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시는 모두 거세? 고려땐 ‘남성’ 유지한 엘리트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2025. 6. 19.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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쪼그라진 어깨에 구부정한 허리, 수염 없는 민얼굴에 가늘고 날카로운 눈초리, 가냘픈 체격에 중성적인 비음의 목소리.

고려 때는 내시와 환관이 따로 있었다.

조선 세종 때 고려 내시를 내직(內直)으로 개칭했다.

이로써 환관과 구별되는 고려 내시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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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규회의 뒤집어보는 상식

쪼그라진 어깨에 구부정한 허리, 수염 없는 민얼굴에 가늘고 날카로운 눈초리, 가냘픈 체격에 중성적인 비음의 목소리. 흔히 아는 내시(內侍)의 부정적인 모습이다.

내시는 남성 상징이 없는 사람일까? 조선의 내시에 관한 한 맞는 얘기다. 조선 내시는 남성 기능을 상실한 환관이었다. 하지만 고려의 내시는 성격이나 신분이 완전히 달랐다. 고려 때는 내시와 환관이 따로 있었다.

고려 내시는 가문과 학식, 재능과 용모가 출중한 최고 엘리트 집단이었다. 의종 때 내시는 권문세가의 자제로 구성된 좌번(左番)내시와 유사(儒士)로 구성된 우번내시의 이원적 조직으로 확대됐다. 내시는 왕 행차 시 동행, 왕명 초안 작성, 국가 기무(機務) 관리, 유교경전 강의, 왕실 재정 담당 등의 일을 했다. 때로는 왕을 대신해 궁궐 밖 민정을 살피는 밀명도 주어졌다.

고려 건국부터 무신정변 이전까지 250여 년 동안 110여 명의 내시가 배출됐다. 여진 정벌로 유명한 윤관의 아들 윤언민,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 무신정권의 실력자 최충헌의 사위 임효명, 구재학당을 세운 최충의 손자 최사추, 조선 성리학의 시조로 불리는 안향 등이 내시를 지낸 대표적 인물이다.

물론 고려 시대에도 거세자는 있었다. 환관(宦官)·환자(宦者)라 불린 이들은 액정국(掖庭國)에 소속돼 궁중의 잡역을 담당했다. 환관은 대부분 노비, 무녀, 관비 소생, 특수 행정구역인 부곡(部曲) 출신이었다.

1356년(공민왕 5년)에는 환관의 관청이 새로 설치됐는데, 그 이름이 공교롭게도 내시부(內侍府)였다. 이때부터 내시부 소속 환관과 원조(?) 내시가 혼동되기 시작했다. 조선 세종 때 고려 내시를 내직(內直)으로 개칭했다. 이후 그 소임을 궁궐 숙위병인 충의위와 충찬위에 맡겼다. 이로써 환관과 구별되는 고려 내시제도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도서관닷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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