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리실이 공기업 평가 추진… ‘尹정부 기관장’ 물갈이 포석

16일 출범한 국정기획위원회가 기획재정부에서 공공기관의 관리·평가 기능을 분리해 국무총리실 또는 각 부처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밝힌 ‘예산 기능 분리’와 함께 이 방안이 실행되면 기재부는 세제·정책 기능만 갖는 재정경제부 등으로 개편될 것으로 전해졌다. ‘공공기관 관리·평가 기능의 총리실 이전’에 대해선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 ‘물갈이’ 포석이란 평가도 나온다.
국정기획위는 국정기획·경제·사회·정치행정·외교안보 등 5개 분과로 구성돼 60일 동안 활동한다. 사실상 정권 인수위 역할을 하면서 이재명 정부 5년의 청사진을 그릴 예정이다. 이 위원회의 주된 임무 중 하나가 새 정부 국정 철학에 맞게 정부 조직을 개편하는 것이다. 이한주 국정기획위원장은 이날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에서 현판식을 하고 “별도의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완성도 높은 정부 조직 개편안을 선보이겠다”고 했다.
국정기획위는 우선 기재부에서 예산 편성 기능을 분리, 과거의 기획예산처 형태로 되돌림으로써 대통령실의 영향력을 키울 예정이다. 여기에 기재부 산하의 ‘공공기관운영위원회’(공운위)까지 분리해 총리실 밑에 두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공운위는 공공기관 관리·평가 기능을 하는 곳이다. 기재부 장관 등 정부 위원 2명과 민간 위원 9명으로 구성되는 이 위원회는 경영 평가를 통해 실질적으로 공공기관을 통제하는 기능을 한다.
공운위는 매년 주요 공기업 및 준정부기관의 재무 성과 등을 평가해 ‘탁월(S)’부터 ‘아주 미흡(E)’까지 6단계 등급을 매긴다. E등급이나 2년 연속 D등급을 받은 기관장에 대해서는 기재부가 해임을 건의할 수 있다. 교수들로 구성된 공운위 산하 경영평가단이 등급을 매기고 관료들이 영향력을 행사한다. 여권에서는 ‘시민사회’의 참여를 늘려야 한다는 의견이 강하다.
이 기능을 총리실이 틀어쥐는 방안을 두고 정치권과 관가에서는 “공공기관장 인사에 정권의 의중을 더욱 직접적으로 반영하겠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나왔다.
◇공기관 평가에 시민단체 참여 추진… 尹정부 기관장 대거 낙제 가능성

국정기획위원회가 기획재정부로부터 예산에 이어 공공기관 관리·평가 기능까지 떼 내려는 건 기재부를 견제하는 의미로 해석된다. 정부 부처들의 손과 발 역할을 하는 공공기관을 기재부 산하 일개 위원회가 좌지우지하는 것은 책임에 비해 과도한 권한이라는 게 이한주 위원장 등의 지론으로 알려져 있다. 여권 관계자는 “이미 국무총리실이 부처 업무 평가를 하고 있다”며 “정부 부처와 보조를 맞추는 공공기관도 총리실이 평가하는 게 기능적으로 맞는다”고 했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정부 임기 때 임명된 공공기관장 물갈이를 노린 조치”라는 말이 나온다. 윤 정부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을 상대로 임기 만료 전에 사퇴를 압박할 경우, 불법 논란에 휘말릴 수 있으니 우회로를 마련하는 차원이라는 것이다. 2018년 문재인 정부의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은 그 과정이 외부로 알려져 관련자들이 형사처벌을 받은 경우다. 당시 문 정부가 무리하게 전 정권 인사들의 사퇴를 압박한 건, 임기가 보장된 공공기관장들을 바로 물러나게 할 마땅한 수단이 없었던 게 원인이었다.
이때도 법에 따라 매년 6월 기재부 장관이 공공기관 경영평가를 할 수 있고, 전 정권 임명 기관장에게 낮은 점수를 줄 수 있었지만 한계가 있었다. 기재부 관계자는 “실제 점수를 주는 건 100여 명에 육박하는 ‘공공기관 평가단’의 교수들”이라고 했다. 대부분 경제·경영학 교수들로 구성된 평가단은 경영·재무적 판단을 중심으로 경영평가를 했고, 기재부 관료들이 준 가이드라인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아 ‘국정 철학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수를 낮게 주긴 어려웠다는 설명이다.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겪고 난 뒤, 문재인 정부 기재부는 공공기관 평가 기준으로 ‘사회적 가치’ 등 정권 코드에 맞는 항목의 배점을 대폭 늘렸다. 가령 문 정부 핵심 정책인 ‘비정규직 제로’에 호응할수록 공공기관 평가가 높아지는 식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평가 기준을 바꿔도 관료·교수들이 주도하는 공공기관 평가 체계의 큰 틀은 바뀌지 않았다. 기재부는 공공기관 인건비를 묶으려는 성향이 강해, 공공기관 노조를 중심으로 “기재부에서 공공기관 평가 기능을 분리해야 한다”는 요구가 나왔다.
이재명 정부는 평가 체계를 근본적으로 바꿀지 검토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경영 평가 기능을 가진 위원회를 총리실에 두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대폭 늘린다면 경영·재무적 판단에 치중된 기존과 다른 평가를 할 수 있다는 기류가 있다. 여권 관계자는 “공공기관은 말 그대로 공공의 영역에 있는데, 그동안 소수의 관료·교수들의 손아귀에 있었다”며 “공공 영역이므로 시민들의 참여가 필수적이다”라고 했다.
친여 성향 시민단체 인사들이 공공기관 평가를 한다면 윤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이 낮은 평가를 받을 공산이 크다. 올해 안에 공공기관 평가 체계가 바뀐다면 내년 6월 평가에서 윤 정부 출신들이 대거 물러날 수 있다. ‘2025년 경영 평가’는 내년 6월에 한다. 이달 초 공공기관 331곳 중 기관장 53명이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소추안 통과 뒤 부임했는데 이들이 주 대상이 될 수 있다.
다만 부처 산하 위원회에 불과한 공운위가 사실상 공공기관들의 ‘목줄’을 쥐는 게 맞느냐는 지적은 꾸준히 있었다. 낮은 평가를 받은 기관장은 해임도 가능했고, 공공기관 구성원들의 보수도 연동되기 때문에 공공기관 노조들은 주무 부처와 처우 개선을 논의하기보다는 경영 평가 주무국인 기재부 공공정책국과 논의하는 걸 선호하는 현상도 발생했다.
한편 여권에서는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도 현 정부의 국정 철학과 중대한 불일치 사유가 있다면 해임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신영대 민주당 의원은 지난 13일 이 법안을 발의했다. 임기 말 대통령의 공공기관 임원 인사를 금지하거나 대통령과 공공기관 임원의 임기를 맞추는 법안이 발의된 적은 있었지만, 임기가 남은 공공기관 임원을 내쫓을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나온 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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