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일논단] 도시계획과 계획이론, 그리고 인공지능

2025. 6.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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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재빈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교수

동서를 막론하고 예로부터 지금까지 도시계획은 존재해 왔다. 사람들이 모여 살려면 자연스럽게 문제가 발생하고, 이를 풀어줄 합리적인 해결책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좀 더 좁은 의미로 근대적 도시계획의 출발점을 찾는다면 1800년대 영국 런던과 맨체스터가 첫 무대로 꼽힌다.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어느새 너무 많은 사람이 공장 주변에 몰려들고 콜레라와 같은 전염병이 쉽게 퍼지면서 인구 밀집 지역을 관리하는 규제들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특히 기술 발전과 산업화, 그리고 인구집중 현상은 거의 200년 동안 지구를 한 바퀴 돌면서 여러 나라에서 반복되었기에 도시계획도 함께 발전했다. 영국에서는 에베네저 하워드에 의해 철도와 연계된 자족 신도시가 제안되어 전 세계적으로 확산하였고, 미국에서는 토지를 구분해 규제를 가하는 지역제가 보급되어 지금까지도 도시 내 주거, 상업, 공업 활동의 조정 수단으로 활용된다. 르코르뷔지에는 철근콘크리트 기술을 활용한 현대적 건축과 도시계획을 제안했고,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자동차가 널리 보급된 도시를 브로드에이커시티라는 이름으로 제시했다. 이 밖에도 지금까지 수많은 계획가가 신기술을 도구로 삼아 도시문제를 해결하려 하거나, 역으로 신기술로 인해 발생한 도시문제의 해법을 찾기 위해 노력해 왔다.

한편, 도시문제 해결과는 별도로 도시계획의 과정 그 자체를 다루는 계획이론 역시 기술과 사회의 변화에 발맞추어 심화해 왔다. 사람, 일, 공간을 유기적으로 살펴야 하는 도시계획의 종합적 특성은 시스템 기술의 발전과 함께 합리적·종합적 계획이론으로 재탄생했다. 이후에는 계획가에게 사회적 약자를 돕는 리더 역할을 요구하는 옹호계획이론, 계획가와 시민의 대화를 강조한 거래계획이론이 제시되었고, 정보화 시대에 들어서는 계획가가 주도권을 내려놓고 시민들의 합의 도출 그 자체에 주력하는 협력적 계획이론이 대안으로 떠올랐다.

최근 몇 년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발전한 인공지능 기술은 도시계획과 계획이론에 또 한 번의 근본적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특히 2022년 말에야 일상에서 접하기 시작한 대규모 언어모델(LLM)들은 누군가에는 이미 필수적인 협업자가 되었다. 초기에는 어설픈 응답을 내놓기도 했으나, 요즘엔 많은 사람이 일단 인공지능에게 물어보고 시작한다. 새로운 인공지능은 우리에게 익숙한 계산기나 워드프로세서와 같은 기존 프로그램과는 전혀 다르게 사용자의 요구에 기계적으로 반응하지 않고, 자기 나름의 아이디어를 제시한다. 이는 200년간, 더 길게는 인류사의 시작부터 오직 사람만이 주체가 되었던 계획과정에 처음으로 사람 이외의 무언가가 참여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로운 도시계획 과정에서 인공지능의 가장 큰 기여점은 즉각적이고 진화적인 피드백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요구를 고려해야 하는 도시계획의 특성상 다양한 관점의 의견은 필수적이지만, 이를 얻기 위해 각 사람을 만나기까지 긴 시간이 소요되는 데다 여러 번 반복해 묻기도 어려웠다. 또 생각이 덜 익은 상태에서는 이야기를 꺼내기도 어렵고 시기에 따라 민감한 사안은 공유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인공지능은 이 문제에서 자유로울 뿐 아니라 여러 관점을 요구하면 그에 맞게 답을 제시한다. 예를 들어 인공지능은 굉장히 우호적인 의견을 주다가도 일부러 비판을 요구하면 손바닥 뒤집듯 부정적인 관점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데, 사람에게는 쉽게 기대하기 어려운 역할이다.

인공지능이 도시계획 과정에 참여한다고 해서 인간의 역할이 축소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이 짊어져야 하는 책임과 전문성은 더욱 명확하고 중요해진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자료를 분석하고 신속하게 의견을 제시할 수 있지만, 최종적인 계획 결정과 그 책임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기 때문이다. 결국 인공지능의 도움이 클수록, 사람은 더욱 높은 안목과 비판적 사고력을 갖추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역설적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인공지능의 높은 지적 능력을 잘 활용하면서도 그런 인공지능에 속지 않고 더 좋은 계획을 만들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도시계획 공부를 멈출 수 없는 이유이다.

임재빈 충남대 국가정책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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