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없앴는데 또 “불 놔라” 요구 등장…제주들불축제 방향 ‘도돌이표’
좌광일, 제주에만 있는 오름 주목 “생태 가치 부합한 축제 돼야”
기후 위기를 맞닥뜨린 시대적 변화와 요구에 따라 불(火)을 모두 빛(光)으로 대체한 제주들불축제의 향후 발전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불을 놔야 한다는 주장이 되풀이됐다.

제주시는 17일 오후 2시 제1별관 회의실에서 '제주들불축제 발전 방향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 자리에서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는 축제가 핵심인 들불을 없애 "팥 없는 찐빵" 신세로 전락, 정체성을 잃은 만큼 축제 명칭과 시기, 장소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불빛 축제로 전환한 만큼 이름을 바꾸고 날씨에 따라 성패가 좌우되지 않도록 비교적 기상 여건이 양호한 계절로 축제 시기를 변경할 필요가 있다고 피력했다.
또 디지털을 주제로 정한 만큼 오름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오름에서 해야 한다면 제주에만 있는 오름의 가치에 주목한 생태축제로의 전환을 요구했다.
좌 대표는 "들불축제의 방향성은 이미 나와 있다. 지난 2023년 진행한 숙의형 정책개발 과정에서 나온 권고문을 참고하면 된다"며 "여기서 중요한 키워드는 생태 환경, 도민 참여였다. 그렇다면 이번 축제에 과연 생태 환경과 도민 참여 가치가 있었나"라고 지적했다.
이어 "미디어아트는 이미 대부분 지자체가 유행처럼 하고 있는 방식이고 불꽃쇼 역시 국내 3대 개최지가 있다"며 "이를 따라하는 것은 독창성, 차별성, 창의성이 떨어지는 방식이다. 그래서 축제의 이름과 성격, 내용, 방향을 완전히 바꿀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주장했다.
또 "제주에만 있는 오름의 가치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오름을 테마로 오름이 갖는 역사적, 문화적, 경관적 가치에 집중한 프로그램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며 "실제로 올해 들불축제에서 선보인 오름 야간 트레킹이 호응을 얻지 않았나"라고 되물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름을 직접 체험하고 오름의 매력을 알릴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오름을 주제로 한 친환경 생태축제로 거듭날 필요가 있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토론회에서는 오훈성 한국문화관광연구원 부연구위원과 고미 제주도농어업유산위원회 위원이 각각 '제주들불축제의 정체성 지향점'과 '축제, 순환-생명-공동체의 기억 확장의 장으로'를 주제로 발표에 나섰다.
발표자들은 오름 불놓기와 같은 핵심 콘텐츠를 없애면서 사라진 정체성에 대한 깊이 있는 고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 청정 제주의 가치를 축제에서 어떻게 발현시킬 수 있을지 고민하고 공동체 의식 형성이라는 본래 취지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어진 토론은 문성종 제주한라대학교 교수를 좌장으로 △고선영 제주연구원 부연구위원 △위영석 한라일보 부국장 △이인재 가천대학교 교수 △좌광일 제주주민자치연대 대표 △홍선영 사람손공동체 대표가 참여했다.
고선영 부연구위원은 들불축제를 새별오름만이 아니라 마을마다 공모를 통해 진행시키는 분산화 아이디어를 제시했다. 홍선영 대표는 새별오름을 무대로 제주의 자연과 사람들이 공존해 온 이야기를 서사극 형태로 구현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위영석 부국장은 들불을 없앤다면 축제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며 "계속 미디어파사드 형태의 축제라면 과감하게 폐지하고 새로운 축제를 계획하는 것이 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불놓기 때문에 탄소가 배출된다면, 이를 상쇄할 방안을 고민해야한다고 피력했다.
위 부국장은 불놓기를 유지할 방안에 대한 고민과 대안 제시가 부족했다며 "새별오름에 불을 놓는 대신 축제 방문객에게 차량을 이용하지 못하게 한다거나 버스만 이용하게 해서 불놓기로 인한 탄소 배출을 상쇄할 수도 있다"는 의견도 제시했다.
이인재 교수는 "만약 새판을 짠다면 공동체 의식 형성 문제를 반드시 고민해야 한다. 관광객을 위한 축제를 할 것인지, 지역주민을 위한 축제를 할 것인지에 따라 갈림길도 갈린다. 그래서 목표를 명확하게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날 김완근 제주시장은 "기후 위기와 시대적 흐름에 맞춰 콘텐츠를 디지털로 전환하는 새로운 시도를 선보였다"며 "축제의 전통을 지키면서도 미래 지향적 가치를 담아내려는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올해 축제를 평가했다.
이어 "변화에 있어 긍정적 평가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축제 정체성이 약화됐다는, 제주 전통 요소가 부족하다는 우려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라며 "기술적 부족함은 시간이 지나 보완할 수 있지만, 방향을 잃은 축제는 결코 오래 이어질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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