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해체 결정 취소한 지 얼마나 됐다고"…오락가락 행보에 지역사회 피로감

곽우석 기자 2025. 6. 15.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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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보 농민들, 해체 거부감 많아…"가뜩이나 농업용수 부족"
공주보·세종보 인근 주민들…"해체"vs "존치" 찬반 의견 팽팽
백제보 금강문화관 전망대에서 내려다본 백제보 전경. 곽우석 기자

"얼마전에 해체 결정을 취소하지 않았나요. 다시 허문다고요?"

지난 13일 충남 부여군 백제보 인근의 한 시설하우스 농가. 갑작스런 비에 농작물을 점검하러 나온 농민 김모씨는 "정권 입맛 따라 보의 존폐가 오락가락 하면 국민들은 과연 누굴 믿어야 하느냐"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정부가 바뀌면서 4대강 보를 다시 없앨 것이란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제발 이번에는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여 결과를 내놨으면 좋겠다"고 성토했다.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살리기' 사업으로 추진된 전국 16개 보의 운명이 하루아침에 논쟁거리가 된 현실을 개탄하고 나선 것이다.

백제보, 공주보, 세종보 등 3개 보가 자리한 중부 내륙의 핵심 젖줄인 금강 수계는 정권에 따라 보의 생사(生死)가 '180도', '360도' 뒤바뀌며 주민 혼란도 가중되고 있다.

백제보 인근 시설하우스 모습. 곽우석 기자

백제보 인근 주민들은 보 해체에 대한 거부감이 무척 강했다. 농사에 주는 이로움이 많다는 것이다.

금강과 인접한 주변 시설하우스에선 수박, 애호박, 방울토마토, 멜론 등의 시설작물이 많이 재배된다. 농업용수 공급을 위해 보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는 논리다.

백제보 금강문화관 전망대에서 만난 이모씨는 "문재인 정부 시절 보 개방으로 강 수위가 낮아지면서 농가들이 한바탕 난리가 났다"며 "농업용수를 확보하기 위해 지하수 관정을 수없이 뚫었으나 이마저도 역부족이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우리나라가 물 부족국가인 만큼 보를 잘 활용해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공주보 전경. 곽우석 기자

반면 '환경보호'를 위해 보를 전면 철거해야 한다는 강경 목소리도 여전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후위기 대응 공약으로 '4대강 재자연화'를 약속한 만큼, 하루 빨리 공약 실행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공주보 인근에서 만난 김모씨는 "윤석열 정부가 4대강 보에 대한 결정을 뒤집으면서 녹조 등 재앙 위기가 커졌다"며 "국가 물 관리정책이 후퇴하면서 그간 쏟아온 노력과 성과가 모두 무위로 돌아갔다"고 주장했다.

문재인 정부 시절 해체 결정이 내려졌던 '세종보' 주변에선 환경단체들의 '보 철거 농성'이 수개월째 이어지며 사회적 갈등도 심각해지고 있다.

박창재 세종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세종보를 가동했던 과거 5년간 금강물은 썩어갔고 생물들은 사라졌다"며 "강물을 가로막아 개발하자는 구시대적이고 낡은 방식은 이제 폐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종보 인근 한솔동에 거주하는 박모씨도 "담수가 진행됐던 시기에는 아파트 주변에 악취가 진동해 불쾌감이 적잖았다"며 "보를 개방하며 환경이 쾌적해 졌다. 이재명 정부도 문 정부가 추진했던 금강 재자연화 방안을 신속히 이행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보 전경. 대전일보DB

탄력적인 보 운영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수문 개방'과 '담수'를 적절히 병행해 물을 '활용'하는 데 중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함께 추진됐으나, 이보다 앞서 '행복도시(세종 신도시)건설기본계획'에 따라 구상된 세종보의 경우 이 같은 의견이 많았다. 노무현 정부 시절 '친수공간 확보'를 위해 계획돼 설치까지 이어진 만큼 시설물 활용을 극대화하자는 취지다.

세종 나성동 한 상인은 "세종보는 호수공원 등 도시 내에 물을 공급하고 수면적을 풍부하게 하기 위해 행복도시 구상 당시 계획됐다"며 "문재인 정부가 '4대강 사업'이란 프레임을 씌워 해체라는 잘못된 결정을 내렸다"고 비판했다.

공주보 인근에서 만난 한모씨도 "농업용수 공급에 문제가 되지 않도록 수위를 잘 관리하는 등 탄력적으로 운영해야 한다"며 "비가 많이 내리는 장마철 등에 수문을 열어 오염물질을 배출하면 수질 관리도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재명 정부가 '실용주의' 노선을 내세우고 있는 만큼 '해체 결정'이란 극단적 상황까지 이르지는 않을 것이란 의견도 나왔다.

부여가 고향인 최모씨는 "수천억원의 예산을 투입한 4대강 보를 '재자연화'를 명목으로 단순히 해체하는 것은 현 정부 기조와 맞지 않아 보인다"며 "주민 의견이 복잡 다양한 만큼 민의를 취합해 합리적인 결정을 내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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