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랫목이 되어줄게

한겨레 2025. 6. 16.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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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던 길,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를 붙잡았다.

내 강연을 듣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수록, 상황이 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받아주는 곳이 거기뿐이라면, 그만두기도 힘들 거예요." 내 말에 그는 잠시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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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ㅣ 학교 밖의 빛과 그림자
클립아트코리아

송혜교 | 홈스쿨링생활백서 대표

강연을 끝내고 무대에서 내려오던 길, 누군가 조심스럽게 나를 붙잡았다. 내 강연을 듣기 위해 지방에서 서울까지 혼자 찾아왔다고 했다. 열다섯 앳된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우리는 강당 한편에 앉아 고민 상담을 시작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제 말을 부모님이 이해하지 못하셨어요….” 이건 내가 자주 접하는 사례였다. 그러나 이야기를 자세히 들을수록, 상황이 내 예상보다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가 자퇴라는 뜻을 강경하게 이어 나가면서, 부모와의 사이가 완전히 어긋나버린 것이다.

부모는 자퇴 동의서를 작성해 주는 대신, 앞으로 그 어떤 지원도 하지 않겠다고 단단히 못을 박았다. 그리고 정말 그 말을 실천했다. 경제적·정서적 지원을 모두 끊은 것이다. 아직 미성년자라서 집에서 내쫓지 않는 거라는, 그걸 다행으로 여기라는 말이 마지막이었다. 검정고시도, 생계도 알아서 해결하라는 차가운 말이. 이후로는 사소한 소통마저 사라졌고, 집에서는 잠만 잔다고 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할 계획은 있냐는 내 질문에, 당장 생활비가 없어 일자리를 기웃거리고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제 겨우 초등학교를 졸업한 만 13살 청소년. 법적으로나, 통상적으로나 근로가 가능할 리 없었다.

그때 그가 의외의 말을 꺼냈다. “동네 미용실 사장님이 저를 써준대요. 아르바이트생 아니고 직원으로요. 초졸이어도 괜찮대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정말로 한 청소년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어떻게 중학교 졸업 학력 검정고시를 포기하고 당장 일하라고 말할 수 있단 말인가. 계약서조차 쓰지 못할 게 분명했다.

“중간에 문제가 생기거나 다른 일을 하고 싶으면 어떻게 할 거예요? 받아주는 곳이 거기뿐이라면, 그만두기도 힘들 거예요.” 내 말에 그는 잠시 주눅 든 표정을 지었다. 다가올 모든 것을 혼자 결정하고, 제 몫을 책임지기에는 너무나 버거워 보였다.

당장 검정고시 교재를 살 돈도 없고, 공부할 방법도 모르는 청소년에게 ‘초졸이어도 써준다’라는 말은 달콤한 해결책 같았으리라. 당장의 수입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는 걸 설명하기 위해 아주 오랜 시간을 들여야 했다. 청소년 기관에 방문해 상담받고, 검정고시 교재를 지원받고, 멘토링 프로그램에 등록하라고 차근차근 조언을 건넸다. 그 미용실에는 취직하지 않는 게 좋겠다는 말은 덤이었다.

대화가 끝난 뒤, 그는 몇 번이나 인사를 거듭하며 강연장을 나섰다. 고개를 숙일 때마다 덩치에 비해 커다란 배낭이 흘러내렸다. 벌써 8년 전의 일이니, 이제는 성인이 되었을 것이다. 다만 꾸벅 인사하는 마지막 모습만큼은 조금도 자라지 않고, 내 마음에 아주 오래 남아 있다.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에서 부모를 여읜 주인공 애순(아이유 분)이 서럽게 울며 내뱉던 말이 떠오른다. “나 이제 집도 없고, 무슨 (날 반겨줄) 아랫목도 없고….” 따뜻하게 방을 데워둔 채 자신을 기다리는 보호자가 없다는 서글픔.

우리 사회에는 여전히 기댈 구석 없이 홀로 서 있는 청소년이 많다. 청소년 지원 인프라 구축에 주저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헤매는 청소년들에게 이런 말을 건넬 수 있는 세상이 오기를. 괜찮아, 우리가 너의 아랫목이 되어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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