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분석적 피아니스트 거장 알프레드 브렌델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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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적이고 분석적인 연주로 일세를 풍미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이 별세했다.
하지만 정작 브렌델은 '지적인 피아니스트'란 수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 한 인터뷰에서 "감정이 시작이자 끝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피아노의 존재를 잊고 악기가 지닌 한계로부터 음악을 벗어나게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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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베르트·리스트 피아노 음악 되살려

지적이고 분석적인 연주로 일세를 풍미한 피아니스트 알프레드 브렌델이 별세했다. 향년 94. 모라비아 비센베르크(현 체코) 태생인 브렌델이 지난 17일(현지시각) 영국 런던 자택에서 세상을 떴다고 유족들이 밝혔다.
브렌델은 기교와 화려함을 자랑하는 연주자는 아니었다. 그 스스로 “신동도 아니었고, 부모님이 음악가도 아니었고, 집안에 음악도 없었으며, 경이로운 기억력을 가진 축복도 받지 못했다”고 술회했다. 콩쿠르 입상 경력도 제1회 부소니 국제 피아노 콩쿠르(1949년 이탈리아 볼차노)에서 4위에 오른 게 전부다.
그는 콩쿠르 대신 음반 녹음에서 길을 개척하며 독보적 경지를 구축했다. 베토벤의 모든 피아노 작품을 녹음한 최초의 피아니스트다. 베토벤 소나타 전곡(32곡)을 세차례, 협주곡 전곡(5곡)을 네차례 녹음해 음반으로 남겼다. 모차르트 협주곡 전곡(27곡)도 녹음했는데 ‘감상적으로 비대해진 모차르트 연주’를 싫어했다. 슈베르트 후기 소나타 작품집 등 명반을 남기며 방치되다시피 했던 슈베르트 피아노 음악을 되살려낸 공로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에서도 그의 음반으로 클래식 음악에 입문한 애호가들이 많다.

영국 가디언은 ‘음악가들의 음악가’이자 ‘피아니스트들의 멘토’였고, 60년 동안 세계 음악계를 누빈 당대 최고 피아니스트 가운데 한명이라고 그를 평했다. 바흐, 하이든, 모차르트, 베토벤, 슈베르트 등 소수 작곡가 작품에 집중한 점도 특징이다. 쇼팽과 슈만, 브람스 등은 일부 녹음을 남겼지만 자주 연주하지 않았고, 프랑스, 러시아 작품들도 거의 손대지 않았다. 대신 리스트를 적극적으로 연주했는데, 당시만 해도 기교는 화려하지만 저속하고 피상적이며 겉만 번지르르하다는 게 리스트 음악에 대한 통념이었다. 음악평론가 해럴드 숀버그는 “리스트를 매력적인 작곡가로 새롭게 복권했다”고 평했다. 쇤베르크와 버르토크 등을 자주 연주하는 등 현대음악 옹호자로도 앞장섰다.
문학과 미술 등 다양한 분야가 그의 관심사였다. 뉴욕타임스는 “브렌델의 분석적인 접근 방식이 특히 지식인과 작가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정작 브렌델은 ‘지적인 피아니스트’란 수식을 달갑게 여기지 않았는데, 한 인터뷰에서 “감정이 시작이자 끝이어야 한다. 사람들이 피아노의 존재를 잊고 악기가 지닌 한계로부터 음악을 벗어나게 하고 싶다”고 토로했다.
두꺼운 안경에 헝클어진 머리가 트레이드마크인 브렌델은 배우이자 영화감독 우디 앨런을 닮았다는 소리를 들었다. 2008년 12월 빈 필하모닉 협연을 끝으로 무대에서 은퇴한 이후에도 강연과 집필, 마스터클래스 등을 열었다. 음악 관련 강연을 담은 영상과 다큐멘터리도 다수 남겼다. 작가로도 활약하며 ‘피아노를 듣는 시간’ 등 여러 에세이집과 두권의 시집, 희곡 등을 발표했다.
피아니스트 폴 루이스, 이모젠 쿠퍼, 키트 암스트롱 등이 그의 제자다. 폴 루이스는 “문학과 예술, 음악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지닌 선생님은 멘토이자 끝없는 영감의 원천이었다”고 추모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은 고인과 찍은 사진 세장을 페이스북에 올리며 “마에스트로 알프레드 브렌델, 영면하시길. 제가 지금과 같은 피아니스트가 된 데는 당신의 영향이 컸습니다. 당신의 음악과 영감에 감사합니다”라고 썼다. 첼리스트 스티븐 이설리스는 그를 ‘문명의 등불’이라고 표현하며 “음악을 열정적으로 사랑하고 그 사랑을 널리 나누며 예술적으로나 개인적으로 타협하지 않았던 교양인”이라고 엑스(X)에 올렸다.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은 “독보적 예술가이자 거인이 세상을 떴다”고 애도했다.
임석규 기자 sky@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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