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신이 들려주는 타이완의 기억… 장자샹 데뷔작 '밤의 신이 내려온다' 출간

곽성일 기자 2025. 6. 19. 15: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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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신이 내러온다.
악과 소설, 두 세계를 오가며 타이완 문단과 음악계를 동시에 뒤흔든 젊은 천재 장자샹(張嘉祥)의 데뷔작 『밤의 신이 내려온다』가 민음사에서 출간됐다.

원제는 '야관순장(夜官巡場)'. "야관"은 낮은 자들의 편에 선 밤의 신, 이 신이 길 잃은 귀신들과 함께 타이완 들판을 순찰하는 장면은 이 소설의 세계관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장자샹은 타이완 인디 록 밴드 '좡커런(莊克人)'의 리더이자 보컬이기도 하다. 그는 이 작품을 쓰기에 앞서, 동일한 테마를 바탕으로 한 앨범 『야관순장』을 먼저 발표했고, 음악과 문학 양쪽에서 모두 격찬을 받았다. 이번 2025 서울국제도서전 타이완 주빈국 참가를 통해 장자샹은 밴드 멤버들과 함께 한국 독자들과의 만남을 예고하고 있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타이완 남부 자이현 민슝 지역의 작은 마을에서 자란 '나'와, 귀신을 보는 소녀 '저우메이후이'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유년의 기억, 고향에 대한 불안과 그리움, 그리고 밤마다 들판을 행진하는 귀신들의 이야기 속에 타이완의 역사적 상처가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민간신앙과 지역 야사, 그리고 1947년의 참혹한 2·28 사건을 하나의 서사로 엮어냈다. 이 사건은 한국의 제주 4·3과 유사하게, 국민당 정권의 강압 속에서 수만 명의 타이완인이 희생당한 비극적 역사다. 작가는 이러한 시대의 피맺힌 흔적을 밤의 신들과 억울한 귀신들의 이야기로 승화시켰다.

장자샹의 문체는 애수와 절제가 깃든 담백한 수사로, 귀신 이야기의 전형을 따르지 않으면서도 그 너머를 비춘다. 공자가 "괴력난신을 말하지 않았다(子不語怪力亂神)"고 했지만, 타이완 민중의 입과 마음은 늘 귀신과 신의 이야기로 살아 숨 쉬어왔다. 귀와 신의 경계가 희미한 이 땅에서, 밤의 신은 신이지만 한때는 귀였고, 귀는 또 살아남은 자들의 상흔이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을 연상케 하면서도, 훨씬 더 토착적인 판타지와 리얼리티의 결합을 보여준다. 야신(夜神), 고혼(孤魂), 들개와 나무, 벌레와 바람까지, 모두가 슬픔의 공평함 속에서 평등하게 호명된다.

장자샹은 창작을 통해 금지된 기억을 소환한다. 국민당 정권 시절 탄압받았던 타이완어를 처음 익히고, 그 언어로 노래하고 글을 썼다. 『밤의 신이 내려온다』는 단순한 귀신 이야기를 넘어, 언어와 정체성, 뿌리에 대한 고민과 복원의 여정을 담아낸다. 작가는 역사와 감정을 하나로 묶는 새로운 문학의 가능성을 이 소설에서 실현해냈다.

소설과 함께 발표된 앨범 『야관순장』은 전통 악기와 록 사운드가 어우러진 실험적인 음악으로, 장자샹 특유의 정서를 깊게 전한다. 독자들은 소설을 읽고 음악을 들으며, 텍스트와 음의 경계를 허무는 체험을 하게 된다. "귀신이 없다는 말이 더 무섭다"고 말하는 독자 요조의 추천처럼, 이 작품은 생과 사, 기억과 망각,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기묘한 위로와 활기를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