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 6·25전쟁 호국영령 11위 합동안장식 엄수
호국영령 총 11위에 대한 합동안장식 실시

육군은 지난 16∼18일 국립영천호국원과 국립대전현충원, 국립서울현충원에서 6·25 전쟁 전사자 11명의 유해를 합동 안장하는 행사를 엄수했다고 밝혔다.
오두용 하사(상병·이하 현 계급)와 김영기 하사, 주영진 일병의 유해는 국립대전현충원에, 김익장 이등중사(병장)와 이찬규 이등중사, 정인학 일등중사(하사), 김석연 일병, 강성순 하사, 함상섭 하사, 조영호 일병의 유해는 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박용수 일병의 유해는 지난해 별세한 동생 박광수(베트남 참전용사)씨가 영면한 국립영천호국원에 안장됐다.
고인들의 유해는 2000년부터 지난해까지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후방 각지에서 발굴됐다. 이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DNA 정보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이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고인들의 유해는 2000년부터 2024년 사이 6·25전쟁 당시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후방 각지에서 발굴됐다. 이후 유전자 시료 채취에 참여한 유가족 DNA 정보를 통해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최종적으로 신원을 확인했다.
고 오두용 하사는 1931년 경남 고성군에서 3남 2녀 중 넷째로 태어나, 1950년 11월 입대했다. 2사단 소속으로 ‘안동지구 공비토벌작전’, ‘천계산·백운산 진격전’ 등에 참전했으며, 1951년 8월 3일 ‘적근산 734고지 전투’에서 대규모 중공군과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막내 여동생 오점순씨는 “연락을 받기 전날 밤 꿈에서 고향집에 돌아오는 오빠를 마주했다”며 “오빠를 국립묘지에 묻어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 김영기 하사는 1931년 강원 정선에서 태어나 1953년 1월 부인과 8개월 된 아들을 남겨두고 입대했다. 8사단 소속으로 여러 전투에 참여했으며, 정전 10여 일을 앞둔 1953년 7월 ‘금성지구 전투’에서 전사했다. 아들 김성록씨는 “내가 죽기 전 아버지를 모셨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갖고 있었다”며 “생전 어머니께서 주신 아버지 사진이 유해를 찾기 위해 노력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고 말했다.
고 주영진 일병은 1932년 태어나 전북공립중학교에서 교련연대장을 지낼 정도로 의협심과 리더십이 강했다. 전쟁이 발발하자 대구 제1훈련소에 학도병으로 자원입대하여 6일 만인 1950년 8월 ‘기계·안강전투’에서 전사했다. 당시 고인은 “전쟁이 나서 나라가 어렵기에 빨리 가야한다”며 집을 떠났다고 한다. 친조카 주명식씨는 “호국의 성지인 대전현충원에 삼촌을 모시게 돼 큰 영광”이라고 밝혔다.
고 김익장 이등중사는 1930년 전북 옥구군(현 군산시)에서 4남 4녀 중 셋째로 태어났다. 군산사범대학교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자원입대했다. 1사단 소속으로 후방지역 잔적소탕과 ‘38도선 진격작전’을 수행하였으며, 1950년 10월 20세의 나이로 장렬히 전사했다. 미국 뉴욕에 거주 중인 동생 김삼장씨는 “형의 유해를 찾은 것은 우리 가족에겐 기쁜 일이면서도 슬프고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고 말했다.
고 이찬규 이등중사는 1923년생으로 임신한 아내를 뒤로 한 채, 1950년 12월 대구 제1훈련소로 입대했다. 8사단에 배치돼 횡성전투, 노전평 전투에 참가했으며, 1951년 10월 백선산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아내는 평생을 이 이등중사를 기다렸으나 결국 2019년 91세의 일기로 사망했다. 이번 전사자 신원확인에 따라 부부는 75년 만에 함께 서울현충원에 합장될 수 있게 됐다.
고 정인학 일등중사는 1932년 전북 정읍시에서 9남 5녀 중 둘째로 태어났다. 1951년 9월 육군 7사단에 입대했으며, 휴전 협상이 막바지였던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여동생 정병숙씨는 “DNA시료 채취할 때와 유해를 찾았다는 연락을 받기 전 어머니와 아버지가 각각 꿈에 나오셨다”며 “아마 오빠의 유해를 받으라고 오셨던 것 같다”고 말했다.
고 김석연 일병은 1922년생으로 6·25전쟁 피난길 과정에서 아내가 사망하고 둘째 아들은 미처 데리고 오지 못했다. 고인은 1950년 8월 카투사로 입대했고, 같은 해 장진호 전투에서 전사했다. 고인의 딸인 김문숙 씨는 “너무 어린 나이였기에 솔직히 아버지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만,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이제 아버지라는 실체가 느껴진다”며 “아버지를 찾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소회를 밝혔다.
고 강성순 하사는 1931년 9월 경기 고양시에서 1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49년 7월 입대해 7사단 소속으로 군 생활을 하던 그는 6·25전쟁 발발 당일에 ‘운천-포천-의정부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했다. 고인의 아들 강기남씨는 “아버지가 북한에 포로로 끌려갔다고 생각하며 언젠가 살아 돌아오실 것이라 믿었으나, 제 나이 일흔이 넘으면서 포기하고 지냈다”며 “이제라도 아버지의 유해를 찾아 현충원에 모실 수 있어 다행이다”고 말했다.
고 함상섭 하사는 1925년생으로 1953년 1월 아들과 딸을 남겨둔 채 제주도 제1훈련소로 입대하였다. 7사단 소속으로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 참전해 치열한 교전을 벌이던 중 전사했다. 아들 함재운씨는 “아버지의 유해를 찾았다고 하니 멍한 느낌이 든다”며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고 이상한 기분이다. 단지 목이 멜 뿐이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고 조영호 일병은 1929년생으로 1953년 1월 어린 두 딸을 두고 제주도 제1훈련소에 입대했다. 11사단에 배치된 그는 1953년 7월 ‘적근산-삼현지구 전투’에서 장렬히 전사하였다. 둘째 형 고 조을호씨도 6·25전쟁에 참전했으며, 넷째 동생 고 조임호씨는 의용군으로 참전해 복귀했으나 무장공비에게 피살당해 생을 마감했다. 큰형 고 조균호는 일제에 강제징용되는 등 형제가 모두 굴곡진 한국의 근현대사를 겪었다.
고 박용수 일병은 1928년생으로 아내와 첫째 딸, 그리고 뱃속의 아기를 남겨둔 채 입대했다. 8사단 소속으로 ‘양양-강릉전투’에 참전한 그는 북한군과 맞서 싸우다 장렬히 전사했다. 1974년 파독 간호사로 독일에 거주 중인 고인의 딸 박동옥씨는 “아버지의 유해가 돌아와 벅찬 감격과 함께 눈물이 난다”며 “형님을 찾기 위해 평생 노력하신 막내 삼촌이 계신 영천호국원에 아버지의 유해를 모시고 싶다”고 말했다.
고창준(대장) 육군참모총장 직무대리는 조사를 통해 “육군 전 장병은 선배님들의 고귀한 희생과 헌신으로 지켜온 대한민국이 더욱 빛날 수 있도록 국군의 사명 완수에 진력하겠다”며 “아직도 찾지 못한 또 다른 호국영웅님들의 유해를 마지막 한 분까지 가족의 품으로 모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정충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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