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팅 당할까봐’…성소수자 호르몬치료제 위험한 구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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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성 정체성에 대한 혼란으로 극심한 우울감을 느꼈던 엠티에프(MTF·남성으로 태어났으나 자신을 여성으로 정체화함) 트랜스젠더 박아무개(36)씨는 ‘치료라도 해보고 죽자’는 생각으로 호르몬 약을 구했다. 당시 경상도에 살던 박씨가 찾을만한 병원은 많지 않았다. 닥치는 대로 찾아간 산부인과에선 ‘그런 치료 안 한다’며 거절당하기 일쑤였다. 결국 그는 번역기를 돌려가며 해외 직구 누리집에서 남성호르몬 억제 치료제를 구해야 했다. 박씨는 16일 한겨레에 “성소수자가 마음 편하게 치료받을 수 있는 병원을 찾는 건 사막에서 바늘 찾기와 같다”고 말했다.
트랜스젠더 당사자에게 극심한 우울감을 안겨 심한 경우 자살 충동에까지 이르게 하는 ‘성별 불쾌감’(젠더 디스포리아)을 치료하기 위한 호르몬 치료제를 구하기까지 여전히 높은 장벽이 존재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르몬 치료제는 병원 처방이 필수적이지만, ‘아우팅’에 대한 두려움과 병원의 저조한 인식 탓에 불법적인 경로로 약을 구하고, 건강을 위협받는 상황에까지 내몰리는 것이다. 매년 6월은 미국 성소수자 권리 운동에 불을 지핀 1969년 6월 스톤월 항쟁을 기념하기 위해 관련 행사가 전 세계에서 열리는 ‘성소수자 자긍심의 달’이다.
약사법상 호르몬 치료제는 산부인과 등 전문 의사 처방이 필수적이지만, 온라인상의 불법 거래가 더 활발한 실정이다. 실제 소셜미디어 엑스(X)에는 호르몬치료제를 판매한다거나 구하고 있다는 글이 매달 꾸준히 올라온다. 한겨레가 여성호르몬 주사 10개를 30만원에 판다는 한 판매자에게 “정식 앰플이 맞냐”, “주사는 어디서 구한 거냐”고 묻자 “국내산”이라는 답과 함께 계좌번호가 돌아왔다. 판매자의 설명 이외에 믿을만한 정보는 없는 셈이었다. 일본 등 해외 의약품을 한국으로 수입해온다는 한 누리집은 ‘호르몬치료제가 품절됐다’며 예약 신청만 받고 있다고 안내했다.

불법과 위험 가능성을 알면서도 트랜스젠더 당사자들이 온라인 거래에 나서는 배경은 우선 사회적 인식의 부족과 아우팅에 대한 두려움이다. 엠티에프 트랜스젠더 정아무개(19)씨는 “2차 성징으로 변해가는 몸을 보며 너무 괴롭고 우울했지만, 부모님을 설득할 수 없어서 중학교 2학년 때부터 용돈을 모아 온라인으로 호르몬 약을 구했다”며 “당시 정보가 별로 없다 보니 몸에 안 맞는 약을 먹었다가 간 수치가 높아져 응급실에 간 적도 있었다”고 했다. 8년 넘게 성별 불쾌감을 겪다 호르몬치료를 결정한 ㄱ(31)씨도 “부모님께 진료 내역을 들킬까 봐 온라인 구매를 시작했지만 (복용에 따른) 신체적 변화로 더는 숨길 수 없어 1년 만에 집을 나오게 됐다”고 했다.
용기를 내 병원에 발을 들이더라도 진료를 거부당하는 일이 적지 않다. 직장인 김아무개(28)씨는 “호르몬 치료제를 처방받으려면 정신과에서 트랜스젠더 관련 진단서를 먼저 받아야 하는데 ‘우린 그런 진단서 안 끊어준다’며 수차례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유야(활동명·30)씨는 “정신과에서 진단서를 받는 것까진 했는데, ‘우린 여성 전용 산부인과다’, ‘남성이 뭐하러 주사를 맞으려고 하냐’는 등 산부인과 14곳을 돌았지만 치료를 거절당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성소수자의 건강권과 의료권을 보장하기 위해, 최소한의 병원 인프라가 갖춰져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성소수자 친화적인 병원을 운영하는 추혜인 살림의원 원장은 “호르몬 치료는 개인차가 커 본인에게 맞는 용량을 복용하지 않으면 부작용이 따를 수 있다”면서 “트랜스젠더에게 호르몬 치료를 하는 의료기관이 전국적으로 많이 분포하지 않아 특히 지역에 사는 분들은 내원이 어렵다. 지역에도 관련 의료기관이 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은실 순천향대병원 산부인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의과대학에서 성소수자 진료에 대한 교육이 거의 이뤄지지 않는다. 학교에서부터 ‘퀴어 프렌들리’(성소수자 친화적)한 의료 교육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고나린 기자 me@hani.co.kr 이나영 기자 ny3790@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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