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다시 평화] 아이오이 조선인 위령비 30년

이동욱 기자 2025. 6. 15. 2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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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아이오이시
민단-조총련-일본시민 모금해 세운 비석·봉안당
이념·세대 넘은 '원 코리아' 시민 연대로 평화 지향
옛 조선소 노동자 64기 안치, 명단 대조·귀향 숙제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는 인구 2만 6000여 명인 작은 도시다. 창원시와 결연한 히메지시에서 차로 40분 안팎 이동하면 닿는다.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인 '한국조선인무연불지비'는 아이오이시 동부묘원에 있다. 공동묘지 가운데 주차 공간이 있는데 아이오이시가 주차장 한편을 제공해줬다.

위령비는 조선인 노동자들이 힘들게 일했던 하리마조선소가 있던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아이오이시는 만 지형이어서 과거 조선업이 흥했던 곳이다.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신휘호 회장과 송점룡 부회장이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를 참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아이오이 평화 기념비 = 비가 내리던 6월 10일 오전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앞에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임원들이 섰다. 1995년 위령비를 건립한 이 모임은 재일 동포 2~3세와 일본인으로 구성돼 있다. 임원은 1대에서 2대로 이어졌는데 경남과도 인연이 있다. 신휘호(65) 회장은 진주 지수면이 본적이다. 김청일(81) 명예회장과 송점룡(71) 부회장은 밀양 출신이다.

위령비 뒤에 있는 봉안당에는 조선인 노동자 64명 유골이 안치돼 있다. 징용 명부와 무연고자 명부, 찬조자 방명록, <하리마조선소 50년사> 책도 함께 놓여 있다. 1995년 고베 대지진으로 희생된 재일 동포 5명도 남은 가족이 없어 함께 모셔져 있다.

김청일 초대 명예회장은 자신의 아버지 또한 하리마조선소에서 일했기에 위령비 건립을 운명처럼 느꼈다.

김 명예회장은 "하리마조선소 회사 정보는 수해로 없어졌지만 한국에서 보낸 징용 노동자 2018명 명부가 있었고, 그중 하리마조선소에 징용된 이들도 있었다. 출신 지역과 생년월일 등이 남아 있었다"며 기억을 더듬었다.

그는 "아버지가 한국으로 가더라도 작은 토지밖에 없어 규슈 탄광, 백화점 시멘트 작업, 오사카 방직 공장 등을 거쳐 하리마조선소에서 일했다"며 "아버지 묘소도 위령비 근처에 있다. 봄·여름·가을, 정월마다 위령비에 헌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휘호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회장이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신휘호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회장이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송점룡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부회장이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김청일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명예회장이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임원들과 가족, 지인이 모여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서동진 기자

◇마음 모은 재일 동포와 일본인 = 1991년 아이오이 사찰 젠코지(善光寺)에서 무연고 징용 한국인·조선인 유골 60여 구가 발견됐고, 3년간 절에서 제사를 올리다가 비석과 봉안당 건립이 추진됐다. 재일본대한민국민단과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 아이오이시 지부가 소속과 관계없이 마음을 모은 덕분이었다. 김청일 명예회장과 고 최동기 부회장이 주역이다.

특히 모금 활동으로 기념비와 봉안당을 지었다. 하리마조선소(현 주식회사 IHI)에서 지원금을 받자는 의견도 있었으나 민단-조총련-일본인 삼위일체로 모금하기로 결심했다. 2~3년간 홍보해 당시 4500여 명이 참여했는데 3200만 엔이 모였다. 현재 가치로 3억 원이 넘는 큰돈이다.

1995년 1월 고베 대지진(사망 6434명)이 발생하면서 위령비 건립을 그만둘지 고민도 깊었다. 하지만 일본 시민과 재일 동포 응원이 있었다. 아이오이 시민들만 400만 엔(4000만 원)을 모았다.

김 명예회장은 "30만 엔을 약속했던 이들이 50만 엔, 100만 엔 등으로 금액을 높여 자발적으로 함께해줬다"면서 "대지진 재해로 집이 없어졌는데도 약속한 30만 엔을 준 사람도 있고 고베에서는 모금에 동참한 대부분이 재일 동포였다"고 전했다.

또 그는 "1995년 위령비 건립 직후 첫 위령제에는 300여 명이 참석했는데 70%는 일본인이었다"며 "이들은 일본이 전쟁을 일으켜 나빴고 일본 책임인 것으로 이야기했다. 이 같은 분위기가 이어지면서 많은 일본 사람이 이곳을 찾고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앞에서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 중학생 무용단이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지난해 11월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앞에서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 중학생 무용단이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지난해 11월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앞에서 위령제가 진행되고 있다.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지난해 11월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앞에서 재일 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히메지로온 소속 사물놀이 동아리 '우리가락'이 추모 공연을 하고 있다.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서병조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장이 경남도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서동진 기자

◇'원 코리아' =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운영위원회 임원들은 "현 임원 9명도 민단과 조총련 반반이고 일본에 이 같은 비석이 많이 있지만 민단과 조총련, 일본인까지 손잡고 함께 활동하는 구조는 드물다"며 "운영위에서만큼은 원 코리아(One Korea)"라고 입을 모았다.

1995년 실행위원회를 꾸렸을 때부터 민단과 조총련, 아이오이시 일대 재일 동포들이 함께했다. 송점룡 부회장은 "한반도는 분단돼 있지만 여기에 사는 우리끼리는 그런 것이 없다"며 "함께 술도 마시고 골프도 치고 동료로서 잘해보자 하면서 살고 있다"고 말했다.

매년 11월 3일 일본 공휴일인 문화의 날마다 위령제를 지낸다. 아이오이시장도 매번 참석하는 행사다. 모임에서는 타니구치 요시키 시장을 비롯한 아이오이시 공무원들을 두고 "일본에서 최고 공무원이지 않나 싶다"며 "예전부터 모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고 치켜세웠다.

재일 동포 임원들은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고 일본인들과 일상적으로 교류하며 서로 이해하고 도와주는 사이가 됐다. 일본 문화예술단체인 히메지로온(勞音·노동자음악감상협의회) 츠쿠타니 오사무 씨도 이 모임 부회장을 맡으며 구성원들과 참여하고 있다. 히메지로온은 산청에 있는 마당극 전문예술단체인 큰들과 교류하고 있는데, 재일 동포와 일본인으로 구성된 히메지로온 소속 사물놀이 동아리 '우리가락'도 위령제에서 공연한다.

히메지시에 있는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는 중학생 무용부를 중심으로 위령제에 함께하고 있다. 민속무용 공연으로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들의 넋을 기린다.

서병조(48) 세이방조선초중급학교장은 "수업에서도 한반도 역사·정치·문화·지리를 배우지만 과외 활동으로 전쟁과 평화를 배운다"며 "방학 중인 8.15 해방을 앞둔 7월에는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고 함께 생각하며 역사를 더듬어보는 시간이 많다"고 말했다.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 동부묘원 주차장 한편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인 '한국조선인무연불지비'. /이동욱 기자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 동부묘원 주차장 한편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인 '한국조선인무연불지비'. /이동욱 기자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 동부묘원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뒤편 봉안당. /이동욱 기자
일본 효고현 아이오이시 동부묘원에 있는 한국·조선인 무연고자 위령비. 1995년 건립 당시 새긴 우리말 시. /이동욱 기자

◇평화의 등불이 되어 = 위령비 정면 왼쪽 아래에는 1995년 당시 새긴 우리말 시가 있는데, 참여했던 이들의 마음이 담겨 있다. '고향의 부모님을 생각하며 가슴을 치고 / 이 몸의 운명을 한탄하며 통곡을 하고 / 이국땅에서 장례도 못 치른 채 / 의지할 곳 없이 돌아가신 영령들이여 / 그러나 다시 살아나서 / 역사의 아픔을 알리고 / 평화의 등불이 되어 / 이웃으로서의 앞길을 밝혀주신 영령들이여 / 여기에 고이 잠드소서 / 1995년 11월 1일'.

6년 전부터 2대 회장직을 수행 중인 신휘호 회장은 지난해 30주년 행사를 진행했고, 이제 3대 회장과 임원 구성을 고민 중이다. 신 회장은 "많은 분이 돌아가셨고, 애국심이라고 해야 할지 대를 이어 모셔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매년 같은 행사를 하며 스스로 만성화한 것 같아 크게 하자는 생각은 없지만 아이오이 추모 행위와 진정한 평화가 어떤 의미일지 고민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신 회장은 "64명 유골을 한국에 보내주고 싶다. 그분들 심정을 헤아려 보면 돈을 벌고 한국에서 생활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대다수이지 않겠느냐"며 "다만 유골을 한국으로 보내면 위령비는 의미가 사라진다. 어떻게 하면 좋을지 과제로 남아 있다"고 덧붙였다. 송 부회장도 "이들을 한국 고향으로 모두 돌려보내는 것, 최종 목표는 그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임원 대부분이 바쁜 생업 때문에 명부 대조나 유골 귀향 등에 크게 신경을 쓰지는 못하고 있다. 2023년 10월 당시 윤덕민 주일 한국대사가 주일대사 최초로 이곳을 방문하기도 했다. 모임 임원들은 이후 대사관 움직임이나 변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지만 여태까지 소식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이동욱 기자

│통역 도움 박인아 씨, 아이오이평화기념비를지키는모임 양희정 씨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