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통령의 ‘셰셰 외교’, 시효는 끝났다 [매경포럼]
‘셰셰’ 대신 韓입장 요구 커져
李, G7 등 다자무대 참석해
‘실용외교’원칙 적극 알려야
1990년대 대학을 다닐 때만 해도 국내 국제정치학 책에는 ‘약소국 외교정책’이라는 장(章)이 있었다. 외무고시에서 단골 예상 문제이기도 했다. 요체는 강대국 사이에서 균형과 편승, 등거리, 다자주의 등의 전략으로 누구와도 척지지 말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이른바 ‘셰셰(謝謝)론’은 약소국 외교책략에 속할 것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에 우리가 왜 끼어드나”라는 발언도 마찬가지다. 그에게는 주변국들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무관심과 저자세가 최고 외교 덕목이 된다.
이해 가는 점도 있다. 한 표가 아쉬운 선거에서는 외교문제를 놓고 장황한 설명 대신 코믹한 표정과 몸짓으로 ‘셰셰’를 외치는 게 더 낫다. 상대국에 우리 속내를 내보이지 않으려 셰셰 하며 넘어갔을지 모른다. 더욱이 주변 4강에다 북한 핵무기까지 머리에 지고 있는 우리나라는 지정학적으론 아직 약소국이다. 정권 교체 때마다 서방과 러시아 사이에서 홍역을 치르는 우크라이나처럼 우리도 미·중 간 선택 압박이 숙명처럼 반복된다. 지난 정부 때 러시아의 대북 군사기술 제공은 ‘레드라인’을 넘는 것이라며 엄포를 놓았지만 상대는 전혀 겁먹지 않았다. ‘넘으면 어쩔 건데’라는 소리만 들렸다.
이런 맥락에서 셰셰론은 일종의 ‘전략적 모호성’을 갖고 우리의 평화와 안정을 도모하는 약소국의 생존 방식일 수 있다. ‘균형 외교’라고 그럴듯하게도 불린다.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백악관 수석전략가였던 스티브 배넌은 최근 인터뷰에서 한미 동맹과 한중 우호관계를 동시에 갖는 것은 헛소리이자 불가능하다고 했다. 한국이 친중 행보를 하면 미국의 보복을 부를 것이라는 위협으로도 읽힌다. 중국한테는 사드 보복을 이미 경험해봤다. 미·중이 계속해서 우리에게 강도 높은 피아(彼我) 구분을 요구할 텐데 대통령이 된 뒤에도 ‘셰셰’만 해선 답이 안 된다.
엘브리지 콜비 미 국방부 정책차관은 2021년 출간한 책 ‘거부 전략(Strategy of Denial)’에서 중국의 공세에 맞서 아시아 내 반(反)패권연합을 제안했다. 일본과 호주를 필두로 한국, 인도 등을 거론하면서 이들이 중국에 포섭되는 것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봤다. 미국 관리들이 주한미군의 대중국 방어 역할을 부쩍 강조하고,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의 ‘안미경중(安美經中)’ 태도를 비판한 것도 거부 전략 맥락 안에 있다. 우리에게 어느 편에 설 것인지 계속 묻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해리 해리스 전 주한 미국대사는 한 세미나에서 한국이 과거에 경험하지 못한 ‘실존적 위협(existential threat)’에 처해 있다고 했다. 국가 생존까지 걱정해야 할 정도로 초위기 상황이라는 것이다. 그는 북·러 군사협력과 핵무장 지원 가능성, 최근 중국의 서해 공정 등을 이유로 꼽았다. 혈맹이 된 북·러가 무슨 일을 더 벌일지 모를 두려움과 우리의 무기력한 대응을 보면 일견 수긍이 간다. 주한미군 감축과 재배치, 방위비 분담 압박, 불확실해진 핵우산 등 미국 측의 비협조·방관 가능성도 있다. 외교는 가장 비극적인 상황까지 염두에 두라는 국제정치학자 로버트 캐플런의 얘기가 요즘 들어 가벼이 들리지 않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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