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화단에서 작은 날개를 펼치다…되지빠귀 5형제의 첫 비행

예전에는 새들이 번식하는 모습을 보려면 산과 들로 가야 했지만, 이제는 아파트 단지 안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고 단지 주변에 공원이 들어서면서 도심 속에서도 새들의 번식 장면을 종종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
지난 4월 중순쯤부터 필자가 살고 있는 경기도 김포시의 아파트 단지 내부에서도 되지빠귀의 아름답고 청아한 소리가 아침저녁으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도시의 소음 속에서 들려오는 뜻밖에 맑고 신선한 소리다. 되지빠귀가 영역을 확보하려는 울음소리였다. 주변에 둥지를 틀 모양이었다.




새들은 왜 아파트 경내에 번식하려 할까. 이것은 일종의 방어 전략인데, 사람이 자주 오가는 공간은 맹금류 같은 천적이 쉽게 날아들지 않고 까치·까마귀·길고양이 등 새끼를 공격할 수 있는 다른 위험 요소도 줄어들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도처에 벚나무 열매도 있고, 나무 아래 땅에는 되지빠귀의 주식인 지렁이도 풍부하다.


지난달 말부터 귀를 쫑긋 세우고 울음소리가 들리는 곳에 집중해 되지빠귀를 찾아보기로 했다. 좀처럼 둥지 찾기가 어려웠는데, 5월21일 먹이를 물고 가는 되지빠귀를 만났다. 되지빠귀가 자주 다니는 동선을 파악한 지 사흘째(5월23일), 4m 남짓 낮은 단풍나무 사이로 들어가는 되지빠귀를 발견했다. 나뭇가지가 우거진 곳에 둥지를 틀어 얼핏 보면 잘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사람들이 자주 오가는 출입구 옆 단풍나무였다.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본능적으로 ‘천적 방어 전략’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조심히 들여다보니, 둥지에 실눈을 뜨고 있는 새끼들이 여럿 보였다. 태어난 지 6일쯤 되어 보였다. 아직 작고 연약한 몸이지만, 부지런히 입을 벌리고 어미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미가 벚나무 열매를 물고 오자, 새끼들은 목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면서도 먹이를 보챘다.




새끼를 키우느라 바쁜 건 암컷뿐이 아니다. 수컷 되지빠귀는 부지런히 지렁이를 물고 와 암컷에게 건네고, 부부는 새끼에게 골고루 먹이를 나눠준다. 수컷은 둥지를 떠날 때와 먹이를 물고 올 때 울음소리를 내는데, 이는 새끼들과 암컷에게 ‘다녀올게’ 혹은 ‘다녀왔어’라고 건네는 신호다. 암컷은 수컷보다 주변 경계를 더욱 철저히 하면서 신중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다.







되지빠귀 가족을 관찰한 지, 닷새가 되자 새끼들이 부지런히 깃털을 다듬고 쉼 없이 날갯짓을 했다. 둥지 밖으로 나갈 조짐이다. 새끼 가운데 한 마리가 용기를 내어 둥지를 박차고 날아올랐다. 이에 뒤질세라 다른 녀석들도 차례차례 둥지 밖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러나 항상 둥지를 버리지 못하는 겁 많은 막내가 있기 마련이다. 네 마리가 모두 둥지를 떠나고서도 한 마리가 홀로 남아 망설이자 결국 어미가 나서서 먹이로 유인한다. 새끼 되지빠귀가 어미의 성화에 못 이기는 척 용기를 내어 마침내 둥지 밖으로 날아올랐다. 이렇게 뒤지빠귀 이소(새끼가 둥지를 떠나는 것)가 모두 끝났다.





이때부터는 생존이 목표다. 둥지 밖은 훨씬 위험하기 때문이다. 아직 연약한 날개는 천적이 공격해도 제대로 날 힘이 없어 위험에 무방비로 노출된다. 새끼들은 저마다 몸을 움츠리고 땅바닥의 어두운 곳이나 나뭇가지 위에 올라서서 어미가 잡아다 주는 먹이를 조용히 받아먹는다. 어미도 새끼가 스스로 먹이를 찾을 수 있고 잘 날아다닐 때까지 살뜰히 보살핀다. 둥지 밖으로 나왔지만, 여전히 자세히 관찰하지 않으면 모습을 찾기 어렵다. 천적에게 들키지 않으려는 본능적인 행동 덕분이다.
이소 3일 차, 처음 둥지를 벗어났을 때는 5m 정도를 날던 되지빠귀 새끼가 이제는 20여m를 비행한다. 그러면서 재빠른 종종걸음으로 어미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재촉한다. 언제든 앞으로 튀어나갈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는 새끼 되지빠귀는 다리는 길고 꼬리는 짧다. 이렇게 달음박질에 적합한 몸매는 주로 땅에서 생활하고 사냥하는 되지빠귀에게 맞춤이다.
6월 초가 되자 새끼들의 생활도 다양해진다. 6월1일, 길고양이가 나타나자 어미 되지빠귀가 다급하게 울어댄다. 주변에 다른 새들도 난리를 친다. 어린 되지빠귀는 나뭇잎 속에 몸을 숨기고 빼꼼히 고양이를 주시한다. 다행히 고양이도 제 갈 길을 가고, 작은 숲 속에 안정이 찾아온다. 6월3일, 그동안 어미를 따라다니며 먹이를 받아먹던 새끼들이 나무 위로 날아올라 자유롭게 행동한다. 둥지 반경 30m 이내, 아파트 단지가 새끼들의 영역이다.
그래도 땅바닥에서 먹이를 받아먹는 것이 더 편한지, 어린 되지빠귀는 숲에 숨어있다가 어미가 먹이를 가져오면 잽싸게 받아먹는다. 6월4일, 어미가 잘 익은 진한 보랏빛 벚나무 열매를 물어다 준다. 이튿날 새끼는 자리를 이동하면서 스스로 먹이 찾는 시늉도 하고 제법 분주하게 날아다닌다. 6월6일 이소 9일째, 드디어 되지빠귀 새끼가 스스로 지렁이를 찾아내 첫 사냥에 성공했다. 이제 높은 나무 꼭대기도 거침없이 날아오르고 점점 제 앞가림을 하기 시작한다.
특이한 점은 새끼를 돌보던 되지빠귀 부부가 새끼들이 어느 정도 자라나자 다시 짝짓기를 시작한 것이다. 어미도 둥지 재료를 물고 다니기 시작했다. 새끼들이 ‘독립’을 마칠 즈음 6월7일 다시 한 번 둥지를 튼 모습을 발견했다. 되지빠귀가 새끼를 기르면서 2차 번식을 하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지난 30여년 동안 새를 관찰했지만, 되지빠귀의 2차 번식을 본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새들을 보편적으로 둥지에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하지 않는 이상 봄에 한 번 번식한다.
6월10일 어미 되지빠귀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관찰한 대로 포란(새가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하는 일)에 들어갔다. 새끼 이소 후 바로 2차 번식이 가능하다는 것을 이번 사례로 처음 알게 됐다. 둥지는 1차 번식 때와 마찬가지로 출입구 근처 단풍나무에 틀었다. 이제 수컷이 먼저 난 새끼들을 관리하고, 암컷은 포란을 전담했다.
6월 중순이 되자, 훌쩍 자란 어린 되지빠귀 5형제가 제각기 흩어져 눈에 잘 띄지 않았다. 각자 살길을 찾아 나선 모양새다. 이렇게 ‘아파트 이웃’이 된 26일, 5형제는 떠났지만, 부부는 아직도 양육 중이다. 2차 육아에서도 새끼들을 훌륭하게 키워낼 거라 기대해본다.
■ 윤순영의 탐조 사전: 되지빠귀는?
되지빠귀는 러시아 동아시아 남부, 중국 동북부, 한국 등지에서 번식하고 중국 남부와 베트남 북부에서 겨울을 난다. 우리나라를 통과하는 나그네새이며, 흔하지 않게 번식하는 여름철새다. 그늘진 숲 속에서 지렁이를 주식으로 하고 곤충, 애벌레, 열매도 즐겨 먹는다.
우리나라에는 4월 초순부터 도래해 번식하고, 10월 중순까지 관찰된다. 활엽수림이나 상록수림에 둥지를 튼다. 가느다란 나뭇가지 위에 식물의 줄기, 뿌리, 흙을 이용해 밥그릇 모양의 둥지를 만들고, 내부에는 가는 풀뿌리를 깐다. 알은 4~5개 낳으며 14일 후에 부화하고, 새끼는 12일쯤 후에 둥지를 떠난다.
몸길이는 20~23㎝이고 무게는 평균 66.7g이다. 수컷 머리를 포함한 몸 윗면은 균일한 청회색, 목과 앞가슴은 엷은 회색이다. 가슴 옆과 옆구리는 조금 붉으면서 누런빛을 띄고, 배 중앙에서 아래꼬리덮깃까지 흰색, 부리는 노란색이다.
암컷 몸 윗면은 수컷과 거의 같은 균일한 청회색을 띤 갈색이며 검은색 턱선이 뚜렷하다. 앞가슴은 엷은 회색이고 멱, 가슴, 옆구리 윗부분에 검은 반점이 흩어져 있다. 가슴 옆과 옆구리는 수컷 되지빠귀와 같다. 부리는 노란색이다.
글·사진 윤순영 한국야생조류보호협회 이사장, 촬영 디렉터 이경희, 김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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