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의 작업실] (26) 노순택 사진가
눈길을 맞추던 사진가가 있다. 그가 쓴 글 말마따나 뷰파인더 너머 ‘말하는 눈’을 봤기에 ‘본 탓에 진 빚’을 갚으려 부단히도 쏘다녔다. 미군기지가 들어선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와 제주 해군기지 건설 반대 현장, 5·18 희생자가 묻힌 광주 북구 망월동 옛 묘역, 전쟁 무기가 노출되는 현장 등. 그러다 보니 한국을 대표하는 다큐멘터리 사진가가 됐다. 노순택(54) 사진가의 이야기다.
“현장이 곧 작업실”
한국 대표 다큐사진가
나고 자란 서울 떠나
아내 고향 남해 정착
‘좋은 살인’·‘얄읏한 공’
사회의 이면 채집
남해서 그간 작품들
재해석하는 작업 중
서울에서 나고 평생을 살아온 그는 비교적 평화로운 남쪽 마을인 남해로 터를 옮겼다. 언제나 현장이 곧 작업실이던 노 사진가에게 또 다른 작업실이 생겼다. 남해는 30년 가까이 현장에서 쌓아온 수많은 시선들을 반추하고 정리하는 인화실이 될 터다.

- 남해로 온 지 4년 정도 됐다고 들었다. 남해에 터를 잡은 이유가 있나.
△남해가 아내 고향이고 이 집도 아내의 5촌 고모 내외가 살던 곳이다. 예전에는 항상 사람들을 대면해야 일이 이뤄지고 했는데, 코로나19를 겪으면서 보니 비대면으로 일들이 충분히 가능하더라. 그럼 멀리 내려와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남해로 내려와 주민등록 초본을 떼어보니 이곳이 10번째 주거지다. 서울에 있을 때 그렇게 숱하게 이사를 다녔는데, 이제야 정착하게 됐다.
- 집 창고 앞에 북한군 모양의 표적판이 보인다. 어디서 가져왔나.
△2009년 작업한 ‘좋은살인(reallyGood, murder)’의 취재 과정에서 얻었다. 한국은 전국에서 전투기로 펼치는 에어쇼나 첨단산업의 외피를 쓴 무기박람회, 부대개방행사 등이 열린다. 요즘엔 없어졌는데, 한동안은 사격 체험할 때 그 표적이 주로 북한군이었다. 그런 곳에서 가져온 표적이다.
- 작업에 대한 설명을 더 듣고 싶다.

△‘좋은 살인’은 형용 모순이다. 살인은 나쁘다고 생각하지만, 적을 죽이는 것은 허용할 수 있다. 사람을 효율적으로 더 많이, 잘 살인하는 첨단의 ‘좋은 무기’. 완벽한 인간이 없듯 완벽한 무기란 있을 수 없고 언제든 우리를 겨눌 수 있는데도 우리에게는 ‘좋은 무기’에 대한 믿음이 있고 그 기저에는 ‘분단 논리’가 깔려 있다.
- 흔히 분단으로 초래된 사회 현상들을 작업해왔다. 왜 ‘분단’인가.
△한국전쟁으로 발생한 분단체제가 벌써 70년을 훌쩍 넘었으니 옛일처럼, 역사가 된 것처럼 이야기되지만 아직도 그 분단이 우리 사회에 작동되고 있다. 노동자를 억압하는 관점 중 하나는 ‘빨갱이’다. 또 살던 곳을 지키고 싶어 하는 철거민들에게 ‘빨갱이’라든지 ‘북한으로 가라’고 하는 기이한 논리들. 분단이 오작동함으로써 작동하며 울지도 웃지도 못할 블랙코미디로 작용한다. 흔히 ‘이것도 분단 문제야?’라고 생각하는 것에 어떻게 분단 논리가 작동하고 있는지, 고정관념에 살짝 금을 내주는 것을 하고 싶었다. 그런 근본을 현재 시점으로 파악하고 인식하는 것이, 우리 사회가 괴물의 상태로 치닫지 않게 하는 백신 같은 것이 되지 않을까.
- 방문 앞에 걸린 ‘황새울 사진관’ 현판은 평택 팽성읍 대추리 마을과 제주 강정마을에서 쓰인 것으로 알고 있다.
△아시다시피, 당시 대추리 마을은 미군 부대 확장과 이주를 위한 강제수용 예정지였고 나도 그곳에 살면서 작업을 했다. 그때 작은 사진관을 열어 마을 어르신들의 영정 사진과 일상의 모습을 찍기도 했다. 이후 제주 강정마을에서도 하루 사진관을 열려 하는데 당시 문패가 분실된 거다. 문패를 만들어 줬던 류연복 판화가가 다시 제작해준 것이 지금의 이 현판이다.

- 평택 대추리서 작업했던 ‘얄읏한 공’은 최근 서울시립미술관의 광복 80주년 기념 전시에 걸려 서울시의원의 지적이 있었다.
△그 지적을 나도 뉴스를 보고 알았다(웃음). 광복 80주년을 기념하는 공적인 전시에 대추리의 문제가 빠질 수도 있지만, 그것을 빼라는 말은 온당하지 않다.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에 위배되는 일이고, 박근혜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의 논리와 같다.
- 사진가님은 실제로 블랙리스트에 올랐었다.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드는’ 작업을 이어왔는데 ‘불편한 것’을 얘기했어야 하는 이유가 있나.
△나는 작업을 거창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예술이라는 것의 감동이나, 정화의 목적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상대방으로 하여금 사고를 촉진하고 불편함을 느끼게 하는 것도 예술의 기능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너무 직설적인 얘기는 하고 싶지 않다. 불편함을 느낀 작업물에 대해 입체적으로 접근하고 생각과 대화를 할 수 있게 만들려 했다.
- 지난 계엄 사태부터 올해까지 남해로 내려와 가장 바쁜 나날이었다고.
△서울을 가장 자주 올라간 날들이었다. 남해에서 작업하는 것 중 하나가 여순사건과 관련한 일이다. 여수와 남해 중간에 소치도라는 섬이 있는데, 행정구역상 남해이고 그 섬은 당시 보도연맹 가입자들이 끌려가 수장됐던 곳이다. 작년 12월 3일은 하늘이 맑고 노을이 아름답게 떨어졌던 날이다. 소치도를 찍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밤에 계엄이 떨어졌다고 하더라. 날이 밝는 대로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탄핵이 헌법재판소에서 결론 나기까지 남해에 붙어있을 시간이 없을 정도로 서울에 올라가 있었다.

- 몇 개월 서울을 오가며 작업에 몰두했던 이유가 있는가.
△현대사를 피로 얼룩지게 했던 계엄이 다시 발효됐다는 것 자체를 무겁게 받아들였고, 대통령이 두 번이나 탄핵당할 수도 있는 상황들을 가까이서 지켜보고 기록하는 것이 나 자신의 작업에서도 중요하겠다는 판단이 들었다. 내 시각을 보여줄 수밖에 없지만 많은 사람들의 시각이 쌓이면 그 상황들을 입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하나의 자료나 근거가 되기 때문에, 일단 채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이제야 남해로 와 한숨 돌릴 수 있게 됐다. 이곳에서 생각하고 있는 작업이 있는가.
△남해에 와서 아주 중요한 작업 중 하나는 해 놓은 작업을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필름 한 롤이 36장인데, 36장 중에 한 건도 못 쓰는 일이 많다. 급하게 꺼내 쓰고 다시는 쳐다보지도 않았던 필름들. 꿰지 못한, 꿰어서 구슬이 될지 무엇이 될지 알 수 없지만 좀 더 면밀하게 봐야 하는 자식들을 돌이켜보는 게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작업들을 계속 보여주는 작가의 일도 굉장히 크다고 생각하는데, 이미 예전에 채집해 놓은 재료들을 창고에 방치해 둘 것이 아니라 그것들을 꺼내 와서 또 재해석하고 다시금 바라보는 그런 것들이 또 새로운 작업이다.
글= 어태희 기자·사진= 김승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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