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4. 제주의 역사를 풍경으로 기록하는, 강요배
전체 맥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본문 보기를 권장합니다.
강요배(73)는 한국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1980년대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10년간 활동했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린 제주 4·3항쟁 연작으로 '리얼리즘 회화와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렇게 역사화 제작의 성과에서 얻은 결과들은 차츰 강요배만의 제주 풍경화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강요배(73)는 한국 민중미술 1세대 작가로 1980년대 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 10년간 활동했다. 1989년부터 본격적으로 그린 제주 4·3항쟁 연작으로 '리얼리즘 회화와 역사 주제화의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후 제주의 자연과 역사를 주로 다뤄오고 있다.
강요배는 한국전쟁 중이자 제주 4·3사건 막바지던 1952년 제주시 삼양동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미술에 특별히 소질이 있던 그는 넉넉하지 못한 가정 형편에도 부모님의 든든한 후원 아래 자유롭게 그림을 그리며 자랐다. 중·고교 시절에도 미술에 대한 꾸준한 열정으로 서울대학교 미술대학에 입학하고 제주를 떠나 본격적으로 미술을 공부한다. 특히 문학과 사상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폭넓고 깊은 사고를 작품에 담아내고자 작업에 다양한 실험을 적용하며 대학 시절을 보낸다. 1979년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 창문여고에서 6년간 미술 교사로 지내며 한국 미술교육 방향을 제시하고 실천하고자 노력하기도 했다.
1981년부터 10년간 민중미술그룹 '현실과 발언' 동인으로서 적극적으로 활동한 강요배는 역사와 현실에 기반을 둔 비판적 사실주의 조형 언어를 구축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 한편, 같은 시기 신문 연재 역사소설에 삽화를 그리게 되면서 제주 4·3항쟁이라는 역사적 사건과 본격적으로 마주하게 된 그는 자신의 예술세계를 공고히 할 다음 장을 넘기게 된다.
강요배는 1989년에서 1992년까지 3년간 서울 근교 농가에 칩거해 제주 4·3항쟁에 관한 거의 모든 기록을 찾아 연구하며 관련 연작을 세상에 내놓는다. 이 일련의 작업은 한국 미술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후 그는 20여 년의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제주로 돌아간다. 그의 귀향은 단순히 고향에서 마음 편히 작업을 하고자 함이 아니었다. 제주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의 시간 속, 그 추상의 세계로 자신을 내던져 작업하고자 하는 의지였다. 첫 7여 년은 제주 구석구석을 직접 다니며 제주의 시간과 공간 그리고 사람과 자연을 탐구한다. 이후 작업을 통해 자신과 세계와의 관계 속에서 제주의 역사와 풍경을 통찰력 있게 화폭에 담아내기 시작한다. 그렇게 역사화 제작의 성과에서 얻은 결과들은 차츰 강요배만의 제주 풍경화로 발전하게 된 것이다.
경남도립미술관은 강요배의 '물비늘'(2015)을 소장하고 있다. 100호 크기의 캔버스에 아크릴로 화면 가득 바다만을 그려낸 이 작품은 연두색, 풀색, 짙은 녹색, 남보라색 등 다양한 푸른색들이 어우러져 넓고 깊은 바다를 보여주고 있다. 가만히 화면을 들여다보면, 제목과 같이 바다 위에 잔잔한 물결의 움직임이 '물비늘'처럼 느껴진다. 붓의 터치와 다양한 색의 변주에 따라 울렁이는 듯한 파도는 바다의 생동감을 그대로 전한다. 거친 붓과 구긴 종이로 캔버스 위에 휘날리듯 남겨진 물감의 흔적들이 겹겹이 쌓여 강요배 회화 특유의 질감과 깊이감으로 표현되었다. 이러한 기법은 마치 액션 페인팅(Action Painting)과 같이 즉흥적이고 속도감 있는 표현들로 인해 보는 이로 하여금 작품을 제작하는 작가의 행위를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그로 인해 작가의 호흡과 몸짓 그리고 에너지가 풍경에 동화된 듯 느끼게 하는 것이다.
강요배에게 제주의 풍경이란 어떤 의미일까. 단절과 억압의 역사로 이루어진 척박한 제주 땅에서 바다는 억겁의 시간 속에서 수많은 이의 땀과 눈물 그리고 피를 받아낸 인간의 어두운 초상이기도 하다. '물비늘'은 세계의 일부이자 뼈아픈 역사적 장소로서 제주, 그 중첩된 시공간에서 건져 올린 풍경과 그 안에서 태어난 자신을 하나로 엮어내 보인 것이다.
/최옥경 경남도립미술관 학예연구사
※ 참고문헌
제주도립미술관〈한국현대미술작가 강요배: 시간 속을 부는 바람〉전시도록(2016).
대구미술관〈카네이션: 마음이 몸이 될 때〉전시도록(2021).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3. 눈으로 볼 수 없는 것들의 몽타주, 원성원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2. 존재에 대한 끊임없는 해체와 재구성, 김아타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1. ‘여성’에 대한 사회적 통념을 전복하다, 박영숙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40. 일상의 소리와 이미지, 그 익숙함을 낯설게 하기, 안정주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39. 집념과 삶의 태도가 집약된 지행(知行)의 결정체, 정상화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38. 말이 안되는 세상을 이해하기 위한 쓰잘머리 없는 몸부림, 옥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37. 자꾸만 가라앉는 현실에서 미세한 진실을 길어올리는 작업, 방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36. 개인의 삶과 역사의 교차점에서 새롭게 사유하기, 김세진
- [경남도립미술관 소장품 산책] 35. 한결같이 촉석루의 시간을 기록한, 조영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