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들의 블루스, 그리고 뱀파이어의 기막힌 만남
(시사저널=이은선 영화 저널리스트)
또 한 편의 괄목할 만한 '블랙 블록버스터'가 탄생했다. 전 세계 흥행 수입 3억 달러를 돌파하고 북미 흥행 1위 기록을 세운 《씨너스: 죄인들》(이하 《씨너스》)이 그 주인공이다. 영화는 '록키'의 스핀오프 《크리드》(2015), 흑인 슈퍼 히어로를 스크린에 불러들인 《블랙 팬서》(2018) 등을 선보였던 라이언 쿠글러 감독의 신작이다.
그는 《똑바로 살아라》(1989) 등을 연출하며 흑인 공동체를 둘러싼 첨예한 이슈들에 대해 질문해온 스파이크 리, 《겟 아웃》(2017)과 《어스》(2019) 등 공포영화를 통해 미국에서 백인이 지운 흑인의 역사를 장르영화의 영역에 성공적으로 안착시킨 조던 필 감독의 행보를 이으며 '블랙 필름' 파워를 선보이는 동시대 연출가다.

흑인의 뿌리와도 같은 문화를 좇는 여정
《씨너스》는 1932년 미국 미시시피, 흑인들이 고된 노동 속에서 음악으로 현실의 시름을 잠시 잊던 목화밭 사이로 우리를 안내한다. 온갖 장르적 쾌감과 황홀한 음악이 버무려진 난장 속에서 만나는 흑인 커뮤니티의 역사는 그들의 중요한 뿌리를 보여주는 동시에 어느덧 동시대의 사회적 쟁점으로까지 나아간다.
흑인 쌍둥이 형제 스모크와 스택(마이클 B 조던 1인 2역)이 고향 미시시피로 돌아온다. 시카고에서 갱단 생활을 정리하고 온 이들을 둘러싸고 알카포네 갱단에서 활약했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과거 아버지를 직접 죽였다는 소문 역시 자신들을 건드리는 그 누구에게도 관용을 베푸는 법 없는 형제의 악명에 한몫한다. 이들은 돌아온 그날 즉시 흑인들을 위한 블루스 클럽 '주크 조인트'를 열 채비를 한다. 음악에 천부적 소질을 보이는 사촌동생 새미(마일즈 케이튼)도 이곳에서 공연을 올릴 참이다. 그리고 그날 밤, 초대하지 않은 손님인 뱀파이어 무리가 들이닥치며 클럽은 순식간에 피의 난장으로 변모한다.
하룻밤 사이 일어난 일이라는 점, 뱀파이어에 대항하는 이들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의 《황혼에서 새벽까지》(1998)의 변형임을 떠올리는 건 어렵지 않다. 다만 《씨너스》는 유머와 폭력을 앞세운 장르영화의 매력을 반복 재연하는 대신 흑인 공동체의 역사와 문화를 아우른다는 점에서 또 다른 지점으로 나아가려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영화에는 인종차별과 관련한 직설적 메시지보다 흑인의 영혼을 구성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 뿌리를 탐색하려는 노력이 더 짙게 깃들어 있다.
중심에 블루스 음악이 있다. 미국 남부의 목화밭에서 노예들이 부르던 노동요에서 비롯된 블루스는 미국 음악의 한 축을 건설했지만, 그 권리를 충분히 인정받지 못했던 모든 이를 위한 진혼곡이자 그들의 한과 희망이 뒤섞인 문화다. 공공기관에서 합법적 인종 분리를 시행하게 했던 법인 짐 크로 법이 성행하고, 백인 우월주의 단체 쿠 클럭스 클랜(KKK)이 여전히 암암리에 지배력을 발휘하던 시대에도 극 중 대사처럼 "흑인은 싫어해도 블루스는 좋아하는" 미국인들로 인해 전 세계로 뻗어간 음악 장르이기도 하다. 《씨너스》에서 음악은 전통이자 저항의 수단, 때론 공동체의 불경한 쾌락을 위한 장치다. 음악으로 생과 사의 경계를 넘고, 치유와 동시에 악을 불러들일 수도 있을 만큼 강렬한 목소리와 재능이기에 뱀파이어까지 끌어들였다는 설정이다.
이는 미시시피 출신의 블루스 뮤지션 로버트 존슨의 전설과도 공명한다. 1936년에 고향을 잠시 떠났던 그는 이듬해 다시 돌아와 믿을 수 없는 연주 실력을 보여주며 히트곡을 쏟아내다가 2년 후 스물일곱 살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런 그의 행보를 두고 당시 사람들 사이에서는 악마에게 영혼을 판 결과라는 소문이 파다했다. 영화는 이 사연을 느슨하게 차용한 듯하며, 실제로 극 중 갓 20대가 된 새미는 1911년생인 로버스 존슨의 또래처럼 보인다.
주크 조인트에서 새미가 공연을 펼치며 노래를 열창하는 장면에서 《씨너스》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까지 뒤섞인 초월적인 연출을 선보인다. 블루스의 열기를 타고 시대와 인종을 비롯한 모든 경계는 허물어진다. 노래를 부르며 기타를 연주하는 새미의 곁에서 흥겹게 춤을 추는 흑인들. 그 사이로 고대의 주술사들과 브레이킹 댄서와 힙합 DJ, 중국인 무희들까지 자유롭게 뒤섞이는 이 장면은 블루스가 세계 여러 음악 장르에 영향을 준 방식을 놀라운 판타지 형식으로 추적해 낸다. 열기로 채워지다 못해 공간이 끝내 불타오르는 환영은 특정한 장소보다 정신이 더 중요하다는 의미로 보인다. 공간은 불에 타 사라질 수 있지만, 음악은 계속되고 사람들은 여전히 환호한다.
아일랜드인의 정체성을 지닌 뱀파이어의 리더 레믹(잭 오코넬)의 존재 역시 의미심장하다. 그는 자신이 식민주의의 희생자이며 강요된 종교의 피해자라고 주장한다. 여기에는 아일랜드인들이 미국으로 이주했던 19세기에 종교적 이유로 백인들로부터 박해를 받았던 역사적 맥락이 존재한다. 이들은 '2등 시민'으로서 주거, 일자리 등을 놓고 미국 내 흑인들과 갈등을 겪었다. 때론 백인이라는 점을 유리하게 활용하기도 했다.
'극장용 영화'의 쓸모를 담으려는 노력 돋보여
극 중 살아있는 존재의 피를 흡혈하는 뱀파이어는 흑인의 문화를 착취한 백인의 존재를 어렵지 않게 연상시킨다. 뱀파이어 무리는 클럽 밖에서 모두가 평등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는 달콤한 가치를 설파하며 사람들을 모으지만, 실은 가당치 않은 얘기다. 결국 《씨너스》의 뱀파이어 서사는 백인 중심의 미국이 흑인 문화와 커뮤니티를 어떤 방식으로 흡혈, 즉 착취하고 실현될 수 없는 사회적 평등을 설파했는지를 보여주는 장치인 셈이다.
뮤지컬 장르만큼이나 음악에 공을 들인 음악영화이자 스펙터클을 강조한 블록버스터, 멜로부터 호러까지 장르가 총망라된 롤러코스터 같은 이 영화의 매력을 하나로 규정하기란 불가능하다. 짧지 않은 데다 두 개나 붙은 쿠키 영상은 해석의 재미를 마지막까지 극적으로 끌어올린다. 동시에 과거뿐 아니라 지금까지도 이어지는 전 세계의 혐오와 차별, 폭력을 꼬집는 《씨너스》는 블록버스터의 방식 안에서 사회적 이슈를 접목하는 세련된 방식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새로운 이정표가 될 만하다. "하나의 영화에 애피타이저, 스타터, 메인 요리와 디저트까지 즐길 만한 모든 것을 담고 싶었다"는 감독의 의지에 과연 부합한 결과물이다.
스트리밍이 모든 것을 집어삼킨 듯한 시기에 여전히 '극장용 영화'의 쓸모와 필요를 고민한 작품이기도 하다. 《씨너스》는 가장 넓은 화각을 보여주는 기종인 IMAX 카메라와 울트라 파나비전 70 카메라를 조합해 65mm 필름으로 촬영했다. 화면 비율이 1.43:1, 2.76:1로 교차 반복되는 이유다. 이 중 울트라 파나비전 70은 비스타비전, 시네마스코프와 함께 TV의 확산이 영화 산업을 위협하던 시기에 극장 스크린을 위해 탄생했다. 집에서 작은 화면으로 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경이로움을 선사하며 관객들을 극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한 방책 중 하나였다. 극장에서 영화를 보는 즐거움을 잊지 말자는 절규에 가까운 호소 역시 《씨너스》의 중요한 정체성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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