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성기 꺼준 대통령 할아버지 감사해요”…접경지서 온 알록달록한 편지

“대통령 할아버지께. 안녕하세요. 저는 강화에 살고있는 ○○○입니다.”
남북이 대북-대남 확성기 방송을 중지하며 접경지역에 모처럼의 평화가 찾아온 가운데, 강화에 사는 초등학생이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손편지가 눈길을 끈다.
인천 강화군 송해면 당산리에 사는 초등학생은 “대통령 할아버지께”로 시작하는 손편지에 “대북, 대남 방송을 꺼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라고 적었다.
17일 ‘경인일보’ 보도로 처음 알려진 이 편지에 올해 2학년인 이 학생은 “대통령 할아버지가 아파하고 힘들어하는 사람들이 없는 대한민국을 만들어주세요. 저도 할아버지처럼 나중에 멋진 대통령이 되고 싶어요. 더운 날씨에 건강 조심하세요”라고 정성껏 썼다.

편지엔 그림도 함께 담겨 있는데, 뾰족뾰족한 산 너머로 대북 확성기 스피커가 커다랗게 그려져 있다. 이젠 시끄러운 소음이 들리지 않아서인지, 그 앞엔 음표들이 경쾌하게 그려져 있다. 산 밑엔 색색깔의 자동차가 달리고 있는데 모두 웃는 얼굴이다. 자동차들은 “멋진 대통령 할아버지” “감사합니다” “대남 방송 안 틀어서 행복” “평화가 찾아왔다”라고 말하고 있다.

이 학생의 그림이 더 주목되는 이유는 그가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장에서 무릎을 꿇고 확성기 방송 중단을 호소했던 강화 주민 안미희(39)씨의 딸이기 때문이다.
안씨는 지난해 10월24일 국회 국방위원회 국정감사장에 참고인으로 나와 대남 확성기 소음으로 인한 고통을 증언했다. 안씨는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딸아이랑 3학년 남자아이를 키우고 있는 아이 엄마”라고 자신을 소개하며 “방송 소음으로 인해서 아이들의 일상이 무너졌다”고 말했다.
안씨는 “아이들이 밖에서 놀지도 못한다. 딸아이는 잠을 못 자고 힘들어하니까 입에 구내염이 생기고 아들은 새벽 3~4시까지 잠을 못 자는 상황인데 (정부에서는) 아무것도 안 해주시더라”고 말했다. 안씨는 급기야 의원들과 국방부 간부들 앞에서 무릎을 꿇으며 “진짜 싹싹 빌게요. 정말 우리 애들이 오늘도 저 여기(국감장) 온다니까 ‘엄마, 내일부터 이 방송 안 들을 수 있는 거냐’고 (묻더라)”라고 호소했다.

당시에도 안씨의 딸은 그림을 그렸는데, 이번에 그린 그림과 많이 다르다. 지난해 10월 그림에서 자동차들은 울고 있거나 화를 내고 있고 “무서워요” “저 소리 힘들어요” “소리 그만!”이라고 말하고 있다. 자동차들엔 색도 칠해지지 않았다. 그림과 함께 쓴 손편지에서 학생은 윤석열 당시 대통령에게 “매일 북한에서 들리는 소리로 잠도 못 자고 무섭고 힘들어요. 대통령 할아버지가 제발 제발 북한에서 나는 소리를 멈춰주세요. 저희 소원이니 꼭꼭 들어주세요”라고 말했다.
그림이 확 바뀔 수 있었던 건 지난 11일 우리 군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정부가 출범한 지 7일 만에 이뤄진 조처였다. 이어 북한도 11일 밤부터 대남 방송을 틀지 않으면서, 강화군 등 접경지역에서 소음으로 인한 고통이 사라질 수 있었다.
지난해 6월9일 윤석열 정부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뒤 북한은 ‘맞불’ 방송을 틀면서 확성기 출력이 약한 한계를 극복하려고 대북 방송이 뜸한 심야와 새벽에도 방송을 자주 해왔다. 여우, 들개, 까마귀 등 동물의 울음소리부터 귀신 소리, 쇠를 깎는 듯하거나 지직거리는 소음 등이 1년 동안 이어졌다.
겨우 찾은 남북 간의 평화이지만, 지속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4일 남북 접경지에서 대북전단이 실린 대형 풍선들이 발견됐다. 정부가 대북전단 살포 엄정 대응 방침을 밝혔으나, 일부 민간단체가 이를 무시한 채 전단 살포를 강행한 것이다.
안씨는 18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이번에 (딸이) 그린 그림은 대통령실에 우편으로 부쳐, 지금 가고 있는 중”이라고 말했다. 안씨는 “(아직) 대북전단 살포 문제가 있어 실질적으로 평화가 찾아온 건 아니다. 저희는 불안 속에 있다”며 “(작년에) 확성기가 켜진 게 대북전단이 살포돼서 오물풍선이 날아오고 우리가 확성기를 켜면서 북한이 켠 것인데, 지금 똑같은 상황이 또 벌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안씨는 “접경지역 특별법도 국회에 계류돼 있는 상태고 실질적으로 접경 지역 주민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 대통령은 지난 13일 파주시 장단면에서 주민들과 간담회를 갖고 “통일부가 대북전단 불법 살포 자제 요청을 했는데, 이를 어기고 계속하면 강력하게 처벌해야 한다. 정부 단위에선 앞으로 걸리면 엄벌하겠다”고 말했다.
송경화 기자 freehw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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