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노] 대통령이 된 소년공들

권혁범 기자 2025. 6. 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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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캐나다 앨버타주 캐내내스키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장에서 G7 및 초청국 기념 촬영 후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어깨를 감싸며 퇴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상 가장 먼 곳. 남미 대륙에 ‘개천 용’이 있습니다.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 브라질 대통령. 2002년 처음 대통령 당선증을 받았을 때 “내 인생 첫 증서”라며 눈시울을 붉힌 장면은 유명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가난에 찌들며 자랐습니다. 초등학교도 졸업하지 못했으니, 당선증이 그가 받은 ‘첫 증서’. 그는 2010년 두 번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퇴임했지만, 12년 만인 2022년 또다시 당선됩니다. 2억1000만 브라질 국민이 그에게 ‘세 번째 증서’를 안긴 겁니다.

1945년 태어난 그는 일곱 살 때부터 땅콩 장사와 구두닦이로 가족 생계를 돕습니다. 열 살 때까지 글을 읽을 줄도, 쓸 줄도 모르는 문맹. 열네 살 때부터 금속공장 노동자로 일하다가 사고로 왼쪽 새끼손가락 일부를 잃었습니다. 1969년엔 함께 공장에서 일했던 첫 아내가 산업재해성 질병으로 숨집니다. 임신 중이던 아내는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했다고 하네요.

그는 노동운동에 몸을 던집니다. 1975년 10만 명 조합원을 둔 금속노조 위원장으로 잇단 파업 투쟁을 이끕니다. 1980년엔 브라질 사상 최대 규모 파업을 주도해 이름을 알립니다. 이어 노동자당을 창당하죠.

1984년부터는 대통령 직선제를 이루려 민주화운동에 나섰고, 1986년 연방하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데뷔합니다. 내친김에 대통령이 되기로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현실 정치의 벽은 높았죠. 30년 만에 처음 치러진 1989년 직선제 대선에 이어 1994년, 1998년 세 차례 연속 낙선합니다.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2002년 3전 4기 끝에 61.3%의 압도적 득표율로 당선됩니다. 브라질 최초의 ‘좌파 대통령’. ‘친노조’ ‘반시장주의’ 인상이 강했지만, 취임 후에는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뜻밖의 보수’로 시장 친화 정책을 펴며 경제 성장을 이끕니다. 이에 더해 빈곤층을 위한 분배 정책을 적절하게 시행하죠.

2006년 재선에 성공한 뒤로는 저소득층 생계비 지원 확대를 앞세운 ‘보우사 파밀리아’ 정책으로 엄청난 지지를 받습니다. 2010년 그렇게 임기 8년을 마치고 물러날 당시 지지율이 무려 80%대.

룰라 대통령이 집권한 2003~2010년 브라질은 연평균 5% 안팎 ‘혁명적’ 경제성장률을 기록합니다. 외화 보유액은 집권 초기보다 10배 많은 3000억 달러에 육박했고, 국제통화기금(IMF)에 진 빚도 다 갚아 만성 채무국에서 채권국으로 전환했습니다. 2800만 명을 빈곤에서 구제했고, 3600만 명을 중산층에 편입시킵니다.

성공 신화만 있는 건 아닙니다. 재임 시절 뇌물수수와 돈세탁 혐의로 구속돼 2016년 1심에서 징역 9년 6개월, 2018년 2심에서 징역 12년 1개월을 선고받습니다. 그러나 2019년 11월 연방대법원이 “재판 절차에 흠결이 있다”며 파기환송을 결정하고, 이어 1·2심 선고 모두 무효가 되면서 시련을 극복합니다.

2005년 5월 25일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루이스 이나시오 룰라 다 실바 브라질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한·브라질 확대정상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구 정반대 편 룰라 대통령은 노무현 전 대통령과 종종 비교되기도 합니다. 그는 노 전 대통령 초청으로 2005년 한국을 국빈 방문해 큰 환영을 받기도 했는데요. 둘은 2003년 대통령으로 취임했고, 빈농의 아들로 태어나 젊은 시절 인권변호사와 노동운동가로 노동자·서민을 대변했다는 점에서 닮았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전 여러 선거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학력이 낮아 기득권 세력의 차별과 편견에 시달린 점도 비슷합니다.

세월이 지나 이젠 이재명 대통령과의 유사점을 찾는 시선도 있는데요. 소년공 출신 ‘개천 용’이며, 어려서 일하다가 크게 다쳤고, 사법 리스크로 곤경을 치르다 대통령에 당선된 점에서 그렇습니다. 이 대통령은 20대, 21대 대선 후보 시절 룰라 대통령을 여러 번 언급하기도 했죠.

그런 이 대통령이 17일(현지시간)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방문한 캐나다에서 룰라 대통령을 드디어 만났습니다. 양국 정상회담에서 두 정상은 가난과 유년의 아픔, 정치적 핍박을 이겨낸 공통점을 얘기하며 교감했다고 합니다. 룰라 대통령은 이 대통령에게 당선 축하 인사와 함께 “국민이 뽑아준 이유를 잊지 말아야 한다”며 뼈 있는 조언도 했습니다.

룰라 대통령이 2기 퇴임 당시 80%대 지지율로 칭송받은 이유는 좌우를 가리지 않은 ‘탕평’에 있습니다. ‘배신자’ 소리까지 들었던 그는 “노동운동가 룰라는 노동자를 위해 일했지만, 대통령 룰라는 국민 전체를 위해 일한다”며 뜻을 굽히지 않았죠.

이 대통령 역시 지난 4일 대한민국 21대 대통령으로 취임하며 “모든 국민을 아우르고 섬기는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고 밝혔습니다. 부디 임기 내내 ‘국민이 뽑아준 이유’ ‘모두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다짐’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룰라 대통령은 오는 11월 브라질이 의장국인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30)에 이 대통령을 초청했습니다. 두 정상이 곧 다시 만날 수도 있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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