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칼럼] 화이부동의 대동사회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2025. 6. 18. 19:36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공자가 말한 ‘대동’이란 획일적 사회통합 아니라 다름을 차별하지 않는것
오늘날 곱씹을만한 의미
홍순권 동아대 명예교수

제21대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정부가 들어선 지 보름이 지났지만, 내겐 아직도 선거운동의 여운이 남아 있다. 12·3 계엄 이후 ‘내란 정국’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면서 치러진 때문일 수도 있고 아니면 새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가 그 어느 때보다 높기 때문인지 모른다. 이재명 대통령이 후보 시절 선거유세 중 가장 많이 언급한 인상적인 말 가운데 하나가 ‘대동사회’였다. 그리고 이 말에는 수식어로 ‘억강부약’이란 사자성어도 함께 붙어 다녔다. 그야말로 억눌린 민중의 오랜 소망을 대변하는 말로 그 울림이 컸다.

‘대동(大同)’이란 우리에게 그리 낯선 단어가 아니다. 흔히 크게 합친다는 뜻의 대동단결이란 말로 왕왕 쓰이는 일상어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말은 나라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 선조들이 민족적 단결을 호소하며 오래전부터 자주 사용해온 용어이기도 하다. 아마 오늘날 일상어가 된 것도 이로부터 연유한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예컨대, 나라를 일제에 빼앗기고 많은 인사들이 해외로 망명해 독립투쟁을 전개하던 시절 독립운동세력의 단결과 임시정부 수립을 제안하면서 신채호 박은식 선생 등 14명의 독립운동가가 1917년 발표한 대동단결선언에 담긴 뜻이 그러하다.

지난 세기 초 우리 민족이 위기에 빠졌을 때 ‘대동’이란 말이 널리 쓰이게 된 데는 사실 외부로부터의 영향도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당시 ‘대동’이란 말을 시대적 화두로 끌어올린 인물로 청말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한 사상가 강유위와 양계초 등이 있다. 그리고 같은 시기 청과 마찬가지로 위기에 처해 있던 조선의 개혁적 지식인들 또한 이들로부터 적잖은 영향을 받았다. 강유위 등이 사회개혁의 지향점으로 말한 대동사회란 ‘예기’ 예운편에서 공자가 말한 ‘대동’에서 연유한다. 그 골자를 옮겨 보면 다음과 같다.

“큰 도가 행하여진 세상에는 천하가 모두 만인의 것이다. 사람들은 현자와 능력 있는 자를 선출해 관직에 임하게 하고, 온갖 수단을 다하여 상호 간의 신뢰와 친목을 두텁게 한다. 따라서 사람들은 자기의 부모만 부모로 여기지 않고, 자기 자식만을 자식으로 여기지 아니하며 노인은 그 생애를 편안히 마치며, 장정은 일자리를 얻고, 어린이는 마음껏 성장하며, 과부 고아 장애인 모두 양육 받게 되며 성년 남자에게는 직분이 주어지고 여자 또한 합당한 남편을 갖는다. 재화를 헛되이 낭비하는 것을 배척하지만 그렇다고 사사로이 독점하는 일은 결코 없으며 힘써 일하기를 권장하지만 그 노력을 반드시 자기 자신만을 위해 쓰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모략은 있을 수 없고 절도나 폭력도 없으니 아무도 문을 잠그는 일이 없다. 이를 ‘대동’이라 한다.”

강유위가 주창한 대동사상이 나오기 이전이라 해서 조선의 유학자들이 ‘대동’을 몰랐을 리는 없다. 조선의 법률서인 ‘경국대전’에서 사회적 취약계층인 환과고독(鰥寡孤獨 ; 홀아비 과부 고아 자식 없는 늙은이)에 대한 지원을 국가적 책무로 규정한 것도 공자가 말한 대동과 맥을 같이 한다. 즉 억강부약이 그 대동을 실현하는 골간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엄격한 신분제와 계급적 차별에 기반을 둔 왕조국가체제에서 공자가 말하는 대동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향에 불과한 것이었다. 물론 이를 현실로 만들어 보고자 하는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선조 때의 인물 정여립이 만든 대동계가 그 한 사례이다. 정여립은 역모로 몰리자 자결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그가 열고자 했던 대동의 꿈은 후일 ‘정감록’이란 비기를 통해 민중 사이에 전해지게 되었다고도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된 김상만 감독의 영화 ‘전란’에서는 정여립 모반사건이 일부 배경으로 활용되어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말에 다시 등장한 대동 공동체, 즉 대동사회에 대한 열망은 대동단결선언을 거쳐 그 일부가 1919년 4월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으로 이어졌다. 이때 비로소 주권재민에 바탕을 둔 공화정의 실현, 민주공화국의 수립이 대한민국 임시 헌장에 명시됐다. 대동사회론 입장에서 보면 공화주의의 완전한 실현이야말로 대동사회로 나아가는 첫 단추가 되는 셈인 것이다.


그러나 공자가 말한 대동의 의미는 단순히 획일적 사회통합이나 동화를 요구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공자는 논어에서 언급했듯이 소인의 동이불화(同而不和)가 아닌 군자의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세계를 이상적인 사회공동체로 인식했다. 서로 다르되 화목한 관계, 즉 다름을 인정하되(부동) 차별하지 않는 관계(화), 즉 그것이 바로 대동적 사회통합의 원칙이라 해석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주체성과 그 다름을 인정하지 않는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다. ‘동이불화’는 오늘날 사회적 관계를 올바르게 전망하기 위해서 ‘대동’과 함께 다시 음미해 볼 만한 진정한 고전적 경구라 할 수 있다. 모두가 함께하는 대동의 새로운 세상을 열기 위해서는 더 높은 수준의 도덕적 진화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