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소년이 온다’ 독후감 일반부 수상작] 장려상 송덕희 씨

정유진 기자 2025. 6. 16. 1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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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의 이름으로
CHAT GPT 생성이미지

동호를 불러 허리 좀 밟아 달라던 아버지, '동호야'에 네모를 긋고 옆에 문재학이라 썼다. 아들과 보낸 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는 듯 문장마다 빨간 밑줄이 선명하다. 죽은 막내아들이 보고 싶을 때 읽고 또 읽으며 흘린 눈물이 행간에 번졌다. 돈이 생기면 책을 사서 그날의 진실을 진정으로 알아줄 만한 사람들에게 나누었다. 2014년에 출간된 한강 작가의 '소년이 온다'는 동호 아버지에게 아들과 다름없다.

"아들, 엄마 안 보고 싶었어?" 엄마는 떨리는 음성으로 무대에 올라 노래한다. 꿈에서라도 보고 싶은, 에이아이(AI)로 재현된 아들에게 묻는다. 그동안 정말 보고 싶지 않았냐고. 아들 이름을 부르며 마른 울음을 삼킨다. "동호야, 그곳에서 아버지 만났어? 엄마가 평생을 싸웠는데 네 억울한 한을 풀어 주지 못했다. 그런데 한강 작가님은 이 책을 써서 우리의 맺힌 응어리를 녹여 주었어. 이제 여한이 없다. 그곳에서 맛난 거 먹고 행복하게 살아." 떨리는 목소리에 가느다란 희망이 실린다. 올해로 환갑을 맞았을 아들은 여전히 까까머리 중학생 모습으로 화면 속에서 미소 짓는다. 엄마는 이 책을 차마 펼쳐 읽지 못한다. 가슴이 떨리고 눈물이 쏟아질까 봐. 노벨 문학상 수상을 축하하며 동호의 어머니가 들려준 애끓는 이야기는 '6장. 꽃 핀 쪽으로'와 겹쳐진다. 아들은 어둡고 그늘진 곳이 아닌, 꽃 핀 쪽으로 걸으라 말하며 비로소 엄마의 길을 환히 밝힌다.

몸이 썩어가는 냄새가 진동하는 도청 앞 상무관에서 중학교 3학년생 동호는 시신을 들춰 생김새와 옷차림을 꼼꼼하게 기록한다. 문간방에 세 들어 살던 친구 정대와 그의 누나 정미가 들어오지 않자, 그곳까지 찾으러 갔다. 엄마와 작은형이 집으로 가자며 붙잡은 손을 뿌리친다. "저처럼 어린애들은 안 죽인대요. 곧 집에 갈 테니까 먼저 들어가세요." 억지로라도 끌고 나왔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리하여 1장과 2장에서 동호는 '어린 새'로, 정대는 떠도는 '영혼'으로 등장하여 참혹한 '광주'를 증언한다.

은숙과 선주, 진수도 상무관을 떠나지 못한다. 총과 칼, 곤봉에 맞아 죽은 이들의 피를 닦고 태극기와 관을 구해 온다. 촛불을 켜서 역한 냄새를 없애고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는 일을 묵묵히 해낸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었기에. 공수 부대가 오늘 밤 들이닥칠 거라는 소식에도 그 자리를 지킨다. 그들은 총을 들었지만 쏘지 못한다.

진수는 대학생이자 시민군이었지만 고문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다 끝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은숙은 출판물 검열과 과거의 기억으로 고통스러워한다. '네가 죽은 뒤 장례식을 치르지 못해, 내 삶이 장례식이 되었다.'는 마음의 부채는 그녀의 눈을 부릅뜨게 한다. 선주는 심문 과정에서 치욕스러운 성고문을 당한 과거를 말하지 못해 괴로워한다.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다.

작가는 각각의 장마다 화자를 바꿔,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 특정 개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집단의 기록임을 보여준다. 담담하지만 단단한 문장으로 써 내려간 '광주'는 인간의 본질과 존엄의 문제를 날카롭게 질문한다. 인간이 그토록 잔인할 수 있는가? 죄 없이 희생된 넋이 위로받지 못한 세상은 옳은가? 이 물음은 시대를 관통한다. 국가 폭력으로 희생된 사람을 기억하고, 살아남은 이들의 죄책감과 좌절을 섬세한 어조로 보듬는다. '광주'는 우리의 과거인 동시에 현재 진행형임을 예언한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2024년 12월 3일 밤에 윤석열은 느닷없이 계엄령을 선포했다. 무장 군인이 국회로 들어가고 시민의 자유를 짓밟으려 했다. 1980년 '광주'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2025년 4월 4일 11시 22분, 그가 파면될 때까지 우리가 소중히 지켜온 민주주의의 가치가 훼손되었다. 국가 폭력에 대항한 소시민의 힘은 나약했다. 그러나 추운 겨울, 맨몸으로 군인을 막고 밤을 지새우며 저항하여 민주 공화정의 가치를 되찾았다. 그렇게 4월에야 늦은 봄을 맞았다.

한강은 "소년이 온다"고 말한다. 소설이라는 형식을 빌려 새날이 올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작가는 인터뷰하고 자료를 찾아다니며 진실을 파고들었다. 몇 문장을 쓰고 몇 시간을 울었다고 고백한다. 이런 절실한 마음은 책 속에서 생생히 꿈틀거린다. 그래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가 없다.

한강이 어릴 적, 아버지의 서랍에서 보고 가족들에게 들은 '광주'는 그 시대를 함께 헤쳐 온 깨어 있는 이들의 슬픈 역사다. 그들의 희생과 노력으로 우리는 험난한 80년대와 90년대를 넘고 견뎠다. 30년 가까이 가슴에 품어 온 '말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광주 이야기'를 써 주어서 고맙고 자랑스럽다. 너무 늦어서 미안하다는 작가의 겸손한 마음마저 배우고 싶다.

찬찬히 곱씹어 읽을수록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진리를 다시금 깨닫는다. 지금도 왜곡된 역사 인식으로 상처를 후벼 파고 망언을 일삼는 이들이 많다. 그들이 이 책을 꼭 읽으면 좋겠다. 그래서 동호 부모님과 살아남은 이들의 아픔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의 가슴에 동호라는 숭고한 이름이 새겨지기를 소원하며, 다시 책을 펼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