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적 공존의 시대 ‘슬기로운 경쟁자 활용법’[박찬희의 경영전략]

2025. 6. 17. 0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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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스타와 스토리를 만든다.
무명가수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고
정치도 경선과 선거의 과정을 통해 리더십의 밑천이 생긴다”



경쟁자는 동업자다. 경쟁이 있어야 발전도 있고 판 자체가 커진다. 경쟁과 협력은 동전의 양면이다. 통신사업자들의 경쟁으로 판이 커지면 네트워크 투자와 애플리케이션(앱) 개발이 확대된다. 사업적으로 협력하는 통신사업자와 단말기 제조업체, 운영체제(OS) 사업자는 사업적 주도권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이다. 경영학 책에 나오는 밸류넷(value-net)은 이를 게임이론의 틀에서 정리한 개념이다.

조금만 생각하면 당연한 얘기이고 어디서나 듣는 얘기지만 현실에서는 쉽지 않다. 전쟁을 위해서는 작은 전투에서 물러서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불행히도 그 작은 판에 목숨을 건 사람에게는 사정이 다르다. 눈앞의 이득을 놓고 아웅다웅 싸우다 보면 엉뚱한 사람이 이득을 보는 어부지리(漁父之利)가 되는 것을 뻔히 알아도 당장 물러나면 내일이 없는 난감한 경우도 있다. 그 한심하고 치졸한 속사정에서 지혜를 찾아보자.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널리 알려진 것처럼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Bill Gates)와 애플의 스티브 잡스(Steve Jobs)는 오랜 애증의 관계를 이어왔다. 애플의 초기 모델에 꽂힌 빌 게이츠는 당시 IBM 개인용 컴퓨터의 ‘보완재 혹은 부품’ 개념이던 운영체제(MS-DOS)를 범용 개념으로 삼아 새로 열리는 정보통신 세상의 주인공이 됐다. 이 과정에서 스티브 잡스와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됐다고 한다.

마이크로소프트가 운영체제와 인텔의 프로세서로 움직이는 개인용 컴퓨터에 통신망이 연결되면서 그 위상은 더욱 강력해진다. 반면 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해고되는 등 어려운 시절을 보내는데 그래픽을 기반으로 하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윈도(Windows) 운영체제는 그의 눈에는 애플을 ‘베낀 것’으로 보였다. 한때 도와주던 ‘어린 친구’의 의리 없는 반칙이었다.

그러나 1997년 애플에 복귀한 스티브 잡스는 빌 게이츠를 찾아가 도움을 얻는다. 당시 IT업계에선 파격적인 1억5000만 달러의 투자를 받아낸 것이다. 자금 고갈로 거의 파산 지경이던 애플에 이 돈은 단순한 현금 유입을 넘어 시장의 신뢰를 얻는 데 큰 도움이 됐다. 스티브 잡스는 이를 바탕으로 매킨토시 컴퓨터를 업그레이드 하고 이후 아이팟(i-pod) 등 이어지는 혁신 제품들을 개발하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빌 게이츠는 오로지 옛정을 생각해서 도왔을까. 당시 경쟁정책 당국이 윈도 운영체제의 시장독점에 주목해서 기업분할 조치까지 거론되는 상황에서 애플의 매킨토시 컴퓨터가 건재해야 ‘시장의 유효경쟁(effective competition)’이 성립한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가 독점 논란을 피할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애플이 고유의 혁신역량을 회복해서 새로운 제품과 기술을 내놓으면 정보통신과 콘텐츠의 생태계가 번성하고 우수한 개발자들이 모여든다. 전문적 업체들도 생긴다. 이는 마이크로소프트에도 도움이 된다.

마이크로소프트는 경쟁사를 인수해서 위협요인을 없애는 전략으로 유명하다. 엑셀, 파워포인트 등 주요 앱들은 이런 전략을 통해 지금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애플에 대한 지원은 이렇게 싹을 도려내는 전략보다 유효경쟁을 만들고 사업생태계의 판을 키우는 전략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애플이 연 모바일 세상에서 마이크로소프트의 입지는 좁아졌다. 컴퓨터가 하던 일을 상당 부분 스마트폰이 대신하기 때문인데, 빌 게이츠로선 1997년 당시의 경쟁정책 대응이 더 시급했고 쉽게 모바일로 판을 넘길 수 없는 마이크로소프트의 전략 판단도 있었다.

 

◆담합과 협력 사이

담합은 대립적 경쟁관계에서 상호 공존을 도모하는 전략이다. 음험한 담합인지 건전한 협력인지는 보기 나름이고 사업 생태계 전반의 틀을 맞추고 방향을 정하는 일은 더욱 늘고 있다. 제약 분야는 세계 시장을 주도하는 10여 개의 업체들이 공동으로 연구개발을 해서 특허를 공유한다. 좋게 보면 힘을 모아서 개발을 앞당겨서 인류 건강에 기여하는 일이고, 비딱하게 보면 함께 판을 틀어쥐어서 다른 방향의 연구개발이 설자리를 뺏는 일이다.

통신 분야의 경우 국제기구(ITU)를 구성해서 각국의 서비스사업자, 단말기 사업자, 장비업자, 규제당국, 연구기관 등이 현재와 미래의 기술표준을 서로 맞춘다. 새로운 기술표준에 진입하려면 이런 구조를 압도할 수 있어야 한다. 과거 여러 개의 기술표준이 경쟁하다 일부는 도태되던 시절과 다른 양상이다.

패션을 주도하는 사업자들은 패션쇼를 통해 트렌드를 만든다. 밀라노, 파리, 도쿄, 뉴욕의 패션쇼는 이런 트렌드를 세계적으로 조율하고 확산한다. 이 트렌드에 맞는 직물쇼가 몇 달 앞서 열리고 그에 앞서 원사쇼가 열리니 올가을 유행은 이미 작년에 방향이 잡힌 셈이다. 디자이너와 투자자, 유통사업자, 미디어가 이런 트렌드 만들기에 함께한다.

공정거래의 관점에서는 소비자 이익을 가로막는 일이지만 살아남으려는 행동을 찾아서 막기는 매우 힘들고 국경을 넘어선 협력관계를 벌하기도 어렵다. 담합에 해당되는 회합이나 교신이 전혀 없이 눈치껏 알아서 서로의 이익을 계산해서 행동을 조율하는 경우 증거도 없다. 최종생산물 시장의 담합이 아닌 공급망 전반의 협력이 국경을 넘어 이뤄지면 그 득실을 따지기도 어렵다. 오히려 국익을 위해 그 체제에 편입되도록 애쓴다.

프로야구 구단들의 ‘치열한 경쟁’도 사실은 야구를 재미있게 만드는 협력관계다. 오로지 이기는 것이 목표라면 빚을 내서라도 비싼 선수를 스카우트하면 된다. 강타자는 몸에 맞혀 내보내고 베이스에는 이단 옆차기로 들어가면 된다. 투수는 한없이 시간 끌며 타이밍을 뺏을 수 있다. 위장 오더로 전략을 숨기는 방법도 있다. 리그 사무국은 약한 팀에 선수선발 우선권을 주고 위험한 플레이를 막는다. 경기 운영의 규칙을 관중과 미디어에 맞춰 정하는 것은 야구 판 전체를 재미있게 만들어 다른 ‘볼거리’, ‘놀거리’에 이기기 위함이다.

 

◆전략목표와 전술통제

경쟁은 스타와 스토리를 만든다. 무명가수들이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 스타가 되고 정치도 경선과 선거의 과정을 통해 리더십의 밑천이 생긴다. 혼자 우뚝 선 존재는 시샘과 공격에 시달린다. 남진과 나훈아가 경쟁해야 얘깃거리가 생기고 미디어도 ‘절대 강자에 대한 비판’이 아닌 ‘균형보도’를 한다. 선배들의 어른 행세도 어려워진다. 걸그룹들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제법 오래전 조미료 업계의 ‘피 말리는 경쟁’이 화제였다. 광고에 나온 유명 여배우들이 ‘국민 어머니’가 되고 언론은 물론 경영학 수업에서도 거론됐다. 생각해 보면 마케팅 수준의 제한적 경쟁일 뿐이다. 당시 최고경영자의 자존심이 작동해서 ‘XX 이기는 것이 소원’이었다는 얘기가 있지만 대형 국책사업 수주경쟁에 비하면 매우 작은 사업이고 TV와 신문광고에 많이 나와서 인상적이었을 뿐 진짜 상대를 죽이려는 가격 경쟁은 없었다. 오히려 화학조미료의 판을 키우고 관련된 식품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단일 제품의 시장점유율을 지키는 입장에서는 눈앞의 경쟁에 매몰될 수밖에 없다. 경쟁자와의 협력은 이적행위가 된다. 더 넓은 틀에서 경쟁과 협력의 전략을 펴려면 최고경영자는 더 높은 수준의 세련된 목표를 부여하고 획일적 관리통제의 틀에서 재단되지 않도록 보호해야 한다. 전략을 이해하고 수행하다 눈앞의 실적을 따지는 전술통제에 목이 날아가면 최고경영자의 ‘고차원 전략’은 아무도 따르지 않고 바보 같은 실적 경쟁만 계속된다. 사실 그런 한심한 일이 많지만….

박찬희 중앙대 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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