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마리 소떼와 83세 정주영…휴전선 활짝 열린 영화 같은 장면[뉴스속오늘]

양성희 기자 2025. 6. 1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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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7년 전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일을 가리켜 이렇게 평가했다.

이른바 '소떼 방북'은 정 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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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 '소떼 방북'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정주영 회장이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방북길에 오른 모습./사진=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
"20세기 가장 아름답고 충격적인 전위예술 작품"

세계적 문명비평가 기 소르망은 27년 전 1998년 6월16일, 현대그룹 창업주 아산 정주영 회장이 소떼를 끌고 판문점을 넘어 방북한 일을 가리켜 이렇게 평가했다.

이른바 '소떼 방북'은 정 회장이 1998년 6월16일 소 500마리를 몰고 민간인 처음으로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한 역사적 사건이다. 정 회장은 같은 해 10월27일 소 501마리를 몰고 두 번째 방북길에 올라 민간 기업인 처음으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을 만나기도 했다.

소떼 방북 효과는 대단했다. 남북 민간교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됐고 금강산 관광 길이 열렸을 뿐만 아니라 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키는 초석이 됐다.

1998년 6월16일 소를 태운 트럭들이 줄지어 군사분계선을 넘고 있는 모습. /사진=통일부 판문점견학지원센터

"한 마리가 소가 1000마리의 소가 돼 그 빚을 갚으러 꿈에 그리던 고향 산천을 찾아간다."

1998년 6월16일 방북길에 나선 정 회장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현재 북한지역인 강원도 통천군 아산리에서 태어났는데 17세 때 아버지가 소를 판 돈 70원을 몰래 들고 가출했다. 무슨 일을 하든 서울에서 해야겠다는 생각이 확고했기 때문이다.

그때 북한에서 들고나온 소 한 마리 값을 갚기 위해 소 1001마리를 몰고 고향으로 향한다는 의미를 담아 이같이 말한 것이다. 방북길에 오른 그의 나이는 83세였다.

정 회장이 소떼 방북을 기획한 건 1992년부터였다. 충남 서산 소재 현대서산농장에 소 150마리를 들인 뒤 방목을 지시했다. 방북 당시 농장 70만평 초원엔 3000여마리 소들이 방목되고 있었다.

1998년 6월16일 소를 태운 트럭들이 줄지어 북한으로 향하는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소떼 방북길은 한 편의 영화 같았다. 흰색 트럭 수십 대가 줄줄이 소들을 싣고 판문점을 차례로 지났다. 정 회장은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원회 회의실을 지나 도보로 군사분계선을 넘었다. 외신도 역사적인 순간을 생중계하며 "남북한 휴전선이 개방됐다"고 앞다퉈 보도했다. 소떼 수송에 드는 41억7700만원 상당의 비용은 현대그룹이 부담했다.

방북 직전 임진각에서 정 회장은 "이번 방문이 남북 간 화해와 평화를 이루는 초석이 되길 진심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그의 소망은 현실이 됐다. 남북 대치를 상징하던 판문점을 화해와 평화의 장소로 바꿨을 뿐만 아니라 이후 남북사업의 길을 활짝 열었기 때문이다.

2차 방북도 빅 이벤트였다.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1998년 10월30일 밤 정 회장 숙소 백화원초대소를 찾으면서다. 김 위원장은 "명예회장 선생이 연로하고 거동이 불편해서 직접 왔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한다. 정 회장과 김 위원장은 금강산 관광, 남북 협력 사업 등을 논의하면서 약 45분간 면담을 진행했다.

정 회장 방북을 계기로 얼어붙었던 남북관계가 풀리고 경제 협력과 교류가 활발해졌다. 2차 방북 직후엔 금강산 관광이 시작돼 1998년 11월 금강산으로 향하는 금강호가 첫 출항 했다. 이후 육로 관광의 길도 열렸다. 경제협력 논의는 향후 개성공단 건립으로 이어졌다.

가장 큰 성과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것이었다. 2000년 6월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당시 국방위원장이 북한 평양에서 만나 손을 맞잡고 남북관계 개선, 평화통일에 뜻을 모았다.

양성희 기자 y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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