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길 닿는곳 어디서든…초록빛 차오른 계절 속속 담아

김보경 기자 2025. 6. 15.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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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방곡곡 제철행복] (3) 한강공원 ‘산책드로잉’ 체험
먼저 풍경을 천천히 즐기다가
마음이 머문 장면 하나 스케치
나와 자연에 집중…힐링의 순간
마음 다독이며 계절 변화 느껴
‘산책드로잉’ 참가자가 나무 아래에 앉아 여름 풍경을 그리고 있다. 초록색이 주는 편안함과 공원의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신록의 계절이다. 무성하게 자란 푸른 잎은 생기를 뿜어내고, 꽃들은 제 빛깔 중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물들었다. 이맘때면 어린 시절 사생대회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잔디밭 위 돗자리에 앉아 스케치북에 고사리손으로 나무 꽃 그림을 그리다 배가 고프면 싸 온 도시락을 나눠 먹던 다정한 풍경 말이다. 그 기억을 따라 초록이 덮인 숲과 공원을 거닐며 눈에 보이는 예쁜 것들을 작은 스케치북 위에 슥슥 담아본다. 혼자 그리는 게 어색하다면 드로잉 소모임을 찾아 함께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 초여름의 문턱에서, 서울 마포구 망원한강공원으로 드로잉 나들이를 떠났다.

반짝거리는 햇살 때문일까, 한강공원으로 향하는 마음이 괜스레 설렌다. 지하철 6호선 망원역에 내려 한강공원 표지판을 따라 걸었다. 한강이 가까워지자 오래된 가게 앞 손글씨가 먼저 반겼다. “축구공·배구공·농구공 대여 2000원, 배드민턴 2개 세트 3000원, 집에 갈 때까지.” 녹음 사이로 하얀 주걱개망초, 노란 큰금계국, 보랏빛 붉은토끼풀과 벌완두도 바람에 살랑 흔들린다. 자동차 소음과 빌딩으로 둘러싸인 도시에서 벗어나 마치 다른 세상에 순간이동 한 듯 평화로운 분위기다.

잔잔하게 흐르는 한강을 배경으로 푸릇푸릇한 풀과 나무가 이루는 풍경이 한폭의 그림이 된다.

이날은 박명주 작가(활동명 모소)가 매월 한두차례 진행하는 야외 드로잉 모임 ‘산책드로잉’과 함께했다. 박 작가는 산책하며 마주한 일상의 풍경과 작은 풀꽃 같은 자연을 수채화로 그려낸다. 그는 그림 그리기로 마음을 다독이고 계절의 작은 변화를 깊이 느끼는 경험을 나누고자 야외 드로잉 모임을 만들었다. 경기 화성의 농촌에서 자라 자연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한 그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도 6월이다.

“6월은 식물이 자기 색깔을 가장 뚜렷하게 드러내는 시기예요. 매일 한강을 산책하듯 걷고 멈추고 바라보는데, 볼 때마다 풀이 부쩍 자라 있는 게 신기하죠. 제가 초록색 물감만 짜서 모은 팔레트가 따로 있을 정도로 초록을 좋아하거든요. 이 시기엔 온갖 초록색을 다 만날 수 있는데 물감으로 모두 표현하지 못해 아쉬울 때도 많아요.”

1인용 돗자리 위에 작은 스케치북과 그림 도구를 펼쳐놓은 모습.

오전 11시, 한강 풍경이 잘 보이는 위치에 사람들이 하나둘 모인다. 서로 가볍게 인사를 나누고 각자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미리 챙겨온 작은 스케치북과 간단한 그림 도구를 꺼내놓는다. 휴대용 팔레트와 물붓, 연필·펜·파스텔 등 종류도 다양하다. 요즘은 태블릿 하나만 있어도 된다. 드로잉이라고 하면 거창해 보이지만 야외 드로잉은 무거운 장비 없이 가볍게 시작할 수 있다.

공원에 피어 있는 보랏빛 붉은토끼풀.

야외 드로잉의 첫번째 순서는 풍경을 즐기는 것이다. 산책로를 따라 이리저리 걸어보기도 하고, 고개를 뒤로 젖혀 올려다보다 하늘을 가린 나뭇잎 개수를 세어보기도 하고, 코앞의 이름 모를 풀을 들여다보기도 한다. 그러다 마음이 가는 한장면이 눈에 들어오면 그 자리에 앉아 스케치북을 꺼내면 된다. 박 작가는 “그림 대상은 예쁜 풍경 전체보단 나무 한그루, 꽃 한송이, 벤치 하나처럼 작고 구체적인 주인공을 하나 정해서 그리면 훨씬 쉽다”고 조언했다.

이날 돗자리에 엎드린 채 땅에 있는 작은 풀꽃을 그리던 최현이씨(28·마포구)는 “식물을 이렇게 오랫동안 들여다보니 콩벌레 지나다니는 모습, 숨은 잡초들까지 일상에 있었지만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게 새삼스럽게 보인다”며 “그날의 기분과 감상이 그림에 반영되는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나무에 기대어 편하게 앉아 있다보면 잘 그려야겠다는 욕심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된다. 복잡한 생각은 잠시 거두고 가까이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만 남긴 채 그저 이 순간 느껴지는 날씨와 풍경에 집중하는 시간. 그렇게 한두 시간은 훌쩍 지나간다.

야외 드로잉은 발길이 닿는 곳이면 어디서든 즐길 수 있다. 박 작가는 “서울은 한강 산책길만 따라가도 강바람과 햇살을 느끼기 좋고, 제주는 어디를 가도 그림이 되는 곳”이라며 추천했다.

본격적인 장마와 무더위가 찾아오기 전, 초록빛으로 차오른 이 계절을 놓치기는 너무 아쉽다. 가까운 곳도 좋다. 매일 걷던 그 길도 오늘은 다른 풍경일지 모른다. 손에 스케치북 하나 들고, 마음을 따라 발걸음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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