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망했어"…美대졸자, 더이상 취업 성공 신화는 없다

방성훈 2025. 6. 17. 14:44
음성재생 설정 이동 통신망에서 음성 재생 시 데이터 요금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글자 수 10,000자 초과 시 일부만 음성으로 제공합니다.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美 대졸 청년 실업률, 사상 처음 전체 평균 상회
'좋은 대학 나오면 좋은 직장에 취업' 공식 깨져
대졸자 vs 비대졸자 임금 격차도 10년새 대폭 축소
유럽·캐나다·일본 등서도 ‘고학력 무용론’ 확산

[이데일리 방성훈 기자] 미국과 유럽에서 ‘좋은 대학을 나오면 좋은 직장을 얻을 수 있고 안정된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성공 공식이 무너지고 있다고 이코노미스트가 1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사진=AFP)

미국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에 따르면 올해 3월 말 기준 미국의 22~27세 대졸자 실업률은 5.8%를 기록했다. 이는 미국 전체 실업률 평균(4.2%)을 처음으로 넘어선 수치다. 유럽연합(EU)에서도 고등교육을 받은 20~24세 청년 실업률이 올해 3월 기준 14~15% 수준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전체 청년 실업률(14.5%)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대졸자라고 취업에 더 유리한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코노미스트는 “영국, 캐나다, 일본 등에서도 대졸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교 졸업장은 더이상 취업이나 높은 임금을 보장하지 않는다. 특히 첫 취업을 준비하는 신규 졸업생들의 구직난은 (과거보다 더욱) 심각하다”고 짚었다. 실제 미국 스탠퍼드대 경영대학원(MBA) 졸업생의 3개월 내 취업률은 2021년 91%에서 2024년 80%로 하락했다.

대졸자와 고졸자의 임금 격차도 빠르게 줄고 있다. 뉴욕 연은에 따르면 2015년 대졸자 임금은 고졸자 대비 69% 높았으나, 지난해에는 50%까지 줄었다. 대졸자의 직업 만족도 역시 비졸업자와의 격차가 7%포인트에서 3%포인트로 좁혀졌다.

인공지능(AI)·자동화에 따른 기술 일자리 축소, 대학을 졸업하지 않아도 고급 기술을 습득할 수 있는 환경 조성, 대학교의 급격한 팽창에 따른 입학생 역량 및 교육의 질 저하, 법률·금융·공공부문 등 전통적으로 대졸자들이 독식했던 일자리 감소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이코노미스트는 “대학의 급격한 확장으로 전반적인 수준이 낮아졌기 때문일 수 있다”며 “대학이 과거보다 덜 유능한 학생들을 받아들이고 이에 따라 교육의 질마저 떨어지면 고용주들은 대졸자와 비대졸자의 역량 차이를 덜 느끼게 된다”고 짚었다.

실례로 피츠버그 주립대 수잔 칼슨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미국에선 많은 학생들이 사실상 ‘기능적 문맹’ 상태다. 예를 들어 영문학 전공자조차 찰스 디킨스의 ‘블리크 하우스’ 첫 문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지적이다. 한 마디로 과거보다 교육 수준이 현저히 떨어진다는 의미다.

샌프란시스코 연은의 레일라 벵갈리 연구팀은 기술 변화를 대졸 프리미엄 축소의 원인으로 꼽았다. 예전에는 대학에 진학해야만 컴퓨터를 다룰 수 있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다룰 수 있다. 이에 고용주는 과거 대졸자만 시켰던 일을 이젠 비대졸자에게도 맡길 수 있게 됐다.

AI 등의 기술 발달로 대졸자 우대 산업 분야 일자리도 줄었다. EU 내 금융·보험 분야에 종사하는 15~24세 청년 수는 2009~2024년 16% 감소했다. 미국에선 법률·금융 20대 청년 종사자 수가 10% 줄었다.

기업들도 대졸자보다 실질적인 능력이나 경험을 더 중시하는 추세다. 미국은 올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주도로 공공부문에서 대량 해고까지 발생했다. 즉 고용 시장에 법률·금융 경력자가 쏟아졌다. 이는 신규 취업을 시도하는 청년층에게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일각에선 대학 진학이 시간 낭비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예를 들어 프랑스, 아일랜드 등은 최근 10년 새 대학생 수가 각각 36%, 45% 증가했지만, 예술·인문·사회과학 등 비실용 전공 쏠림이 심화해 졸업 후 일자리 미스매치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학 진학률 증가로 학위 가치가 희석된 측면도 있으나, 더 큰 원인은 기술 변화와 산업구조 재편, AI·자동화 등 ‘대졸자만의 특권’이 사라진 데 있다”며 “최근 기업들은 비대졸자 채용 확대, 현장 기술교육 강화 등을 통해 인재 확보 전략을 바꾸고 있다. 대학과 정부도 새로운 인재 전략을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조언했다.

방성훈 (bang@edaily.co.kr)

Copyright © 이데일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