도 을미의병 참여자들(1895)은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1894)은 서훈하지 않고 있다. 2025년 3월 기준으로 1만8천258명의 전체 독립유공 서훈자 가운데 의병 참여자 2천739명이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았다.

국가보훈부는 1962년에 정한 '독립운동의 시작은 을미의병이다'라는 독립유공 서훈 내규를 가지고, 지금까지 을미의병(1895) 참여자 145명을 서훈했다. 잘한 일이었다. 다만 1962년에는 동학농민혁명 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가 서훈 대상에서 빠진 것이었다.

동학농민혁명 1백주년이 되던 1994년을 전후로 한국 역사학계는 수많은 동학농민혁명 연구 성과물을 쏟아냈다. 그 결과 1990년부터 독립운동의 시작이 종래의 을미의병에서 갑오의병(1894)과 2차 동학농민혁명(1894)으로 독립운동의 기점이 바뀌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가보훈부는 1962년에 제정한 '독립운동의 시작은 을미의병(1895)부터다'라는 서훈 내규를 가지고, 지금까지 전봉준 등 2차 항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서훈을 반대하여 왔다. 63년이 지난 현재도 바꾸지 않고 있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들이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아야 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수용하여 '동학농민명예회복법'2004)에서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를 "1894년 9월에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국권을 수호하기 위하여 2차로 봉기하여 항일무장투쟁을 전개한 농민 중심의 혁명참여자"로 규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역사학계는 국권수호운동과 항일무장투쟁을 항일 독립운동으로 본다.

둘째로,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여 2024년 발행된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에 1905년의 을사의병과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1894)를 모두 항일구국투쟁으로 서술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 '고등학교 국사 교과서'에서 2025년 9종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까지 45년 동안 2차 동학농민운동을 일본군을 몰아내려고 한 항일투쟁 즉 독립운동으로 기술하여 가르쳐왔다. 을미의병(1895)과 을사의병(1905) 참여자는 독립유공자로 서훈하고 있다. 전봉준 등 동학농민운동 2차 봉기 참여자는 단 한명도 서훈하지 않고 있다. 국가보훈부가 서훈에서 형평성을 위반하고 있다.

셋째로, 한국의 대다수 역사학자들이 2차 동학농민혁명을 독립운동으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 강단에서 수십 년간 교재로 사용한 '한국독립운동사 강의'(1998)에서 한국 독립운동이 1894년 갑오의병과 동학농민전쟁의 2차 봉기에서 시작되었다고 가르쳐왔다. 저명한 청일전쟁 연구의 대가인 일본 나라여자대학 나카츠카 아키라(中塚明) 교수는 2차 동학농민혁명이 '조선의 민족독립운동'이고, '동아시아 민족독립운동의 선구'라고 저서와 논문에서 여러 차례 주장하였다.

을미의병 시기 일본군과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이 236명이었고, 관군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의병이 60명이었다. 전사자가 총 296명이었다. 전사자가 대략 300여 명이었다. 을미의병 참여자는 현재 145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되었다.

이에 반해 2차 동학농민혁명은 참여자와 전사자의 규모에서 을미의병을 능가하였다. 나카츠카 아키라 교수는 일본군이 동학농민군을 모조리 살육했는데, 희생된 농민군 사망자가 3만 명, 부상당한 뒤 사망한 자를 포함하면 5만 명에 육박하는 것으로 보았다. 전사자를 비교할 경우 을미의병 전사자 보다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의 전사자가 100배 이상으로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국가보훈부로부터 현재까지 단 한명도 서훈을 받지 못하고 있다.

유족이 있는 2차 동학농민혁명 참여자는 481명(2024년 9월 20일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현황 동학농민혁명기념재단 자료 제공)에 불과하다. 국가의 예산 소요도 매우 적다.

올해는 광복 80주년이 되는 해이다. 현재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와 정무위원회에서 동학서훈을 다루는 법률안을 심사하고 있다. 지난 6월 6일 현충일 추념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은 "독립운동하면 3대가 망하고, 친일하면 3대가 흥한다는 말은 이제 영원히 사라져야 한다"라고 말하였다. 독립운동하면 3대가 흥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 아직도 미서훈하고 있는 2차 항일 동학투사들(전봉준 등) 서훈에도 나서주기를 바란다.

※외부 칼럼·기고·독자투고 내용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