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칼럼] 의료대란 해결 더 늦으면 안 된다

김승기 센텀소중한눈안과 원장 2025. 6. 15. 19: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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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기 센텀소중한눈안과 원장

안경의 시작은 고대 로마 시대로 거슬러 올라 가는데, 당시는 보석을 갈아 눈으로 보는 원형 렌즈를 사용했고 시력을 향상시키는 것보다 보석이나 글씨를 확대해서 보는 ‘돋보기’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13세기 중반 이탈리아 베네치아와 피렌체에서 처음으로 현대의 안경과 유사한 형태가 등장했다. 이 안경은 두개의 유리 렌즈를 가죽이나 금속 프레임에 고정시킨 형태로 이후 안경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 되었다. 중세유럽에서 안경이 보급된 이후 15~16세기에 서양 선교사들과 상인들을 통해 동아시아로 전파된 것으로 알려져 있고 고려시대 문헌인 ‘규장각기’에 안경에 대한 언급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 시기에 한반도에도 전파되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지만 한반도에서 가장 오래된 안경은 조선 선조 때 활동한 문신 김성일의 것으로 거북이 등껍질로 안경테를 만들었고, 경첩을 가운데에 달아 반으로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었다. 안경다리는 없고 대신 안경테에 구멍을 내어 끈을 달아 귀에 걸도록 되어 있다. 모두 수작업이고 고가 재료의 엄청난 가격이었으며 쉽게 구할 수 없는 물건이었다.

안경을 구했다고 해도 자신보다 손윗사람 앞에서 착용하는 것은 예절에 어긋나 착용에도 제한이 많았다. 심지어 왕이라도 공식 회의에서는 안경을 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아직도 일부 나이 많은 분은 젊은 사람이 선글라스를 끼고 다니면 ‘건방져 보인다’고 생각하는데 예전부터 내려온 잠재의식 때문이 아닐까 싶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 신체를 함부로 다쳐서도, 덧붙여서도 안된다는 생각 때문에 지독하게 눈이 나빴던 순종도 아버지(고종)를 만날 때는 안경을 쓰지 못했고 헌종 때 세도가였던 왕의 외숙 조병구는 안경을 쓰고 왕 옆을 지나가다 질책을 받고 이를 괴로워하다 결국 자결했다고 한다.

19세기 외국의 외교관들이 안경을 많이 사용했는데 1891년(고종 26년) 일본의 전권 공사이던 오시이가 관습을 무시하고 안경을 쓴 채 왕을 알현해 우리 정부가 일본에 정식으로 항의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 대한제국의 독일인 외교 고문 묄렌도르프는 아주 심한 근시였으나 예법을 지키기 위해 고종 알현 때 안경을 벗고 어전에 나갔다가 잘 보이지 않아 비틀거리는 바람에 고종에게서 안경을 써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고 한다.

자유롭게 안경을 써도 되는 지금은 참 좋은 세상이지만 자녀가 안경 쓰는 것을 좋아하는 부모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이가 눈이 많이 나쁜 데도 안경을 안 쓰면 문제가 될 수 있다. 시력은 눈으로만 완성되는 게 아니고 최종적으로 대뇌의 시각중추가 정상적으로 발달이 돼야 하는데 시각중추는 만 6~7세경 발달이 거의 완성된다. 취학 전 아이가 눈이 나쁘다는 걸 모르거나 안경이 눈을 더 나쁘게 한다는 잘못된 생각으로 아이에게 안경을 쓰지 못하게 하면 정확한 상이 시각 중추를 자극할 수 없다. 이에 발달이 정상적으로 이루어지지 않아 나중에 안경을 써도 시력이 잘 나오지 않는 상태가 될 수 있는데 이를 약시라고 한다. 약시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취학 전 정확한 시력검사가 중요하고 필요하면 반드시 교정을 해 주어야 한다.

모든 일에는 적절한 시기가 있다. 시기를 놓치면 나중에는 고칠 수 없거나 바로 잡는데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의료대란이 벌써 3년째인데 아직도 해결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현장에서는 급한 환자를 대학 병원에 보내기가 너무 힘이 든다. 전공의는 돌아오지 않고 학생 유급도 해결되지 않았다. 이러다가 나중에 군의관 문제는 어떻게 할지 감이 오지 않는다. 벌써 3년이 넘는 군의관보다 18개월 일반병으로 병역을 해결하고 유급문제를 통과하는 의대생이 많다고 한다.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는 것이 아니라 가래로도 못 막는 상황이 오지 않도록 당장 지금의 의료대란 해결에 지혜를 모아야 한다.


우리 의료체계가 완벽했다고 할 수는 없지만 세계가 부러워 한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집에서 걸어 가 예약없이 전문의 진료를 받을 수 있는 나라는 단언코 한국 말고는 없다. 기본적인 진료 수준도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다. 모두의 노력으로 이루었지만 당연한 것은 아니다.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더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머리를 모아야 하는 데 순식간에 수렁에 빠지는 것이 아닌지 너무 걱정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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