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백] 삼근왕

김재근 선임기자 2025. 6. 19.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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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는 한성-웅진-사비 시대로 구분된다.

웅진시대 첫번째 왕은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었다.

웅진시대 백제왕실은 삼근왕의 뒤를 이은 동성왕과 무령왕을 거치면서 귀족을 통제하고 왕권을 세울 수 있었다.

2호분의 주인공이 웅진시대 초기 왕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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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근 선임기자

백제는 한성-웅진-사비 시대로 구분된다. 한성시대는 기원전 18년부터 서기 475년까지 존속됐고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이 도성이었다. 웅진백제는 475년 고구려 장수왕의 공격으로 백제 개로왕이 죽고 웅진(공주)으로 옮겨 왕실을 재건하면서 시작됐다. 사비시대는 538년 성왕이 수도를 사비(부여)로 이전하여 660년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망할 때까지 계속됐다.

웅진시대 첫번째 왕은 개로왕의 아들 문주왕이었다. 그는 고구려 군대가 한성을 쳐들어오자 신라로 가서 원병 1만 명을 데리고 왔으나 개로왕이 죽고 도성이 폐허가 된 것을 보고 웅진으로 수도를 옮겼다. 476년 탐라를 복속시키는 등 기틀을 다졌으나 477년 정권 실세인 병권좌평 해구에 의해 암살당했다.

웅진시대 왕이었던 백제 23대 삼근왕의 것으로 추정되는 어금니.

문주왕이 죽자 아들 삼근왕이 13살에 왕위에 올랐다. 삼근왕은 재위 당시 477-478년은 권신 해구가, 478-479년은 진로가 정권을 좌우했고, 재위 3년째인 479년 11월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웅진시대 백제왕실은 삼근왕의 뒤를 이은 동성왕과 무령왕을 거치면서 귀족을 통제하고 왕권을 세울 수 있었다.

공주 왕릉원 1-4호분 조사 후 전경. 사진=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

불운했던 삼근왕의 무덤이 확인됐다. 국립부여문화유산연구소가 공주 왕릉원을 조사한 결과 2호분에서 나온 어금니 2점이 10대 중후반의 것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1-4호분 중 2호분에서 화려한 유물들이 많이 나왔는데 금 귀걸이의 양식이 한성시대와 웅진시대 후반의 중간 형태라고 한다. 2호분의 주인공이 웅진시대 초기 왕일 가능성이 큰 것이다. 1-4호분에 묻힌 인물은 개로왕-문주왕-삼근왕 직계가족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피장자의 신원을 밝힌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성과이다. 귀걸이와 반지 등 모든 문화재는 피장자가 밝혀지면 훨씬 가치가 커진다. 제작 배경과 시대, 문화 등을 상세하게 밝혀낼 수 있기 때문이다.

얼마 전 공주시내 백제시대 절터인 대통사지에서도 다수의 문화재가 발굴된 바 있다. 공주에서 백제문화를 웅변하는 문화유산이 속속 발굴되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삼근왕의 무덤 확인이 베일에 가려진 백제문화 연구에 큰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백제 유산을 지역경제 활성화에 연결하는 노력도 더욱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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