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에 맞서려면…도시 '맷집' 길러야[최종수의 기후이야기]

최종수 2025. 6. 16. 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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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재보다 천재에 가까운 폭우
빗물터널·배수펌프장 등 보호장비만으론 대응 한계
빗물 머물 공간 확보 더 중요
녹지공원 오목하게 설계하고 지표면에 투수성 포장 적용을

[최종수 환경칼럼니스트] 올해 장마는 제주에서 시작했다. 평년보다 일주일가량 빠르고 관측 이래 세 번째로 이른 기록이다. 기상청에 따르면 장마전선은 점차 북상해 7월 하순까지 남북을 오가며 전국에 걸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장마의 시작 시기도 눈길을 끌지만 더 주목해야 할 변화는 장마의 양상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서울 서초구 한강홍수통제소에서 장마철을 앞두고 대비 현장 점검 회의를 주재하고 있다.(사진=연합뉴스)
예전 장마가 ‘비가 자주 내리는’ 기간이었다면 요즘 장마는 ‘비가 쏟아붓는’ 기간으로 바뀌고 있다. 실제로 우리나라 강우 특성을 보면 연평균 강수량은 증가하고 있지만 강우일수는 늘지 않아 비가 올 때마다 퍼붓는 경향이 두드러진다. 짧은 시간에 집중되는 ‘물폭탄’은 지표 유출을 늘려 하천 범람과 침수의 위험을 키운다. 이로 인해 기존의 배수나 저류 체계로는 대응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이런 변화는 단순한 이상기후가 아닌 기후변화의 결과다. 지구의 온도 상승은 대기 중 수증기량을 늘리고 이는 폭우로 이어진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에 따르면 대기 온도가 1도 상승하면 수증기량은 약 7% 증가한다. 올해 장마철에도 예년보다 강한 폭우가 쏟아질 가능성이 크고 대규모 침수와 인명·재산 피해가 나타날 수 있다. 이러한 폭우는 더 이상 단발성 재난이 아니라 반복되는 위험이 됐다.

이처럼 폭우가 일상이 되는 현실에서도 침수 피해의 원인을 여전히 ‘인재’로 단정 짓는 시각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러한 해석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2011년과 2022년 서울 강남에서 발생한 대규모 침수다. 당시 100년 및 500년 빈도의 폭우가 각각 기록됐지만 서울시 배수체계는 50년 빈도에 맞춰 설계해 이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단순한 관리 부족이 아닌 기존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기후재난이었던 셈이다.

침수 피해를 ‘인재’로 단정하면 문제의 원인은 사람의 대비 부족으로 귀결된다. 그러나 최근 폭우는 기존 인프라의 한계를 이미 넘고 있다. 설계 자체의 문제라기보다 비가 그 한계를 훌쩍 넘은 것이다. 결국 지금 우리가 겪는 침수는 ‘인재’가 아니라 ‘천재’에 가깝다. 이제는 사람 탓만이 아니라 ‘하늘 탓’도 고민해야 한다.

기후재난에서 ‘천재’의 비중이 커지는 만큼 이제는 대응방식도 고민해야 한다. 기후변화라는 강한 상대에 맞서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보호장비인 ‘호구’를 갖추는 것과 ‘맷집’, 즉 기초체력을 키우는 것이다. 빗물터널, 대규모 저류시설, 배수펌프장 등은 든든한 호구에 해당하지만 설치와 유지에 드는 막대한 비용과 시간으로 인해 모든 도시가 쉽게 도입하긴 어렵다. 격투기 선수도 헬멧과 보호대를 착용하지만 결국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체력이 바탕이 돼야 한다. 도시도 마찬가지다. 호구도 필요하지만 맷집을 키우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도시의 맷집을 키우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그 핵심은 빗물이 도심에 스며들고 머물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데 있다. 예를 들어 투수성 포장과 식생을 적용하면 빗물이 지표에 고이지 않고 땅속으로 스며들어 침수 위험을 줄일 수 있다. 건축물에는 빗물이용시설을 설치해 유출량을 줄이고 녹지에는 빗물이 머무를 수 있도록 오목하게 설계하면 빗물을 일시 저장할 수 있다. 특히 공원과 같은 녹지공간은 단순한 경관을 넘어 도시의 물순환과 열섬 현상을 완화하는 핵심 인프라 역할을 한다. 옥상이나 벽면을 활용한 입체녹화 또한 빗물 유출을 줄이는 동시에 도심의 온도를 낮추는 데 효과적이다.

기후위기의 시대, 도시는 물을 내보내는 공간이 아니라 머금는 공간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 설계기준을 상향하고 개발 시 투수성 포장과 빗물이용시설, 일정 규모의 녹지를 의무화할 필요가 있다. 침수 위험 지역은 저류시설과 대피 동선을 확보하고 강우 흐름을 실시간으로 제어할 수 있는 스마트 관제 시스템도 구축해야 한다. 민간 영역에서도 이러한 접근이 확산할 수 있도록 세제나 용적률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한다.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이러한 노력은 더 이상 선택이 아닌 도시의 생존 전략이다.

최종수 (climate@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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