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버넌스 리포트] 대통령선거 투표율 79.4%가 상징하는 의미는?

김태현 기자 2025. 6. 18.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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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먼센스] 윤석열 전 대통령의 탄핵으로, 2025년 6월 3일 제21대 대통령선거가 처러졌다. 전국 투표율은 79.4%로, 대한민국 성인 10명 중 8명이 대통령선거에 참여했다. 이렇게 높은 투표율을 기록한 건 선진국 중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이에 전문가들은 "강력한 아사비야를 드러내는 징표"라고 꼬집는다. 투표율에 담긴 의미가 무엇인지 5가지 핵심 사안을 살펴보자. 

1. 우리나라의 높은 대통령 선거 투표율

제21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79.4%로, 우리나라는 지속적인 상승 추세를 보이고 있다. 2007년 63%에서 2022년에는 77.1%까지 상승했고, 이번에는 더 올랐다. 높은 투표율은 세계적으로도 이례적이다. 대통령 선거를 하는 주요 국가 중 우리나라보다 투표율이 높은 나라는 튀르키예(2023년, 84.15%), 브라질(2022년 79.41%) 정도다. 러시아(2024년, 77.49%), 아르헨티나(2023년, 76.32%)가 그 뒤를 따른다.

제21대 대통령 선거일인 3일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초등학교에 마련된 문래동 제1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소중한 한표를 행사하고 있다. 사진=최준필 기자

선진국 중 독보적 79.4%라는 숫자 뒤에 숨겨진

한국 사회의 특별한 힘은 무엇일까?

그런데 대통령 선거 투표율이 높은 나라 중 선진국은 우리나라밖에 없다. 게다가 러시아는 전쟁 중인 나라다. 국민적 통합력이 자연스레 높을 수밖에 없다. 튀르키예, 브라질, 아르헨티나는 의무투표제가 있는 나라다. 투표를 하지 않으면 벌금 등 불이익을 받는다. 대부분의 선진국은 우리나라보다 투표율이 크게 낮은데, 과연 무엇이 다른걸까?

 2. 제국의 씨앗, 강력한 아사비야

신뢰, 규범, 네트워크가 풍부하여 협력이 잘 이루어지는 사회를 '사회적 자본이 많은 사회'라고 한다. 이러한 사회는 통합력이 강하며, 역사학자 피터 터친(Peter Turchin)은 이러한 사회적 자본을 '아사비야(asabiya)'라고 불렀다. 아사비야는 아랍어에서 유래한 개념으로, 사회집단이 결속하여 집단행동을 할 수 있는 역량을 의미한다. 즉, 공동체적 결속과 내집단 의식에 기반한 사회적 연대를 가리킨다.

아사비야는 원래 1332년 튀니지에서 태어난 역사학자 이븐 할둔(Ibn Khaldun)이 창안한 용어다. 할둔 가족은 원래 세비야에 살았다. 하지만 레콩키스타(이베리아반도에서 가톨릭 왕국들이 이슬람 세력을 축출하기 위해 벌인 활동)로 인해 세비야가 기독교 세력에 넘어갈 것이 확실해지자 튀니지로 이주했고, 그곳에서 이븐 할둔이 태어났다. 할둔이 살던 시대에 북아프리카는 정치적으로 불안했다. 때문에 할둔은 북아프리카, 남부 스페인, 아랍 등지를 떠돌며 여러 왕을 섬겨야 했다. 그는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집대성한 '역사서설'에서 사회의 통합력을 의미하는 아사비야를 정의했다.

사회적 자본 '아사비야'의 크기는 사회마다 다르다. 다만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는데, 안정적인 사회는 아사비야가 약하다는 점이다. 예컨대 로마 제국 전성기에 제국의 안방인 이탈리아 중남부와 시칠리아가 그러했다. 로마 군단병 중 불과 3%만 이탈리아 본토 출신이었을 정도다. 이것이 비교적 소수의 이민족에게 본토가 유린당한 이유였다. 

반면 제국의 변방, 이민족으로부터 압력을 받는 지역, 문명의 단층선에서는 아사비야가 강력해진다. 강력한 아사비야는 제국의 씨앗이다. 그래서 새로운 제국은 늘 변방에서 태어난다. 그렇게 태어난 제국, 도심지에서는 다시 아사비야가 약해지고 쇠퇴한다. 

 3. 우수 거버넌스의 대만

예전에 동아시아 각국에 투자하는 한국인 펀드 매니저로부터 대만(타이완) 자본시장의 우수성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예를 들어 대만에서는 이사회 이사 선출에서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어 있다. 대만은 한때 기업이 자율적으로 집중투표제를 채택할 수 있도록 했으나, 문제가 발생하자 모든 상장기업에 집중투표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다.

또한 대만에는 SFIPC(Securities and Futures Investors Protection Center)라는 증권선물투자자보호센터가 있다. 이 기관에는 10여 명의 변호사가 재직하며, 투자자를 대신해 집단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다. 허위 공시, 분식회계, 주가 조작 등으로 피해를 본 투자자가 20명 이상 모이면 이들을 대리해 단체소송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또한 주주들을 대신해 잘못을 범해 손해를 끼친 이사들을 상대로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하기도 한다.

의무화된 집중투표제도를 둔 나라도 드물지만, SFIPC 같은 독특한 제도는 어찌 보면 대만의 절실한 노력 산물이다. 이런 노력으로 아시아 국가 중 대만의 기업 거버넌스 순위는 최상위권에 올라 있다.

왜 대만의 기업 거버넌스는 우수할까? 대만은 작은 나라이고, 자본시장도 작다. 중국과 사이에 항상 지정학적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거버넌스를 개선하지 않으면, 대만에 관심을 둘 해외 투자자들이 많지 않을 것이다. 대만은 스스로 살아남기 위해 거버넌스 제도를 가꾸지 않을 수 없었다.

제국은 넓은 영토를 다스리는 큰 나라를 의미하지만, 정복전쟁이 없는 오늘날의 세계에서는 본래적 의미의 제국이 쉽게 탄생할 수 없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전통적인 제국의 위상은 거대 다국적 기업에 대체되었다. 거대 다국적 기업은 여러 나라에 걸쳐 엄청나게 큰 자원을 통제·분배하고, 수만 명의 인재가 일한다. 사회를 변혁하는 성장과 혁신을 만들어낸다. 대만에는 이런 제국이 존재한다.

TSMC는 시가총액 1조 1065억 달러(1504조 원)으로 현재 세계 9위 글로벌 기업이 됐다. 사진=TSMC 제공

세계 8위의 아람코, 세계 16위의 텐센트 정도를 제외하고, 시총 20위의 상위권은 모두 미국기업이다. 우리나라의 삼성전자는 33위에 불과하다.

사실 대만 기업들도 대체로 가족 중심 기업이며, 대개 지배주주가 존재한다. 대만 지배주주들 역시 집중투표제가 그리 달갑지는 않을 것이다. SFIPC와 같은 기관도 당연히 불편할 것이다. 그러나 큰 위기 속에서 지배주주도 양보하고 통합을 위해 나아간다. 그래야 지배주주도 생존할 수 있고, 결과적으로 지배주주가 보유한 부도 더 커지게 된다. TSMC와 같은 제국은 이런 통합의 토대 위에서 자라난 것이다.

 4. 오늘날 제국의 진정한 변방

그러나 우리나라의 아사비야가 대만보다 훨씬 강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높은 대통령 선거 투표율은 강력한 아사비야를 드러내는 징표 중 하나다. 참고로 대만 총통 선거의 투표율은 71.86%에 불과했다. 대만에는 징병제도 없다. 중국과 전쟁을 해도 입대를 하지 않겠다는 여론이 청년들 사이에서 굉장히 높게 나온다. 언어, 역사, 문화가 중국 본토와 크게 차이 나지 않는다. 중국과 대만 사이 관계인 '양안관계'에서 현상유지를 원하는 여론이 높고, 독립에 반대하는 여론도 만만치 않다.

반면 우리나라의 아사비야 레벨은 원래 높다. 대제국 중국 옆의 사회 중 아사비야가 낮은 사회는 이미 멸망하거나 중국에 흡수되었기에 당연한 결과다. 아사비야 레벨이 원래부터 높기에 중앙집권도 상당히 일찍 이뤘다. 동학농민혁명이나 독립협회의 만민공동회 활동, 3·1 만세운동이나 4·19 혁명,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항쟁, 두 차례의 대통령 탄핵 등 우리나라 민중이 벌인 행동들은 다른 국가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일이다.

사실 엄밀히 말해 오늘날 제국의 변방은 대만이 아니라 한국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유일의 대제국인 미국의 동맹국으로 중국 핵심부와 지척으로 가깝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중국과 국경을 맞댄 나라인 베트남조차 중국 핵심부로부터는 거리가 멀다. 우리나라야말로 제국의 변방, 문명의 단층선 바로 위에 위치하고 있다. 게다가 거의 모든 산업에서 중국과 경쟁한다. 자칫하면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크며, 항상 변화하고 안주해서는 안 된다는 압력을 받는다. 혁신하고 발전해야만 살아남는다. 그렇기에 국민 하나하나의 교육수준, 의식수준, 역량도 높다. 그러니 강력한 아사비야 형성을 위한 모든 조건은 이미 완비된 셈이다.

한국이 자본을 생산적,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사회가 되면 다국적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아진다. 사진=Gemini

5. 엄청난 기업이 나올 잠재력

이번 대통령 선거에서 각 진영 사이에 엄청난 대립과 논쟁, 갈등이 있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 각 진영은 그야말로 대결집을 했다. 계엄으로 인해 실망한 유권자들 일부가 투표를 포기했을 수 있다는 것을 고려하고, 여론조사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당선이 쉽게 예측되는 상황이었기에 굳이 투표를 하지 않은 유권자가 있다는 것을 고려하면, 79%가 넘는 투표율은 더욱 놀라운 것이다. 심지어 당선과 그리 상관이 없는 이준석 후보조차 8%가 넘는 득표를 했다.

이때 주목해서 봐야 할 것은 대립하는 방향이 아니다. 결집의 정도와 세기다. 유권자가 누구에게 투표했든 상관없이, 이런 결집은 국가의 미래에 대해 각자가 절박하게 고민했다는 증거다. 절박한 고민은 만약 지도자에 의해 올바른 방향성만 제시된다면 무서운 통합력이 될 잠재적 에너지이기도 하다.

이번 선거에서 국민의 선택은 거버넌스 개혁이다. 자본을 최대한 생산적,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시스템을 만들어 달라는 것, 자리를 깔아달라는 것이 이번 선거에서의 선택이다. 우리 사회는 이미 강력한 아사비야가 존재하고 있기에 제도적 틀만 만들어주면 자본을 그 틀 위에 올려 곧바로 생산적, 효율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자연스레 더 많은 자본을 끌어들이게 된다. 이 선순환 구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현대적 의미의 제국 건설이 가능하다. 나는 우리나라에서 엄청나게 크고 혁신적인 다국적 기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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