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헌의 히스토리 인 팝스] [267] 하와이

1897년 오늘, 하와이 공화국은 월리엄 매킨리 미국 대통령과 합병 조약을 체결했다. 하와이 공화국이란 체제 자체가 조약 체결 고작 3년 전에 하와이 내 미국 자본가들이 자신과 자국의 이익을 수호하기 위해 급조한 일종의 괴뢰 정부였다. 이 공화국의 대통령이자 합병 이후 초대 식민지 총독을 지낸 이는 미국에서 이주한 부모의 후손인 샌퍼드 돌이다. 하와이의 미국인들은 주로 사탕수수나 파인애플 농장을 대규모로 경영했는데 샌퍼드 돌 가문도 예외는 아니었다. 기존 국왕과 원주민의 땅을 빼앗는 과정에서 그의 사촌인 제임스 돌도 큰 이익을 보았다. 이 농장을 기반으로 설립한 회사가 오늘날도 여전히 과일 통조림으로 유명한 돌(Dole)이다.
식민지가 된 하와이는 우리의 불행한 현대사와도 조금 인연이 있다. 1903년 한인 101명이 사탕수수 농장의 계약 노동자로 호놀룰루에 도착한다. 지금 하와이의 한국계 미국인은 4만명 남짓이다.
강원도와 충청북도를 합친 면적과 거의 비슷한 하와이는 1959년 알래스카에 이어 미국의 50번째 주로 승격되었다. 이즈음부터 하와이는 세계적인 관광 휴양지로 부상했지만 모든 식민지의 역사가 그러하듯이 낙원의 이면에는 원주민의 슬픔이 켜켜이 쌓여 있다.
하와이 출신으로 가장 유명한 뮤지션은 아마도 이스라엘 카마카위올레일 것이다. 사람들은 이 이름을 줄여서 이즈(Iz)라는 애칭으로 부른다. 우쿨렐레 반주로 부른 ‘Somewhere Over the Rainbow’로 전 세계에 알려졌다. 하지만 그는 단순한 ‘원주민’ 출신의 가수가 아니라 노래로 원주민을 하나로 뭉치게 한 하와이 주권 운동가이기도 했다.
“우리의 왕과 여왕이 딱 하루/이 섬을 방문해서 모든 것을 본다면/우리 땅의 변화를 두고 그분들은 어떤 마음일까(If just for a day our king and queen/Would visit all these islands and saw everything/How would they feel about the changes of our land),” 이 가수는 하와이가 미국의 주로 편입되던 그해 태어났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안재욱, 한·베트남 국빈 만찬서 ‘회장님’이라 불린 사연은
- ‘가죽’인줄 알았는데 ‘합성섬유’···패딩이어 어린이 책가방도 ‘혼용률’ 오표기
- 건설업 일자리 8분기 연속↓ 임금근로 일자리 증가폭 역대 세번째 작아
- 울릉군 고용률, 13년 연속 전국 1위
- 부동산 대출 조이자…‘집 살 나이’ 30·40대 주택 대출 특히 많이 줄었다
- ‘이른 여름휴가’ 효과···인구감소지역 작년 7월 카드사용액 12만6000원 집계 이래 최대
- 공정위, 아파트 유지보수 공사 입찰 담합한 주원디엔피·이루미건설에 과징금 2700만원 부과
- ‘마시는 위고비’ 내세운 16개 제품들 다이어트 원료 無...“소비자 주의 필요”
- 李 “농사 짓겠다고 땅 사놓고 노는 땅은 강제 매각해야”
- 국힘 “與 선거 앞두고 ‘선관위 무적법’ 한밤 쿠데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