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노래로 만나는 도시의 감성…'명시명곡 속 대전'
강아지풀의 서정부터 AI 시노래 체험까지…'총망라'
1930년대부터 오늘까지, 대전을 사랑한 시인들과 작곡가들이 만들어낸 노래가 다시 울려 퍼진다. 대전문학관이 올해 첫 기획전시로 선보이는 '명시명곡 속 대전'은 지역 문학과 음악이 만난 100년의 시간을 조망한다. 시를 노래로 듣고, 음악 속 시를 읽으며, 문학이 감성으로 스며드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는 자리다. 대전 대표 시인들의 시에 곡을 붙인 '시노래'들이 영상과 음원으로 전시되고, 음악감상실과 AI 체험존 등 세대를 아우르는 프로그램으로 관람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 100년 문학과 음악, 감각으로 만나는 전시
이번 전시는 대전을 아끼고 사랑해온 문인과 음악인이 함께 만든 노래의 궤적을 따라가며, 문학과 음악의 협업이 지역 문화에 어떻게 스며들었는지를 보여주는 기획이다. 주제는 단순히 '시가 곧 노래가 되었다'는 사실을 넘어, 대전을 노래하고 시를 입힌 사람들이 어떻게 시대와 감성을 함께 나눴는지를 조명한다.
전시는 '노래가 된 대전의 시'와 '대전의 명곡'이라는 두 개의 큰 축으로 구성됐다. '노래가 된 대전의 시'는 박용래·이재복·홍희표 등 지역 대표 시인들의 작품에 작곡가 신남영, 박홍순, 지강훈 등이 곡을 입혀 만든 시노래들을 소개한다. 각 작품에는 QR코드가 함께 비치돼 관람객이 직접 시를 읽고, 곡을 감상할 수 있도록 했다. 일부 곡은 뮤직비디오 형식으로 제작돼 전시관 영상존에서 상영된다.
또 다른 축인 '대전의 명곡' 코너에선 지난 100년간 대전을 배경으로 탄생한 대중가요와 지역 창작곡을 통해 도시의 감수성과 변화를 함께 짚는다. 1960년대 '대전부르스', 1993년 대전엑스포 주제가 '그날은'과 'My Love Expo', 1999년 발표된 '대전8경가', 2009년 시민공모로 만들어진 '대전 상징 노래' 등 시대별 대표곡들이 시대별로 소개된다.

◇ 강아지풀에 담긴 서정, 시와 노래로 피어나다
이번 전시의 중심에는 박용래 시인의 시 '강아지풀'이 있다. 1969년 '월간문학' 12월 호에 발표된 이 시는 훗날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이자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했다.
박 시인은 "강아지풀은 내가 가장 사랑하는 한 마디 말"이라며 "남들이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남은 미물의 가난한 아름다움을 표현하고자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작곡가 신남영은 이 시에 감성적인 선율을 붙여 노래로 재탄생시켰고, 본인의 목소리로 직접 불러 시의 분위기를 더욱 깊이 있게 전달했다.
이 곡은 전시관 내 뮤직비디오와 음원으로 감상할 수 있으며, 최근엔 AI 음악기술을 활용한 리믹스 버전도 함께 공개돼 전통 시문학과 디지털 기술의 교차점을 보여주는 새로운 실험으로 주목받고 있다.
◇ 카세트 플레이어부터 AI 작곡까지…세대 잇는 음악
이번 전시의 또 다른 백미는 '음악감상실'이다. 이 공간은 단순히 전시물을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람객이 직접 체험을 통해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고 미래를 상상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1980-1990년대를 풍미했던 워크맨(카세트 플레이어), CD플레이어, 미니디스크, 헤드폰 등이 전시장에 마련, 관람객은 전시된 음악을 당대의 감성 그대로 들어볼 수 있고, 시대별 음반 매체의 변천사까지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관람객 반응은 세대에 따라 다채롭다.
대전문학관에 따르면 중장년층 관람객들은 "어릴 적 들었던 감성이 되살아나 울컥했다"고 말했고, 10~20대 관람객들은 "사진으로만 봤던 장비로 음악을 듣는 경험이 신기하다"고 반응했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세대와 아날로그 감성을 기억하는 세대가 각기 다른 방식으로 음악을 감상하며, 전시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시간을 공유하는 셈이다.
여기에 더해, 첨단 기술을 활용한 'AI 시노래 만들기' 체험도 큰 호응을 얻고 있다. 관람객이 자신이 쓴 시나 좋아하는 시를 입력하면, AI 작곡 프로그램이 자동으로 곡을 생성해 노래로 들려주는 방식이다.
작곡 결과물은 단순하면서도 감성적인 완성도를 보여줘 "예상보다 감동적이다", "재미있고 신기하다" 등의 평가를 받고 있다.
문학과 음악, 그리고 인공지능이 융합된 이 체험은 전시의 새로운 지점을 제시하며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긴다.

◇ '대전발 0시 50분'부터…노래로 기록된 도시의 기억
대전을 노래한 첫 대중가요는 1963년 발표된 '대전부르스'다. 작사가 최치수의 실제 경험에서 비롯된 이 곡은, 이별하는 연인을 목격한 장면을 시로 엮고, 작곡가 김부해가 곡을 붙여 가수 안정애가 노래했다.
이후 조용필의 리메이크로 다시 인기를 얻으며, 지금까지도 대전을 대표하는 노래로 회자된다.
1993년 대전엑스포 공식 주제가 '그날은(The Great Day)'은 국제적 그룹 코리아나가 불러 세계적 주목을 받았다. 동양적 선율과 현대적 편곡이 돋보이는 이 곡은 대전이 세계 도시로 도약한 순간을 음악으로 기록했다.
또한 조선시대 문인들이 읊었던 '대전 8경'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창작곡 '대전8경가'도 소개된다.
계족산 옛 성터, 보문산 새벽길, 장태산 산막, 대청호 뱃길, 식장산 미소, 구봉산 석양 등반, 갑천의 불빛, 유성온천의 추억 등 대전의 자연과 정취를 시어와 멜로디로 풀어낸 곡이다.
'대전의 명곡' 코너는 도시의 정체성과 변화하는 감성을 담아낸 음악들을 통해, 한 도시의 기억이 어떻게 노랫말과 선율 속에 저장되어 왔는지를 보여준다. 노래는 시대를 담는 그릇이자, 도시를 기억하는 가장 대중적인 방식이라는 점에서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중요한 축이기도 하다.

◇문학의 일상화, 기념전을 넘어 지하철까지
이번 전시는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이 주관하는 '무장애 문화향유 활성화 지원사업'에 선정, 장애 유무와 관계없이 누구나 편안하게 관람할 수 있는 배리어프리 전시로 운영되고 있다. 휠체어 접근이 가능한 경사로와 넓은 동선, 시각·청각 정보 전달을 위한 보조 매체 등이 곳곳에 마련돼 있다.
문학이 특정한 사람들만의 전유물이 아닌, 일상의 감각으로 누구에게나 열린 감성의 언어임을 전시 전체가 몸소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임필찬 대전문화재단 문학관운영팀 차장은 "대전을 사랑하는 시인과 작곡가들이 함께 노력해 만든 노래들이 무관심 속에 잊혀지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며 "어떤 노래들이 있는지, 또 그중에는 시가 곧 노래가 된 작품들도 있는데, 가사도 아름답고 선율도 감성적인 곡들이다. 이번 전시가 그런 노래들을 체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면 좋겠다. 남녀노소 많은 분들의 관람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명시명곡 속 대전'은 전시는 내달 27일까지 계속되며, 누구나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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