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직 전문 배우' 정경호가 보여주는 시간과 노력의 정비례
아이즈 ize 정수진(칼럼니스트)

모든 배우가 그렇겠지만, 정경호를 보면 유독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노력형 배우. 주체할 수 없는 타고난 재능이나 끼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정경호의 인지도를 전국구로 알렸고, 최근 역주행 인기를 끈 '미안하다, 사랑한다'의 최윤을 떠올려보라. 타입 캐스팅으로 캐릭터에는 잘 어울렸지만, 솔직히 연기는 '발연기'였다. 그런데 지금은? 믿고 보는 배우로 부르는데 주저함이 없다. '노무사 노무진'에선 한층 물오른 그의 연기를 맛볼 수 있다.
'노무사 노무진'에서 정경호는 타이틀롤 노무진을 맡았다. 직업은 한국에서 문과 계열 전공 8대 전문직 중 하나로 꼽히는 노무사. 근래 정경호의 필모그래피에는 '사'짜 포함 전문직 직업이 많은데, 또 이런 직업군을 맡을 때 흥행 타율 또한 좋은 편이다. '라이프 온 마스'의 형사,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의사, '일타 스캔들'의 강사, '노무사 노무진'의 노무사까지. 심지어 정경호의 본격 전문직 시발점으로 꼽을 수 있는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교도관도 있는데, 직급이 8급 교사(矯士)였으니 이 또한 '사'자 돌림이다.

병원에서 연애하고, 법정에서 연애하던 유의 이야기가 판을 치던 옛날에는 주인공의 직업이 장식품에 불과해 연기 또한 수박 겉핥기 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있었다. 그러나 요즘은 전문직 장르 드라마가 대세이고, 장르물이 아니어도 주인공의 직업이 주요 소재일 경우가 많다. 자연히 배우들의 꼼꼼한 연구는 필수. 정경호의 노력형 면모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일타 스캔들'에서 일타 강사의 말투와 억양은 물론 숫자를 쓰는 순서나 루트를 쓰는 순서 등 섬세하게 연구에 연구를 거듭해 진짜 강사의 판서(칠판에 분필로 쓰는 글) 같다는 칭찬을 들었던 정경호다. '노무사 노무진'에서도 현직 노무사들을 인터뷰하며 캐릭터 연구에 열심이었다는 후문인데, 긴 분량의 노동법을 줄줄 읊으며 실제 노무사 뺨치는 연기를 보여준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으로 명예교도관에 위촉된 것에 이어 한국공인노무사회에서 명예노무사로 위촉된 것은 덤.
전문직 전문 연기와 함께 또 하나의 공통점을 들자면 정경호의 코믹 연기다. 정경호는 2013년 영화 '롤러코스터'로 코믹 연기에 일가견이 있음을 보여준 바 있다. 그 이후 빛난 필모그래피 또한 대부분 코믹을 곁들인 작품이 많았다. '슬기로운 감빵생활'의 이준호는 냉철하고 이성적인 인물이었으나 자기 사람들에겐 따스했던 '츤데레'였고, '슬기로운 의사생활'의 김준완도 비슷한 성격이라 웃음을 자아낼 요소가 많았다. '일타 스캔들'의 최치열 또한 강사의 자질과 별개로 일상생활에선 보호본능을 자극하는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라 여주인공과 티격태격하는 혐관 코믹 연기를 잘 소화해냈다. 과장되지 않은 생활밀착형 코믹 연기가 정경호의 특장점인데, 여기에 40대에 들어선 나이에도 어딘지 철부지 소년 같은 배우 특유의 분위기가 더해져 무엇을 해도 밉지 않고 귀여운 느낌을 선사한다.

'노무사 노무진'의 노무진은 아예 시작부터 코믹이다. 노무진은 법대 나와 대기업에 들어갔으나 코인과 선물 투자로 하루아침에 빈털터리 백수가 되는 인물. 초반부 꼬질꼬질한 몰골로 눈물콧물 짜는 모습이나 만취해서 동상을 사람으로 착각하고 술주정하는 모습에서 저항없는 웃음이 터지게 된다. 의문의 보살(탕준상)과 불공정 근로계약을 체결한 후 저항하는 모습은 어떤가. 여지없이 마트에서 드러누운 채 떼를 쓰는 어린아이의 그것이다. 처제에게 해맑은 표정으로 쿠폰 모은 치킨을 쏘겠다고 허세를 부리는 모습도 (물론 현실의 형부라면 뜨악하지만) 피식 웃게 만든다.
배우 본연의 긍정적인 이미지와 공감력 있는 연기로 다소 직관적인 스토리 전개를 따스하게 쫓게 되는 부분도 있다. '노무사 노무진'은 매 2회차마다 한 에피소드를 소개하는 형국이라 현실의 추악함과 비정함을 다소 압축해 표현하고 해피엔딩의 결과를 빠르게 도출하는 방식이다. 다소 뻔한 접근법이지만 정경호, 그리고 그와 삼인조 케미를 형성하는 설인아, 차학연의 무해한 코믹 연기가 더해져 촌스럽다기보단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20년 세월 동안 배우가 성실히 쌓아온 이미지가 도움이 되었다 봐야 할 듯.

데뷔한 지 20년이 넘는 배우의 필모그래피를 일일이 훑을 필요는 없지만, 정경호의 경력을 보면 성실한 직장인의 커리어를 보는 느낌이 든다. 반짝반짝 빛나지만 실수가 잦은 사원부터 적당히 구력은 붙었으나 자신의 목표를 잃고 매너리즘에 빠진 듯 방황하는 중간 관리자를 거쳐 이제는 자신이 온전히 팀을 이끄는 것은 물론 주변인에게 확고한 목표를 제시하는 리더의 모습이다. 처음부터 빛을 발하진 못해도 게으름 피우거나 안주하지 않고 성실히 스텝을 밟아 나아가 어느 순간 주변의 인정을 받는 리더. 배우 정경호의 지금을 보면 그런 인상이 느껴진다. 알다시피 모두가 직장생활에 성실한 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시간에 흐름에 따라 도태되어 사라지고, 남아 있어도 존재감 없는 '고인물'이 되기 십상이다.
정경호의 전문직 탐험은 계속될 전망이다. 차기작으로 예정된 드라마 '프로보노'에서 판사 출신 공익 변호사 강다윗으로 나올 예정이기 때문. '프로보노'의 한 줄 시놉시스가 '출세에 목맨 속물 판사가 본의 아니게 공익변호사가 되는 이야기를 담은 코믹 휴먼 법정물'인 걸 보면 벌써부터 정경호가 그려낼 속물 판사 출신 변호사가 상상된다. 그리고 정경호는 그 상상에 한끗을 더한 모습으로 우리를 찾겠지.
정수진(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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