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소리조차 없는 마지막길…영정은 텅 비어 있었다
가족들 인수 거부로 ‘무연고사망자’ 기록
작년 서울에만 1445명…5년새 2배 늘어
20~30대 청년층 쓸쓸한 죽음 두자릿수
“이제는 편히 지내십시오.”
지난 4월 유모(56) 씨와 신모(74) 씨가 각각 자택과 병원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이들의 가족은 시신 인수를 거부했다. 무연고 사망자인 유씨와 신씨 생애에 마지막으로 적힌 행정기록이다. 유씨와 신씨는 살아생전 한번도 서로를 보지 못했지만, 마지막 가는 길은 함께했다. 숨진 후 차가운 안치실에 놓인 지 두 달 만이다.
지난 12일 오전 9시30분께 찾은 경기 고양시 서울시립승화원(이하 승화원) 2층 ‘그리다’ 빈소. 이곳에서 두 사람의 합동장례식이 열렸다. 문상객도 없고 죽음을 슬퍼하는 울음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빈소 내 영정 액자도 텅비어 있었다. 누구도 고인의 생전 사진을 건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헤럴드경제 기자를 비롯, 장의업체 직원과 서울시의 장례 위탁을 받은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관계자, 자원봉사자 등이 전부였다. 고인이 어떤 생애를 살았는지는지에 대해 빈소에서는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두 사람의 생애는 생몰년도로만 기억됐다.
이수연 나눔과나눔 실장이 고인에 대해 소개하며 장례가 시작됐다. “유○○ 님은 1969년생으로 2025년 4월 23일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 구로구입니다. 유○○ 님의 유골은 화장 후 승화원의 유택동산에 산골(유골을 화장한 후 흩뿌리거나 묻는 장례방식)될 예정입니다. 신□□ 님은 1950년생으로 지난 4월 21일 돌아가셨습니다. 마지막 주소지는 서울 중구입니다. 신□□ 님의 유골은 화장 후 승화원 내 유택동산에 산골될 예정입니다. 유○○ 님과 신□□ 님의 삶을 생각하면서 잠시 묵념하겠습니다.”
자원봉사자 1명이 상주 역을 맡았다. 다른 자원봉사자들이 절을 올렸다. 장의업체 관계자는 밥뚜껑을 열고 숟가락을 꽂는 의식인 계반삽시(啓飯插匙)를 했다.
마지막 장례 절차인 조사 낭독은 본지 기자가 했다. “당신이 간절히 소망했던 모든 일들, 못다 이룬 꿈들, 살아오면서 서운했던 모든 일들 함께 내려놓으시고 이제는 편히 안녕히 가십시오. 여기에 모인 우리가 당신을 배웅할 수 있게 돼 반가웠습니다.”
장례의식은 15분 만에 마무리됐다. 시신을 화장장까지 운구하는 절차가 이어졌다. 자원봉사자들이 관 앞에 대기했다. 운구 전용 통로에서 승화원 내부로 향하는 관을 천천히 밀었다.
두 사람의 시신은 각각 22번과 23번 화장로로 배치됐다. 빈소에서도 나란히 모셔진 두 사람은, 화장될 때에도 함께했다. 오전 10시 23분께 시작된 화장(火葬)은 약 1시간 만에 끝났다.
이후 수골 작업이 이어졌다. 수골은 시신에서 뼈를 수거하는 절차다. 봉사자들은 수골 작업이 이뤄지는 1층으로 향했다. 염불을 하는 자원봉사자들은 그 앞에 지전을 두고 불경을 외웠다. 조계종 사회복지재단 소속 염불 봉사자 B(74) 씨는 “장례 봉사를 9년째 이어오는 중”이라며 “고인의 마지막 여정을 책임짐으로써 어느 무연고보다는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으로 봉사에 참여하고 있다”고 했다.
신씨 시신에 대한 수골이 먼저 진행됐다. 고인의 유골에서는 보철물이 발견됐다. 직원은 봉사자들에게 “따로 빼겠다”고 허락을 구한 뒤 유골가루만 한곳에 모았다.
유골함은 얇은 보자기로 감싸져 승화원 내 유택동산으로 향했다. 유택동산은 여러 고인의 유골을 한 곳에 모아 뿌릴 수 있도록 하는 제단형 안치시설이다. 유택동산에는 무연고 사망자뿐 아니라 다른 화장터의 유골도 함께 묻힌다.
장의업체 직원이 제단의 뚜껑을 열었다. 고인의 유골은 한줌씩 뚜껑 안으로 흘러 들어갔다. 바람이 불어 하얀 뼛가루가 허공에 휘날렸다. 직원들은 두손 위에 유골을 올리면서 연신 고개를 숙였다. 고인들의 유골함 앞에 있던 지전도 태웠다. 추도사 낭독부터 산골까지, 장례식은 2시간30분 만에 마무리됐다.
승화원의 그리다 빈소에서는 오전과 오후 하루 두 번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가 치러진다. 하루 4~6명의 고인이 이곳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는다. 김민석 나눔과나눔 사무국장은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 중에서 참석자가 오지 않는 경우는 절반 이상”이라고 말했다.
무연고 사망자 수는 크게 늘고 있다. 서울시에 따르면 2020년 742명이었던 무연고 사망자는 지난해 1445명으로 4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했다. 젊은 무연고 사망자도 상당하다. 지난해 연고 없이 숨진 20~30대는 총 18명이었다.
무연고 사망자가 모두 가족이 없는 것은 아니다. 1인 가구가 증가한 영향이 크다. 신씨와 유씨처럼 가족이 있어도, 시신 인수를 거부하면 무연고 사망자가 된다. 지난해 숨진 무연고 사망자 1445명중 1141명(78.9%)은 시신 인수가 거부돼 무연고 사망자가 됐다.
관계 단절(877명), 경제문제(128명) 등이 시신 인수를 거부하는 주된 이유다. 관계 단절 역시 지급해야할 장례비용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소비자원이 2015년 장사서비스를 이용한 소비자 639명을 설문조사했을 때 장례부터 장묘까지 당시 총 장사(葬事) 비용은 평균 1380만8000원이었다. 10년간 물가상승률을 반영하면 장례비용은 더 많아질 전망이다.
이에 서울시에서는 무연고 사망자를 위해 고인의 기초생활비 수급 여부에 따라 공영장례를 차등 지원하고 있다. 고인이 일반 무연고 사망자일 경우 인당 지원금액은 214만8000원이며 저소득 무연고 사망자에게는 236만5000원이 지원된다. 유씨와 신씨는 모두 기초생활비 비수급자로 저소득 무연고 사망자보다는 적은 비용이 지원됐다. 박병국·고양=경예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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