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도일보 ‘소년이 온다’ 독후감 학생부 수상작] 장려상 박지현 양(운림중)

광주에 특히 좋아하는 장소가 있다면 난 시내에 있는 분수를 꼽을 것이다. 여름이 오면 늘 가족들 혹은 친구들과 그곳에 모여 재밌는 시간을 보냈다. 특히 5월이 되면 그 분수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졌음을 난 어렸을 때부터 알았으나 별로 궁금해하지 않았다. 하지만 클수록 1980년도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익히 들을 수 있었다. 학교에선 5.18을 기념한다며 관련 영화를 보여주었고 영화를 보고 난 후에 소감을 발표하게 하였다. 그래서 난 그날 광주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다. 하지만 이 책은 광주에서 많은 이야기를 듣고 자란 나조차도 처음 들어보는 잔혹한 그날의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1장은 중3 동호의 이야기이다. 동호는 광주민주화운동 당시에 친구인 정대가 죽는 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그때 정대를 찾지 못했다는 사실에 죄책감을 느낀다. 이에 도청에서 시신들을 수습하고 관리하며 처참히 죽은 여러 시체들을 마주하게 된다. 그러나 얼마 뒤, 도청으로 군인들이 몰려온다는 소식을 듣게 됐고 엄마의 설득에도 불구하고 동호는 도청에 남아 있게 된다. 결국 동호는 죽게 되고, 남은 사람들 역시 죽거나 끌려가서 큰 고통을 겪게 된다. 동호의 가족도 한 아이의 죽음 뒤에 남겨진 슬픔을 모두 짊어지게 된다. 특히 동호의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오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아들을 잃은 상실감에 빠진다.
보통 부모들은 자식이 커서 취업하고,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기대할 것이다. 하지만 똑같은 설렘으로 동호를 키웠을 동호 엄마는 추억이 늘 어린 동호에 머물러있다. 끝에 나오는 정대의 아빠도 자식을 잃은 서러움으로 매일 밤 술을 마신다고 했다. 저수지에서 시신이 발견됐다고 하면 혹여 정대일까 자다가도 달려나간다 했다. 아직 어른들의 보살핌에서 사랑받고 자라야 할 아이들이 사람을 살리려고, 자신이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다. 읽으면서 왜 동호가 주변 어른들의 걱정에도 나오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았다. 아마 군인들을 믿었을 것 같다. 똑같은 인간인데, 나와 같은 인간이면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죽어있음에도 또 누군가를 헤치기 위해 올 것이라곤 상상도 못 했을 것 같다.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총이 있음에도 군인들을 향해 쏘지 않았고, 죽을 수도 있단 걸 알면서도 도청 안으로 들어간다. 국민들을 지켜주고 보호하는 것이 국가라면 국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군인들도 시민들을 지켜주었어야 했다. 그날의 광주 시민들은 그런 군인들을 믿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인들이 쏜 총에 맞아 죽어갈 때, 얼마나 억울하고 원통했을지 상상도 안 간다. 많은 부모들이 울고 많은 어린이들이 죽어갈 때 나라는, 군인들은 조금의 죄책감도 느끼지 않았을까.
4장은 동호와 정대가 죽고 난 후 살아남은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도청에 남아있던 대학교 복학생 '나'는 교도소로 들어가게 되고 '나'와 같이 밥을 먹던 김진수는 눈이 공허하고 외모가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더 심한 고문을 받는다. 하지만 이듬해 군인들이 '나'와 '김진수'를 포함한 다른 제소자들을 성탄절까지 특사로 석방하게 되고 둘은 종종 만나며 지낸다. 10년이 지난 어느 날, 김진수는 유서 옆에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 죽어 있는 사진을 올려둔 후 자살을 하게 된다. 이 사진은 일렬로 서 있던 어린 학생들이 군인들을 향해 항복한다며 다가왔을 때 군인이 망설이지 않고 학생들의 머리에 총을 쏜 사진이었다. '나'는 시간이 지난 아직까지도 왜 자신이 살아있는지, 자신이 인간이라는 사실에 치욕적인 하루를 보내고 있다.
'나'가 교도소에 지내면서 만난 영재라는 어린 학생이 정말 안타까웠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삼촌과 함께 일하며 살고 있었는데 눈앞에서 삼촌의 죽음까지 목격한 불쌍한 친구였다. 하지만 '나'와 김진수에게 삼촌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대해 말할 때도 덤덤해 보인 영재는 가장 먹고 싶은 음식이 뭐냐는 질문에 울며 대답했다. 결국 10년이 지난 후에는 6번의 자살 시도로 정신병원에 입원하게 됐다. 그때 갖고 있었던 끔찍하고 배고픈 기억들은 10년이 지난 후에도 영재를 따라다니고 있었나 보다.
"분수대에서 물이 나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제발 물을 잠가주세요. 어떻게 분수대에서 물이 나옵니까. 무슨 축제라고 물이 나옵니까"라는 문장이 인상 깊었다. 분수대에서 물이 쏟아지는 걸 신경 쓰는 모습에 너무 마음이 아팠다. 직원 입장에선 분수대에 물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거고 일상적인 거겠지만, 5.18을 겪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일상이 아니다. 사람이 죽었는데 어떻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일상을 지낼 수 있겠냐는 말이 너무 안타까웠다.
난 지금까지 대통령의 명령으로 사람들이 악하게 변한 건 줄 알았는데 이 책을 읽다 보니 원래 사람의 본성이 그렇게 잔인한 것인가? 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똑같은 인간인데 높은 사람의 명령 하나로 멀쩡한 사람을 짐승 취급할 수 있을까? 인간이 한순간에 벌레, 개돼지가 될 수 있을까? 많은 사람들에게 이 질문을 해보면 한 명도 빠짐없이 안 된다고 답할 것이다. 그러나 그런 일이 1980년 5월 18일 광주에서 일어났다. 옛날에 일본에서 한국 사람들을 억압하며 했던 고문들이 대한민국 국민이 다른 국민에게 하는 행동들과 같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그 시기에 광주에는 수많은 '동호'와 '정대', '김진수' 같은 안타까운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동호도 그때 살아있었다면 지금쯤 50대일 것이다. 그 누구도 소년의 40번의 봄을 돌려주지 못할 것이다. 그 누구도 자식을 잃은 부모의 한을 풀어줄 순 없을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앗아간 나라에 화가 난다. 많은 것을 겪고 도전해 볼 수 있는 청춘 한가운데 놓인 아이들의 젊음을 모두 빼앗아 갔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작가에 대해 궁금해 검색해 보았는데 거기서 책 제목 옆에 보이는 수많은 꽃들이 안개꽃이란 걸 알게 되었다. 안개꽃의 꽃말은 죽음, 슬픔, 그리고 '약속'이라고 했다. 불과 40년 전까지만 해도 광주를 무시하고 시민들을 함부로 대하는 일이 있었고 그 결과, 광주의 희생으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앞당겨졌다고 한다. 앞으론 이런 일이 일어나면 안 된다는 약속을 광주가 더 단단하게 해주었다. 또 표지에 주황색 직사각형이 동호의 관 같다는 생각을 하였다. 이 책을 읽고 나니 6학년 때 학교에서 체험학습으로 5·18 민주묘지 갔었을 때 난 설명해 주시는 강사 선생님 뒤로 너무 덥다며 친구들과 불만을 토로했던 것이 생각났다. 광주를 위해 망가진 몸을 이끌고 나섰던 분들의 마지막을 들으면서도 친구들과 희희덕 거리며 장난쳤던 나를 반성한다. 책을 다 보고 나니 책 제목인 '소년이 온다'가 '소년이 운다'라고 읽혔다. 도청 앞 분수에서 수시로 나오는 물은 그때 그분들의 눈물인 건가 생각한다. 그들의 가족들뿐만 아닌 우리 모두에게 소중하고 따뜻했던 그 사람들을 잊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