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파시즘 사회를 넘어서 [김누리 칼럼]

한겨레 2025. 6. 17.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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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학교에서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 교육, 저항권 교육 등 정치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나,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능력’,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능력’,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민주 시민의 3대 능력으로 비중 있게 가르치는 것도 모두 파시즘 과거 청산의 일환이다. 우리는 어떤가. 군사 파시즘이 무려 32년간 지배한 나라에서 파시즘 청산의 노력은 너무도 미흡했다.
지난 1월25일 오후 ‘윤석열 즉각퇴진·사회대개혁 비상행동’ 주최로 열린 퇴진 촉구 집회에서 참가자들이 내란 피의자 윤석열 전 대통령을 히틀러처럼 풍자한 천을 두르고 있다. 윤운식 선임기자 yws@hani.co.kr

김누리 | 중앙대 교수(독문학)

윤석열 내란 사태를 겪으며 우리는 한국 사회가 민주주의 사회라기보다는 후기파시즘 사회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군사독재에서 민주주의로 이행한 사회가 아니라, 전기파시즘에서 후기파시즘으로 이행한 사회가 아닐까라는 충격적인 인식에 이르게 된 것이다.

권위 있는 파시즘 연구자인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보다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더 위험하다”고 했다.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파시즘’이 전기파시즘이라면, ‘민주주의 속에서의 파시즘’이 후기파시즘이라고 하겠다. 전기파시즘이 ‘제도로서의 파시즘’이라면, 후기파시즘은 ‘태도로서의 파시즘’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전기파시즘은 오래전에 끝났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군사파시스트들,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는 지금 모두 무덤 속에 있다. 그러나 과연 후기파시즘도 청산되었는가.

히틀러는 1933년 정권을 잡고, 1945년 2차 세계대전 패전으로 몰락했다. 히틀러 정권은 6년간 전쟁을 준비하고, 6년간 전쟁을 수행한, 그야말로 ‘전쟁 정권’이었다. 전후 독일(서독)은 이 12년간의 나치 과거를 청산하는 것을 국가의 ‘정체성’으로 삼았다.

하나의 사례로 ‘의례 금욕주의’를 보자. 독일은 세계에서 가장 의례(ritual)를 하지 않는 나라이다. 심지어 졸업식이나 학위수여식도 하지 않는다. 요제프 괴벨스가 정치적 의식(ceremony)을 통해 국민의 의식(consciousness)을 장악하려 했던 끔찍한 과거에 대한 반성 때문이다. 모든 의식의 배후에 도사린 파시스트적 프로파간다의 위험성을 간파한 것이다.

학교에서 반권위주의 교육, 비판 교육, 저항권 교육 등 정치 교육을 강조하는 것이나, 권력의 억압에 ‘저항하는 능력’, 사회적 불의에 ‘분노하는 능력’, 약자의 고통에 ‘공감하는 능력’을 민주 시민의 3대 능력으로 비중 있게 가르치는 것도 모두 파시즘 과거 청산의 일환이다.

우리는 어떤가. 군사 파시즘이 무려 32년간 지배한 나라에서 파시즘 청산의 노력은 너무도 미흡했다. 민주 정부가 들어선 이후에도 장구한 기간 파시즘 정권이 한국 사회에 심어놓은 파시즘의 잔재들, 한국인의 내면에 새겨놓은 파시즘의 문양들은 전혀 지워지지 않았다. 우리는 지금도 행사 때마다 ―심지어 야구장에서도― 국기를 향해 “몸과 마음을 바쳐 충성을 다할 것을 굳게 맹세”하면서, 이것이 파시즘의 유산임을 알지 못한다. 한국인의 성격 구조가 파시즘 사회에 전형적인 ‘권위주의적 성격’에 물들어 있음을 깨닫지 못한다.

윤석열 내란 사태는 우리가 민주주의 사회가 아니라, 후기파시즘 사회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섬광처럼 환기해 주었다. 어떻게 내란 동조범이 대선에 출마하여 41%를 득표할 수 있으며, 어떻게 내란 동조 정당이 제1야당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왜 이렇게 되었는가. 무엇보다도 두가지 원인이 있다. 첫째는 태도로서의 파시즘, 일상의 파시즘, ‘우리 안의 파시즘’을 청산하려는 진지한 시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파시스트를 민주주의자로 변화시키는 결정적인 전환점이 없었다. 파시즘 치하에서 훈육받은 세대는 대다수가 여전히 파시스트적 태도와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이른바 ‘87체제’도 전환점은 아니었다. 노태우 정부는 후기파시즘 사회로의 부드러운 이행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후기파시즘에 대한 각성과 자각을 무디게 했다.

두번째 원인은 사회적 파국의 감정이다. 아도르노는 파시즘에 대한 고전적 분석인 ‘신극우주의의 양상’에서 파시즘은 대중이 갖는 ‘사회적 파국의 감정’과 관련이 깊음을 갈파한다. “파시즘 운동은 어떤 면에서는 파국을 원한다. 그것은 세계 몰락의 판타지를 먹고 산다.” 파시즘 운동에는 “재앙과 파국을 바라는 무의식적 소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의 경우가 그렇다. 모든 국제적 지표가 가리키듯이, 한국은 사회적 파국이 목전에 와 있는 사회다. 이런 사회에서 파시즘이 고개를 쳐드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후기파시즘 사회를 어떻게 넘어설 것인가. 가장 시급한 것은 윤석열과 그 추종자들을 낳은 정치사회적 구조를 근본적으로 뿌리 뽑는 일이다. 먼저, 한국 학교가 길러낸 최고의 우등생들이 대부분 파시스트라는 충격적인 사실은 교육혁명의 절박성을 일깨운다. 경쟁교육을 존엄교육으로 전환하고, 교사의 정치적 시민권을 즉각 복원해야 한다. 또한 내란 동조 정당이 ‘최악의 경우에도’ 제1야당이 되는 어처구니없는 정치지형도 이제 바꿔야 한다. 선거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정치지형을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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