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제와 진정성에 반했다"… 브로드웨이 거장의 '어쩌면 해피엔딩' 선택 이유 [인터뷰]
"윌휴의 독창적 작품, 마음에서 떠나지 않아"
"브로드웨이는 더 많은 '윌휴'에게 문 열어야"
"휴와 윌(박천휴와 윌 애런슨)이 몰입감 있는 뮤지컬 속에 영리하게 직조해낸 절제(simplicity)와 진정성(honesty)이 오래도록 마음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국 창작 뮤지컬 '어쩌면 해피엔딩'(Maybe Happy Ending)이 미국 뉴욕 브로드웨이 진출과 토니상 6관왕의 위업까지 이루게 된 결정적 장면은 2016년 뉴욕에서 열린 영어 낭독 공연이다. 이 자리에 참석한 브로드웨이 베테랑 프로듀서 제프리 리처즈(75)가 "나와 함께 브로드웨이로 가자"고 제안하면서 모든 것은 시작됐다. '어쩌면 해피엔딩'의 리드(총괄) 프로듀서인 리처즈는 15일 서면 인터뷰에서 "이 작품은 사랑과 도전, 희망과 외로움 등 관계의 본질을 다룬 범세계적인 서사를 들려준다"고 제작 결정 이유를 들려줬다. 그는 또 "완전히 새로운 오리지널 창작이라는 점도 인상적이었다"고 덧붙였다.
검증된 영국 런던 초연 작품을 들여오거나 기존 지식재산권(IP)에 기반한 경우가 아닌 '어쩌면 해피엔딩' 브로드웨이 공연의 개발과 투자 유치는 녹록지 않았을 터. 뉴욕타임스는 최근 "'어쩌면 해피엔딩'은 불안한 출발을 어떻게 극복하고 토니상을 받았나"라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하기도 했다. 하지만 리처즈는 처음부터 확신에 차 있었다. 그는 "사전 쇼케이스를 본 초기 공동 프로듀서들이 이 흥미진진한 새 모험에 동참하고 싶어 했다"며 "(2020년) 애틀랜타 얼라이언스 극장 트라이아웃(시범 공연)을 준비할 때부터 자금 확보는 순조로웠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당시 뉴욕타임스는 '브로드웨이 준비 완료(Broadway-ready)'라는 공연 리뷰를 내놨다"며 "다만 이 기사 출고 바로 며칠 전에 브로드웨이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셧다운됐으니 브로드웨이만 우리를 맞을 준비가 되지 못했던 것"이라고도 했다.
부분적 차이 외에는 같은 대본과 음악을 쓰지만 300~400석 규모 서울 대학로 소극장에서 펼쳐 온 한국 공연과 1,000석 벨라스코 극장에 올라간 브로드웨이 공연의 연출과 무대는 많이 다르다. 뉴욕으로 가면서 배우와 오케스트라 악기 숫자가 늘었고, 무대 전환이 거의 없는 한국과 달리 다양한 무대 효과에도 힘을 실었다. 달라지지 않은 것도 있다. 로봇 올리버의 유일한 친구 '화분'(Hwaboon)을 우리말 그대로 표현했고, 한글은 무대 디자인의 일부로도 등장한다. 리처즈는 "(한국적 맥락을) 있는 그대로(authenticity) 보여줘야 했기 때문"이라며 "화분은 애틀랜타에서도 관객 눈길을 끌었고 뉴욕 무대에선 그 매력이 한층 더 깊어졌다"고 설명했다.
"창작자는 상상력 끝까지 붙잡아야"
브로드웨이에서 리드 프로듀서로 토니상을 여덟 번 수상한 리처즈의 작품 선택 기준은 "처음 20~25쪽에서 흥미를 끄는 대본"이다. 리처즈는 그렇게 만나게 된 '윌·휴(윌 애런슨과 박천휴)' 창작 듀오에 대해 "관객의 공감을 끌어내는 캐릭터와 흥얼거릴 수 있는 멜로디를 만들어내는 재능 넘치는 스토리텔러"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어 "브로드웨이가 동시대성과 활력을 유지하려면 윌·휴 같은 새로운 창작자에게 더 많은 기회를 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리처즈는 이번 '어쩌면 해피엔딩'의 토니상 수상이 브로드웨이의 새로운 흐름이 되길 바라고 있다. 그는 "같은 인간성을 공유하면서도 표현 방식이 문화마다 다르기 때문에 아직 무대에 제대로 소개되지 못한 다양한 문화권 창작자들의 목소리가 더 많이 소개되길 바란다"고 했다. 전 세계 창작자들을 향해서는 "글 쓰는 일을 멈추지 말고, 간섭이 심한 프로듀서와도 협업할 수 있는 유연성을 지녀야 하며, 때로는 가족의 지지를 받지 못하더라도 끝까지 자신의 상상력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리처즈가 공연계를 향한 다양한 희망적 전망을 들려줬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등장으로 탄탄했던 영화 산업조차 흔들리고 있는 콘텐츠 홍수 시대. 관객이 극장을 가야 하는 수고로움을 감내하며 계속해서 공연을 봐야 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한 단어로 대답할 수 있다고 했다.
"그건 '살아 있는 예술'이니까요(It is live). 어떤 공연도 똑같은 순간은 없잖아요."
김소연 기자 jollylif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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