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의 '패가망신' 경고 [지평선]

최문선 2025. 6. 16.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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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인사·이권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패가망신 발언은 자기예언적이었다.

□ 이재명 대통령의 첫 번째 패가망신 경고는 주식시장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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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한국일보> 논설위원들이 쓰는 칼럼 '지평선'은 미처 생각지 못했던 문제의식을 던지며 뉴스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하는 코너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이 11일 불공정거래 근절을 위한 현장 간담회를 위해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거래소(KRX)를 방문해 직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 SNS

“집안의 재산을 다 써 없애고 몸을 망친다”(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는 의미의 ‘패가망신’. 한 사람과 그의 가족이 경제·사회적으로 몰락한다는 무시무시한 말이다. 누군가를 지목해 “패가망신시키겠다”고 벼르는 건 화자가 엄청난 권력을 동원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뜻이겠다. 이를테면 대통령.

□ 패가망신 경고는 권력자를 찌르는 칼이 되고는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대선 승리 직후 “인사·이권 청탁을 하다 걸리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깨끗한 정치에의 의지를 보여준 말이었지만, 친인척·측근의 부정부패로 스스로 망신을 당하고 말았다. 박근혜 정부 2년 차에 세월호가 침몰했을 때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는 선사 청해진해운을 겨냥해 “이런 사고를 내면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보여줘야 사회의식이 전환될 것”이라고 했다. 맞는 말이었으나, 대통령의 책임엔 눈을 질끈 감은 게 문제였다. 매정했던 박 전 대통령은 2년 뒤 민심의 혹독한 심판을 받았다.

□ 윤석열 전 대통령의 패가망신 발언은 자기예언적이었다. 대선주자 시절 “대권 도전은 가문의 영광이나 개인의 광영이 아니라 패가망신하는 길”이라며 “손가락질 당할 각오로, 명예와 인간관계를 다 버리고 국민과 나라를 위하는 마음으로 나왔다”고 했다. 검사로서 정치인들의 무수한 추락을 지켜보았기에 한 말일 테지만 ‘패가망신의 반면교사’를 삼을 만큼 현명하지는 못했다. 그는 “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눈 사람은 누구나 패가망신시켜야 한다”는 시민 105명으로부터 손해배상 소송까지 당해 재판을 기다리는 처지가 됐다.

□ 이재명 대통령의 첫 번째 패가망신 경고는 주식시장을 향했다. 취임 일주일 만인 지난 11일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오늘을) 주식시장에서 장난을 치다가는 패가망신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보여주는 첫날로 삼겠다”고 했다. 주가조작 등 불공정 행위를 엄벌하고 부당이득을 몇 배로 환수해 개인 투자자를 보호하고 증시를 부양하겠다는 뜻이다. 새 정부 들어 코스피가 연일 상승세인 건 투자자들이 이 대통령의 힘을 믿어서일 것이다. 이번만큼은 대통령의 말이 허무한 힘자랑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최문선 논설위원 moonsu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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