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적인 사건에서 건져올린 문학의 정수, 이계홍 작가 ‘해인사를 폭격하라’ 출간

윤태민 기자 2025. 6. 15. 1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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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편 작품 수록, 선 굵은 서사구조, 탄탄한 스토리텔링 등
격동의 시대 살아낸 인간 군상의 고투와 진실
역사의 그늘에서 길어 올린 진실, 고통의 목소리 담아
이계홍 작가의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

역사적 사건을 바탕으로 현실을 꿰뚫는 리얼리즘 문학의 새 지평이 열렸다.

대하소설 '깃발', '고독한 행군' 등으로 잘 알려진 이계홍 작가가 역사와 인간의 내면을 깊이 있게 조명한 중편소설집 '해인사를 폭격하라'를 출간했다. 이 책은 도서출판 도화에서 펴냈으며, 가격은 1만5천 원이다.

이번 소설집에는 ▲순결한 여인-1970년대 풍경화 ▲해인사를 폭격하라 ▲귀국선 우키시마호 ▲인지 수사-아직도 여전히 답답하게 등 네 편의 작품이 수록됐다. 모두 역사적 진실과 시대의 고통을 고스란히 담아낸 이야기로 현장성, 집요한 자료 수집과 치밀한 고증이 문학적 상상력과 결합된 문제작들이다.

이 작가는 이번 책에 대해 "옛 관성에 젖어 낡은 사고의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다 보면 역사의 방향을 놓치기 쉽다"며 "거친 역사의 흐름에서 행동하는 인물들의 행적을 더듬어 진실을 담아내려고 한다"고 밝혔다.

표제작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6·25전쟁 당시 실제 해인사 폭격 명령을 거부하고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공군 장교의 이야기를 실화 기반으로 그린 작품이다. "전쟁은 개인의 선의만으로 지킬 수 없다"는 인식 속에 군인으로서의 소명과 민족문화재 보호의 신념이 충돌하는 긴박한 순간들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독자들은 마치 전장을 눈앞에 두고 있는 듯한 생동감 속에서, 문명과 전쟁, 명령과 양심의 경계를 성찰하게 된다.

'순결한 여인'은 남도 사투리와 욕지거리가 생생한 한 여성의 삶을 통해 1970년대 사회의 그늘을 그려낸다. 몸을 팔고 '고정간첩 공모자'로 몰리며 고초를 겪은 여인의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시대의 폭력성이 어떻게 한 개인의 인생을 파괴하는지를 고발한다.

또 다른 수록작 '귀국선 우키시마호'는 해방 직후 일본에서 귀국하던 조선인들이 탑승한 선박이 원인 불명의 폭발로 침몰한 사건을 다룬다. 8천여 명 중 2천여 명만이 살아남은 참사를 두고 작가는 미군 기뢰설, 일본의 무책임 등 각종 정황을 추적하며, 역사적 상흔과 억울한 죽음의 진실에 다가간다.

'인지 수사'는 남의 문중 땅에 몰래 묘를 쓰고도 법적으로 이를 바로잡지 못하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비정한 현실과 제도의 부조리를 날카롭게 풍자한다.

또한 합리와 상식을 무력화시키는 권력, 사법적 패배주의를 무력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인간의 심리를 고발한다.

이계홍 작가는 이번 책에 대해 "역사적 사건에서 특이한 소재를 만날 때, 묻혀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에 등장인물의 행적을 하나하나 추적하며 집필했다"며 "문학은 발품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관련 인물 인터뷰, 도서관 탐방, 지역 취재 등을 통해 자료를 수집했다고 밝힌다.

전남 무안 출신인 이 작가는 동국대 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아일보와 문화일보, 서울신문 등에서 오랜 기간 기자로 활동했다. 이후 문학에 전념하며 대하소설, 역사소설, 인물 평전 등을 다수 발표해왔다. 현재는 동학농민혁명을 소재로 한 장편소설을 집필 중이다.

그가 출간한 '해인사를 폭격하라'는 리얼리즘의 힘과 역사 서사의 깊이를 모두 갖춘 작품으로, 현대 문학에서 보기 드문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역사와 인간, 현실과 문학의 경계를 탐색하고 싶은 독자라면 반드시 주목할 만한 책이다.
/윤태민 기자 ytm@namdonew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