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 국립대병원, 이래서 못 믿어요"... 정부 정책 실패의 경고음

윤성철 2025. 6. 1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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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보건사회연구원, "중증환자, 수도권 쏠림 사회적 비용만 매년 4.6조원"
[사진=부산대병원]

"중증이면 무조건 서울 가야죠." 지방에서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첫 선택지는 여전히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이다. 치료 성과와 인프라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문제는 이 믿음이 지역 국립대병원에 대한 불신에서 비롯됐다는 데 있다. 그렇다면 수십 년간 엄청난 예산을 들여 국립대병원들 육성해온 정부 노력은 도대체 어떤 효과를 얻었던 것일까?

지역 국립대병원은 단순한 지역 병원이 아니다. 「국립대학병원 설치법」과 「공공보건의료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설립된 공공의료 거점이자 교육·연구·진료를 함께 수행하는 중추 기관이다. 현재 전국에 16개(서울대 포함 17개) 국립대병원이 있다. 그중 11곳은 권역별 상급종합병원이기도 하다.

하지만 '명함'만으로는 국민 신뢰를 얻지 못한다. 실제로 최근 시행된 전국 조사에서 '중증질환일수록 수도권 병원을 선호한다'는 응답은 36.5%, 지역 국립대병원은 22%에 그쳤다. 하물며 사립대병원이라고 다를 게 없다.

특히 병인(病因)을 알기 어려운 질환일수록 지역 병원 이용 의사는 더욱 낮았다. 이렇듯 의료 불균형은 신뢰 격차에서 시작되고, 그 불신은 이동이라는 사회적 비용으로 이어진다.

수도권 병원 쏠림, 그 대가는 얼마나 클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이번에 내놓은 '지역 환자 유출로 인한 비용과 지역 국립대학병원에 대한 국민 인식' 조사(김희년, 류재린, 문석준)에 따르면 지방 환자가 수도권 상급종합병원을 이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연간 순비용은 무려 4조 6,270억 원에 달한다. 이 비용에는 단순 진료비 외에도 교통비, 숙박비, 보호자 동행으로 인한 기회비용, 간병비 등이 모두 포함된다.

단순한 여행이 아니다. 지방에서 중증 질환을 안고 서울까지 진료를 받기 위해 올라가는 일은 시간과 체력, 재정 모두를 소모하는 고비용의 '이동 치료'다. 환자 개인뿐 아니라 보호자까지도 생산성을 잃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더구나 이 비용은 고스란히 국가적 비효율로 남는다. 공공병원에 대한 정부의 투자와 정책이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고, 환자는 다시 민간 대형병원을 찾아 이동하게 되는 구조다.

환자는 왜 지역 국립대병원을 외면하는가?

이 같은 불균형은 단순한 이미지나 오해에서 기인하지 않는다. 조사에 따르면 국민 81.2%가 수도권-지방 간 의료격차가 "심각하다"고 답했다. 특히 지역 병원의 의료서비스 수준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가 전체의 59.6%에 달했다.

중증질환일 경우 더 심각하다. 지역 국립대병원을 이용하겠다는 응답자는 43.5%에 불과했고, 가족이나 지인에게 추천할 의향이 있다는 비율은 33.7%에 그쳤다. 아예 "그렇게 안 하겠다"는 부정 의견도 각각 28.4%, 30.9%나 된다. 국립대병원이 지역 내 의료 시스템의 최후 보루로서 국민 신뢰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응급상황일 경우엔 다른 결과가 나타났다. 골든타임 확보가 필요한 응급의료의 경우, 지역 국립대병원을 이용하겠다는 비율이 69.4%로 높았다. 이는 역설적으로 지역 병원에 대한 '기대'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역할 수행에 대한 '불신'이 문제임을 보여준다.

이를 개선했으면 하고 바라는 기대 또한 높다. 지역 국립대병원의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데 80.3%,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데 80.9%가 동의했다. 가장 시급하다고 느끼는 개선 과제도 ▲전문의료인력 확보 (81.0%) ▲중증질환 진료 역량 고도화 (80.1%) ▲응급질환 대응 역량 강화 (80.5%) ▲필수진료과 확충 (78.6%)으로 크게 다르지 않다.

이는 단지 건물 하나를 짓는 물리적 확장이 아닌, 병원의 '질'을 높여달라는 요청이다. 단기적 보여주기식 투자가 아니라 인력·교육·시스템 등 전방위적 투자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오랜의료격차 고착화에 이젠 "손까지 놓은" 지역 의료

국립대병원은 원칙적으로 공공보건의료기관이다. 하지만 현행 시스템 아래에선 민간 대형병원과의 차별성이 약화되며, 지역 중심의 책임의료기관이라는 정체성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대학병원이 여전히 '교육부' 소속이라는 거버넌스 구조도 실효적 의료정책 집행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의 하나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있을까? 국립대병원이 단순히 병상 수나 진료과 수에서 민간 병원과 경쟁할 것이 아니라, 지역 내 환자 전달체계를 효율화하고, 협력 네트워크 중심의 진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중증질환 진료 역량을 고도화해, 수도권 병원을 찾지 않아도 된다는 확신을 지역민에게 줄 수 있어야 한다. 그를 공감할 수 있게 해주는 홍보도 필수다.

결국 의료는 단순한 치료의 문제가 아니다. 환자와 보호자의 삶 전체를 바꾸는 일이며, 나아가 지역의 존립 기반이 되기도 한다. 수도권 집중 현상이 만든 4.6조 원이란 사회적 비용은 정부 정책 실패의 경고음이자, 지역 의료의 위기 신호다. 더 나아가 초고령사회, 지역 균형발전의 미래를 가늠할 핵심 과제이기도 하다.

윤성철 기자 (syoon@kormed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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