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손맛 그대로…정릉시장 호떡장인은 오늘도 추억을 굽는다

손인규 2025. 6. 18.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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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째 한자리 지킨 ‘남기남호떡만두’
치매로 돌아가신 모친 이어 아들 운영
“내가 찾던 ‘그 맛’ 말 들으면 짜릿하죠”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서 ‘남기남호떡만두’를 운영하는 황기남 사장 [성북구 제공]

음식은 추억을 소환하는 대표적인 매개체다. 어린 시절 놀이동산에 가서 처음 맛본 솜사탕, 친구들과 방과 후 허겁지겁 먹었던 떡볶이, 할머니가 여름마다 쪄주셨던 찰옥수수 등 추억 속 음식을 먹는 순간 우리는 순식간에 그 시절, 그 나이로 돌아가곤 한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옛날 그 맛’을 찾는 여정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도 그 맛을 보자마자 추억 속으로 우리를 데려가는 음식이 있다. 정릉시장 한 자리에서 30년 동안 호떡을 팔고 있는 노포 ‘남기남호떡만두’다.

사실 호떡은 겨울철 대표 간식이다. 추운 겨울날, 뜨거운 호떡을 손에 쥐고 후후 불면서 먹어야 제맛이다. 당연히 더운 여름에는 찾는 사람이 적다.

이 점포의 황기남(56) 사장은 “더워지는 6월부터는 하루 30개 정도 분량만 준비를 해요”라며 “그래도 가끔씩 찾아주시는 손님들 때문에 여름에도 호떡을 안 할 수가 없어요”라고 했다.

실제 30도까지 오른 지난 12일 찾은 점포에는 호떡 손님은 두어 명 정도 뿐이었다. 손님들은 대부분 옥수수나 도너츠를 사갔다.

남기남호떡만두라는 상호 덕에 황 사장의 성을 ‘남씨’로 아는 사람이 많다. 그는 “2010년 시장에서 상호 간판을 달아준다고 해서 이름을 고민했는데 ‘황기남호떡’은 입에 잘 붙지 않더라”며 “그러다 ‘이렇게 맛있는 호떡을 어떻게 남기남’하는 문구가 떠올라 ‘남기남호떡’으로 짓게 됐다”고 말했다. 아어 “아직도 제 성을 정확히 몰라 ‘남 사장, 요새 장사 좀 잘 돼’라고 묻는 분들도 꽤 있다”며 웃었다.

남기남호떡만두의 역사는 정릉시장이 정식 시장으로 인가를 받은 2010년보다 훨씬 더 거슬러 올라간다. 남기남호떡만두는 황 사장의 모친이 30년 전에 시작했다. 그는 “한 30년 전이던가. 어머님이 환갑 정도였을 때, 여기가 정식 시장이 되기 전 호떡집을 여셨다고 들었다”며 “처음에는 어머니가 혼자 하시다가 힘이 든다고 같이 했으면 좋겠다고 하셔서 2009년부터 같이 하게 됐다”고 말했다.

당시 다른 일을 하던 황 사장은 모친과 호떡 굽는 일을 함께하게 되면서 이 호떡집을 운명처럼 물려받아야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고 한다.

모자가 오붓하게 가게를 잘 운영했지만 7년 전 모친에게 치매라는 병이 찾아왔다. 모친은 일을 놓게 됐고 그때부터 황 사장은 가게를 홀로 지키게 됐다.

황 사장은 “어머니가 병을 앓게 되신 후 가게는 혼자 운영하게 됐다”며 “둘이 하다가 혼자 하게 된 만큼 욕심부리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정도만 하려고 해요. 그래야 어머님처럼 나이 80까지 할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했다. 치매를 앓던 황 사장의 모친은 3년 전 돌아가셨다고 한다.

모친은 이제 없지만, 그 흔적은 남기남호떡만두에 그대로 남아 있다. 모친이 쓰던 호떡 누르개를 황 사장은 아직도 고이 간직하고 있었다. 호떡 누르개는 얼마나 많이 썼는지 나무로 된 손잡이가 얇아져 있었다.

황 사장이 남기남호떡만두로 자신 있게 이름을 지을 정도로 이 집 호떡의 맛은 일품이었다. ‘맛 보라’고 준 호떡을 기자는 남기지 않고 모두 해치웠다. 이 집 호떡에는 어떤 비결이 있는 걸까. 살짝 비법을 물었다.

“다른 집들은 대부분 공장에서 만들어 놓은 반죽을 사다가 쓸 거예요. 그런데 그런 건 거의 다 강력분을 써요. 하지만 우리는 중력분을 쓰죠. 중력분을 잘 쓰지 않는 이유는 강력분보다 약해서 잘 터진다는 건데, 맛은 중력분이 훨씬 좋아요. 강력분으로 만든 호떡은 나중에 식으면 딱딱하거나 질겨지는데 저희 꺼는 나중에 먹어도 맛있다고 하죠.”

또 남기남호떡만두에서는 콩기름이 아닌 호떡 맛을 좀 더 풍요롭게 하는 옥수수기름을 쓴다고 황 사장은 귀띔했다. 그는 “새벽 5시에 나와 반죽을 하는데 반죽을 하고 3시간 정도 숙성을 시켜야 쫄깃한 빵이 된다”며 “속에 넣는 재료도 설탕, 땅콩, 깨 이걸 항상 똑같이 한다”고 말했다.

호떡도 유행에 따라 씨앗 호떡, 중국 호떡, 초코 호떡 등 다양한 종류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남기남호떡만두는 처음 문을 열었던 방식 그대로를 고수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집의 호떡을 먹고 추억을 소환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황 사장은 “우리 호떡을 먹고 ‘내가 찾던 옛날 그 맛이에요’라고 말해주면 짜릿한 기분이 든다”며 “그래서인지 (서울) 강남에서도 찾아온다. 여러 단골이 때가 되면 찾아준다”고 말했다.

“특히 한 남자 손님이 왔는데 임신한 아내가 먹고 싶다고 해서 찾아왔대요. 어릴 때 이 동네에서 자란 분인데 어릴 때 먹던 호떡이 먹고 싶다고 했다고 하더라고요. 한여름에도 호떡을 팔아주셔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더라고요. 미국에 유학 간 한 학생은 방학 때면 꼭 찾아와서 사 먹고는 미국 돌아갈 때 30~40개를 사서 가더라고요. 냉동실에 얼렸다가 미국 가서 먹는다니 고맙죠.”

황 사장은 물가 상승으로 지난해 부득이 호떡값을 올렸다. 기존 1500원에서 500원 오른 2000원을 받고 있다. 다만 학생들에게는 기존처럼 1500원만 받고 있다.

황 사장은 “대부분 손님이 이 동네 초중고생들인데 그들한테 물어보니 2000원은 좀 부담스럽다고 하더라”면서 “그래서 학생들은 1500원 그대로 받고 있다. 그랬더니 부모님들이 자기가 먹을 걸 아이들한테 심부름시키는 부작용도 있더라”며 웃었다.

황 사장의 목표는 이 집을 나이 80까지 지키는 것이다. 돌아가신 모친이 일을 했던 딱 그 나이만큼을 목표로 잡았다.

“손을 많이 쓰다 보니 손목터널 증후군이랑 방아쇠 증후군이 와서 수술을 했어요. 그래서 조금만 무리를 하면 손이 아프더라고요. 욕심내지 말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려고요. 건강하게 오래 일해서 정릉시장 명물의 역사를 이어가고 싶어요.” 손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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