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m 철탑에서 헤드뱅잉 “신나!”…고공농성과 퀴어축제의 만남

신동욱 기자 2025. 6. 17.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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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
고공농성 중 퀴어축제 참가 후기 페이스북에 남겨
김형수씨가 14일 서울 장교동 철탑에서 바라본 서울 퀴어문화축제 모습. 김형수 지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30m 높이 철탑 위에서 퀴어축제에 참가한 사람이 있다. 몸을 움직이는 대로 철탑도 흔들리지만 그는 미리 신청한 노래가 흘러나오자 허리춤도 췄다고 신나했다.

김형수 전국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장은 14일 페이스북에 ‘92일차 고공에서 함께한 퀴어 퍼레이드!’라는 글을 사진·동영상과 함께 올렸다. 김 지회장은 “원청업체인 한화오션이 직접 나서서 하청노동자들의 임단협 문제를 해결하라”고 요구하며 지난 3월15일부터 서울 중구 장교동 한화빌딩 앞 30m 높이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에 올라가 농성 중이다.

김형수 금속노조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장이 원청인 한화오션에 임금 직접 교섭을 요구하며 3월16일 서울 중구 한화빌딩 앞 30m 폐회로텔레비전(CCTV) 철탑에 올라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다. 김영원 기자 forever@hani.co.kr

이날은 26번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열린 날이었다. 이날 오전 11시부터 오후 7시까지 서울 중구 남대문로와 종로구 우정국로 일대에서 ‘서울퀴어퍼레이드 2025’가 펼쳐졌다.

퍼레이드가 지나가는 길목에 그가 고공 농성 중인 철탑이 있다. 김 지회장은 퍼레이드 행렬을 보며 “고공3사 트럭이 퀴어퍼레이드 선두”라며 “(평소 알고 지내고 철탑 아래에 있는) 맘마 동지가 행진(이) 지나갈 때, 듣고 싶은 노래 있냐고 해서 영화 ‘헤드윅’의 오리지널사운드트랙(OST) 중 ‘앵그리 인치’를 신청했다”고 했다. 이어 그는 “허리도 제대로 못 펴는 몸으로 오랜만에 (음악에 맞춰 머리를 흔드는) 헤드뱅잉까지 했더니, 삭신이 아프다. 그래도 신났다”고 소감을 밝혔다.

14일 퀴어문화축제의 퍼레이드 가장 앞에 고공3사 조합원 등이 탄 1호차가 지나고 있다. 페이스북 갈무리

행렬 가장 앞에 선 1호차에는 노동자들이 고공 농성 중인 사업장인 고공3사(서비스연맹 관광레저산업노동조합 세종호텔지부, 금속노조 한국옵티컬하이테크지회 및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연대하는 시민들이 타고 있었다.

해마다 퀴어축제의 가장 상징적인 단체 차량이 퍼레이드 선두에 서는데, 올해는 성소수자와 노동자의 연대를 상징하는 고공3사의 차량이 선두에 선 것이다.

뜨거운 햇볕 아래서도 ‘저 위에 사람들이 있다’고 적힌 현수막을 걸고 무지개로 꾸민 차량 위에서 참가자들은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을 췄다. 차량 앞에는 올해 서울퀴어문화축제의 슬로건 가운데 하나인 ‘노동자 안에 퀴어 있다’, ‘퀴어 안에 노동자 있다’는 알림판이 걸려 있었다.

김 지회장은 이들의 모습을 보고 춤을 췄다는 이야기를 전하며 “고공농성 92일차지만, 잠시 신나도 되잖아”라며 “차별과 혐오없는 새세상을 꿈꾸는 사람들! 모르는 사람들이지만, 동지이자 앨라이(성소수자 인권 지지자)들! 좋다!”고 감탄했다.

김형수 지회장 페이스북 갈무리

김 지회장이 서울 중심가에서 석 달 넘게 농성하게 된 사연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조선하청지회는 2022년 ‘조선업 불황기’에 삭감됐던 임금 원상회복과 하청 노동자 처우개선 등을 내걸며 51일간 파업을 벌였다. 당시 노조는 원청업체인 대우조선해양(현 한화오션)에 직접 교섭을 요구했지만 원청사는 거부했다.

이후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참가 노동자들을 무더기로 고소했고 지난 2월 1심에서 하청 노동자들은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형 집행유예,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김 지회장도 징역 3년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에 따른 회사의 손해 470억원을 배상하라며 노조 집행부 5명을 대상으로 470억원 손해배상청구 소송도 제기했는데, 현재 한화오션이 이 소송을 승계해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3년 전과 견줘 지금의 상황은 크게 변한 게 없다. 지난 3월부터 한화오션 사내협력사협의회와 임금·단체협약 협상 교섭을 진행하고 있지만 조선하청지회의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원청인 한화오션이 묵묵부답인 가운데 단식농성을 벌이기도 했던 김 지회장은 3월15일 철탑에 올랐다.

한편, 이날 퀴어문화축제에서는 다른 고공농성장과의 연대도 두드러졌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축제 무대에 올라 연설하면서 “구미옵티칼엔 세상에서 가장 용감한 여성노동자 박정혜가 524일째 불탄 공장의 폐허 위에 있다”며 “그가 있는 옥상은 42도. 곧 폭우와 폭염이 닥칩니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김 지도위원은 “노동자를 해고하고 7명의 고용승계를 거부한 채 156명을 신규채용하고 3년째 어떤 대화에도 응하지 않는 일본 먹튀기업 니토덴코를 국회청문회에 세우기 위한 청원이 진행 중”이라며 “휴대폰을 꺼내 큐알 코드에 접속해달라”고 호소했다.

14일 서울퀴어문화축제 무대에서 연설하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 엑스(X·옛 트위터) 갈무리

무대에서 내려온 김 지도위원은 ‘한국옵티칼하이테크 고용승계 청문회 개최에 관한 국회 국민동의 청원’으로 이어지는 큐알 코드를 목에 걸고 다니며 서명을 호소하기도 했다. 이날까지 4만명에 못 미치던 국민동의청원 동의자 수는 이틀 만에 1만명 넘게 참여하면서 16일 국회 상임위 회부에 필요한 5만명을 넘겼다. 퀴어퍼레이드를 계기로 온오프라인에서 청원을 공유한 영향이 컸던 것으로 보인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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