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도 땡볕, 택배기사의 숨 가쁜 13시간[르포]

정경수 2025. 6. 15.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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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다가오자 고충 더해가는 택배기사들
화장실 사용도 제한
점심 끼니 거르는 일도 다반사
지난 11일 오전 경기 고양시의 한 공사장 앞에서 김씨가 택배물을 정리하고 있다. 사진=박성현 기자
지난 11일 오전 경기 고양의 아파트 단지에서 김씨가 배송할 물건을 내리고 있다. 사진=박성현 기자

[파이낸셜뉴스] "정말 숨쉬기 어렵네요."
30도 넘는 따가운 햇볕 아래서 무거운 짐을 나른 택배기사 김민호씨(가명·25세)가 숨을 고르며 말했다. 물로 목을 축인 그는 다음 배송지로 향했다. 작업복은 이미 땀에 젖은 지 오래다.

6월 들어 본격적인 고온의 날씨가 기승을 부리자 야외노동자인 택배기사의 고충은 배로 늘었다.

지난 11일 오전 6시 30분. 김씨는 고양시의 한 택배영업소에 출근했다. 기능성 티셔츠에 작업조끼를 걸친 그는 따가운 자외선을 막고자 모자까지 깊게 눌러썼다. 그가 사무실에 들어선 뒤 먼저 하는 것은 자외선 차단제를 두껍게 바르는 것이다. 그는 "햇빛이 너무 심해서 일과 중에 자주 덧발라야 한다"며 택배물이 쌓인 일터로 향했다.

첫 작업은 택배물 분류와 상차다. 새벽에 도착한 물량 중 자신의 배송지역에 해당되는 물건을 추려 차량에 싣는 일이다. 김씨는 "유독 자전거, 에어컨, 시멘트 통 등 무거운 물건이 많다"며 스캐너로 물건을 하나씩 확인하고 트럭에 올렸다. 우선 배송할 물건을 가장 바깥쪽에 차곡차곡 쌓으면서도 실수가 없도록 눈은 매섭게 택배물을 주시했다. 자외선 차단제는 벌써부터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오전 8시26분. 김씨는 2시간의 상차를 마치고 트럭에 탑승했다. 뙤약볕에 놓인 트럭 내부는 용광로처럼 뜨거웠다. 최저 온도로 설정한 에어컨이 작동하자 서서히 시원해졌지만, 차량에 오래 머물 수 없었다. 그는 "길어야 2분을 안 넘는다. 시원함은 찰나의 순간일 뿐"이라고 웃어 넘겼다.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배송지에 도착하자 5개의 회사가 있었는데, 배송 정보에는 회사명 없이 '이OO 과장'이라는 수취인의 이름만 적혀있다. 그는 이 과장의 회사를 찾아야만 한다. "이 과장님 맞으시죠?" 고객과 통화하는 사이 배송이라는 시간 전쟁에서 지체될 수밖에 없었다.

다음 배송지인 공사장에서는 입구의 도로포장 공사로 진입이 막혔다. 공사장으로 배송되는 택배는 무거운 것이 대부분이라 팔레트에 포장해 묶음으로 배송된다. 하지만 내부 진입이 어려워지자 포장을 일일이 해체해 물건 하나씩 들어 옮길 수밖에 없었다. "무거운 것은 둘째로 치고 이런 일이 생기면 다음 배송이 늦어질 수 있어 결국 점심 식사를 거를 때도 많다"고 설명했다. 힘겹게 공사장 배송을 마친 그는 땀범벅인 상태로 가까운 식당에 들어가서 나오기까지 25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지난 11일 오후 1시께 택배 차량 내부 온도가 40도에 육박한 모습. 사진=박성현 기자

오후 1시. 배송을 끝내고 픽업을 시작했다. 픽업이란 고객이 요청한 발송 택배를 수거하는 작업이다. 기온이 30도를 넘어서자 강한 에어컨 바람에도 내부 온도는 쉽게 낮아지지 않았다. 도자기, 싱크대, 에어컨, 금속부품 등 고중량 택배물 수거 작업이 5시간 동안 이어졌다. 김씨의 얼굴은 두꺼운 자외선 차단제에도 어느새 곳곳이 벌겋게 익어 있었다.

택배기사는 화장실 이용이 가장 큰 고충이라고 토로했다. 그는 "참다가 한계에 다다르면 근처 상가를 찾지만, 화장실에 비밀번호가 설정돼 있어 이용하기 힘들 때가 많다"며 "식당이나 카페에 양해를 구해도 허락받기 어려워 결국 영업소에 돌아올 때까지 버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토로했다. 김씨는 이날 13시간의 근무를 하면서도 영업소 화장실을 제외한 화장실을 이용하지 못했다.

오후 6시. 대형 터미널과 전국 영업소에 발송할 물건을 분류하는 일만 남았다. 퇴근을 앞당기고자 모든 배송 기사가 합심해 분류 작업에 나섰다. 한 시간의 분류 작업 후 김씨는 다음날 배송할 물건을 미리 숙지하고 배송 순서를 짜기 위해 영업소 사무실로 들어갔다.

오후 7시 40분. 김씨는 출근 13시간만에 퇴근했다. 이후 일정을 묻는 말에 그는 "치킨을 먹고 드라마 한 편 보고 잘 것"이라고 답했다. 땀에 자외선 차단제가 녹아 얼굴 곳곳에 그 흔적이 남았지만, 그의 표정 중 가장 밝은 모습이었다. 택배기사 김민호씨의 하루는 이렇게 끝이 났다.

psh@fnnews.com 박성현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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