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불국토의 심장, 경주 남산…보존·활용 해법 모색
불상·석탑·산성·기와 유적까지 총망라…학계 “산지 불교문화의 정수, 지속적 연구 시급”

지난 13일 The-K호텔 경주에서 '천년의 숨결, 경주 남산을 담다!'란 주제로 열린 '2025경북문화포럼'은 풍부한 문화유산과 자연경관을 자랑하는 경주 남산의 가치를 재조명하는 자리로, 뜨거운 호응 속에 진행됐다.
14일까지 이틀간 열린 '2025경북문화포럼' 프로그램 중 첫 째날 행사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는 전문가 5명이 참가해 기조강연, 주제발표를 통해 다양한 의견을 쏟아 냈다.
이어 총 7명의 패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남산의 문화적 가치와 활용방안'을 주제로 패널토론을 진행하면서 포럼에 참여한 일반 시민들과 질의·응답을 하는 등 행사장이 열기로 가득 찼다.

경주의 남산은 단순한 자연 경관을 넘어 신라 왕실과 백성이 불교적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신성한 공간이었다. 신라인들은 불국토 사상을 바탕으로 남산을 성지로 가꾸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독창적인 불교문화를 꽃피웠다.
남산에 남겨진 다양한 불교 유적은 신라인의 신앙과 세계관을 생생히 전하는 문화유산으로, 신라의 정신세계와 문화적 성취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
그러나 그동안 남산에 대한 연구는 주로 개별 유산과 미술사적 관점에 머물렀다. 이제는 신앙과 정신적 가치에 대한 심층적인 연구가 요구된다.
특히 남산 유물의 복원은 본래의 자연환경 속에서 이뤄져야 하며, 원위치에서 유물 본연의 상징성과 영적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 불상은 단순한 예술품이 아닌 신앙의 결정체로서 제자리에서 존중받아야 한다.
남산 유산의 보존과 전승은 국가의 힘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며, 시민들의 지속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다. 문화유산이 자연과 더불어 살아 숨 쉬는 공간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역 사회의 협력과 주체적인 노력이 절실하다.

남산 불교유적의 초기(7세기~8세기 중엽)는 장창곡, 배동, 불곡 등 산 북쪽과 주요 통행로 주변에 산재한 형태로 나타나며, 불상 중심의 개별적 조성이 특징이다.
반면 후기(8세기 후반 이후)에는 삼릉계, 용장계, 포석계, 오산계 등 주요 계곡의 능선과 정상부에 집중되며, 불상과 불탑의 방향성에서도 신앙적 의도와 공간 계획이 뚜렷하게 확인된다.
대표 유적인 삼릉계 석조여래좌상은 별도의 생활시설 없이 노천에 봉안돼 수행과 의례 중심의 공간으로 보이며, 열암곡과 약수곡 유적도 마찬가지로 소규모 불전과 석불이 조성된 수행 중심의 장소로 해석된다.
대형 사찰의 흔적보다는 개인 혹은 소규모 승려 집단의 수행과 예불이 이뤄진 산지 수행처의 성격이 두드러진다. 이러한 남산 유적의 성격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조탑공덕경'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등의 경전에 따라 탑과 불상 조성이 공덕 실천의 핵심으로 여겨졌으며, 남산의 지형은 이러한 신앙 실천에 적합했다.
둘째 남산은 평지의 왕경 사찰과는 구분된 산림 수행 공간으로 기능하며 '삼국유사'의 기록은 이 같은 수행 전통을 뒷받침한다. 셋째 남산 유적은 공동체적 거주보다는 개인 혹은 소규모 수행자 중심의 예불과 정진을 위한 공간이었다.
결론적으로 경주 남산은 신라 시대 '스님-수행-공덕'이라는 핵심 가치를 구현한 산지 불교문화의 중심지로, 불상과 불탑이 어우러진 유적 하나하나가 수행자의 신앙과 정진의 결과물임을 보여준다.

남산은 '불상과 탑의 보고'로 불릴 만큼 수많은 불교유적을 간직한 신성한 산이다. 일제강점기에는 많은 석탑이 훼손됐으나, 현재는 복원된 탑들을 통해 신라 불교 예술의 정수를 다시 만날 수 있다.
남산에는 150여 개의 절터와 97기의 석탑이 확인됐다. 이는 전체 유적의 절반에도 미치지 않는 숫자로, 많은 탑들이 파괴됐거나 자취조차 남지 않은 상황이다. 그럼에도 복원된 석탑들은 신라 건축과 조각, 신앙이 어떻게 유기적으로 결합 됐는지를 보여주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남산의 석탑은 형태와 기능 면에서 뛰어난 다양성을 지닌다. 실제 목탑의 구조를 짐작하게 하는 흔적도 있으며, 바위에 새겨진 마애탑은 하늘을 향한 신라인의 신앙심을 전한다.
전탑형 석탑은 벽돌 구조를 석재로 재현한 독특한 형태로, 신라의 창의성과 실험정신을 잘 보여준다. 천관사지의 팔각 옥개석 석탑, 사천왕상이 부조된 승소곡사지 석탑, 수많은 구멍이 있는 천동탑, 옥개석 상부에 추녀마루가 조각된 탑재 등도 주목할 만한 유물이다.
특히 창림사지 3층석탑은 상층기단에 팔부신중상을 새긴 최초의 예로 평가된다. 탑인지 불상인지 판단이 어려운 용장사지 삼륜대좌불은 신비로운 구조로 연구자들의 흥미를 끈다. 이는 단순한 신앙 조형물을 넘어 신라인의 우주관과 미학이 투영된 상징물로 해석된다.
오늘날 경주 남산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신라 불교 조형예술의 실험실이자 산실이었다. 향후 더욱 심화된 발굴과 연구를 통해 고대 조형예술의 진면목이 밝혀지기를 기대케 한다.

경주 남산은 고대로부터 '신라의 성산'으로 불리며, 이곳은 단순한 산이 아니라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응축된 '불국토'의 상징이다.
이러한 역사적 공간에서 신라문화유산연구원은 2019년부터 2022년까지 서남산의 약수곡 제4사지를 중심으로 발굴조사를 수행했다.
이번 연구의 주요 초점은 이 발굴지에서 출토된 통일신라 초기부터 조선 전기까지의 기와류에 있다. 삼국시대 신라기와부터 현대기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양식의 기와들이 남산 일대에 산재돼 있으며, 이들 기와는 단순한 건축자재를 넘어 당시의 사찰 건축 기술, 예술 감각, 신앙 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문화자료다.
경주 남산의 기와, 그것은 과거 신라인들의 손끝에서 빚어진 불국토의 상징이자, 오늘을 사는 우리가 지나온 천년을 더듬고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유구한 문화의 단서다.

경주 남산에 위치한 신라 진평왕 13년(591년)에 축조된 남산신성이 약 5km에 달하는 둘레로, 신라 최대 규모의 산성임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 남산신성비 10기의 발굴로 공사에 참여한 인원과 지역, 작업 거리 등이 상세히 기록돼 당시 신라의 공사 실명제와 3년 하자보수 기간 등 체계적인 국가 운영 시스템이 드러났다.
특히 남산신성 내 '장창'은 왕실의 재정과 국방을 담당하는 핵심 창고로, 동창지는 무기 저장소, 중창지는 곡식 창고로 밝혀졌다.
서창지는 창고가 아닌 특수시설로 추정되면서 신라 왕성 방어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을 보여준다.
문무왕 19년(679년)에 대대적인 증축이 이뤄진 남산신성은 월성 다음으로 중요한 국방 거점으로, 삼국통일 이후에도 신라 마지막까지 월성을 지키는 핵심 방어시설로 기능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의미가 크다.
이번 고고학적 성과는 신라의 군사·행정·경제가 유기적으로 결합된 국가 운영체계의 실체를 밝히는 데 크게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기조강연과 주제발표에 이어 이영호 경북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를 좌장으로 6명의 패널이 '유네스코 세계유산 경주 남산의 문화적 가치와 활용방안'을 주제로 토론의 시간을 가졌다.
이날 토론에 참여한 패널들은 경주 남산이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가치를 가지고 있어, 그 활용 방안도 무궁무진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특히 이날 패널로 참여한 이진락 경주시의원은 "수많은 세미나를 다녀 봤지만, 이렇게 수많은 사람이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면서 "이 포럼도 세미나 한 번으로 그치지 말고, 현장 답사에서 공연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했으면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