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우의 쓱크랩북] 낙방, 또 낙방, 그 다음에 찾아온 감격의 통지서… 장현진이 누구야? 꿈이라는 낭만을 믿는 청년

[스포티비뉴스=인천, 김태우 기자] 아버지는 급한 일을 제쳐두고 찾아오시겠다고 했다. 아들은 누가 봐도 실망스러운 성적표를 내밀기 주저했다. “네가 잠실야구장에서 뛰는 것이 꿈이다”고 자랑스러워하던 아버지 앞에서, 결국 아들은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책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격려하며 힘든 아들의 손을 꼭 잡아줬다. 돌아보면 인생의 터닝포인트였다.
최근 SSG와 육성선수 계약을 하고 유니폼을 입은 내·외야 멀티플레이어 장현진(21)은 사실 야구로 성공한 경력보다는 뭔가 실패하고 낙방한 경력이 더 많은 선수다. 서울고 3학년 시절 좋은 활약을 선보이기는 했지만 202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보통 다른 선수들은 대학 진학을 해 훗날을 도모하지만, 장현진은 그조차도 잘 풀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장현진은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하고 바로 다음 날이 (대학 입학) 자기소개서 제출 마감일이었다. 자기소개서를 내고 실기까지 다 봤는데 그것도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고 솔직하게 말했다. 한 2년제 대학교에서 입학 제안이 왔고 사실상 그것이 마지막 선택지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여기서 장현진의 인생 경로를 다른 친구들과 바꿔버린 결정의 시간이 왔다. 주위에서 일본 독립리그 야구단 입단을 추천했다. 생소한 경로였다.
처음에는 반신반의였다. 장현진은 “너 정도 방망이면 가서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고 하셨다. 하지만 처음부터 가려고 마음먹고 일본에 간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일단 테스트를 보는 것은 나쁘지 않다는 생각으로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런데 그날 합격 통보를 받았다. 정신없이 시간이 지나갔고, 정신을 차려보니 일본 독립리그 도쿠시마 인디고삭스 유니폼을 입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고, 돌아보면 운명과 같은 일이었다.
그랬던 선수가 프로 유니폼을 입었으니 뭔가 그 사이 빛나는 시간이 있었을 것 같지만, 장현진은 그것도 아니었다고 돌아봤다. 일단 언어와 싸워야 했다. 일본어는 못했다.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그것도 누가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일상생활, 그라운드에서 언어부터 습득하기 위해 싸워야 했다. 야구 용어는 비슷하다고 하지만, 뭔가를 세심하게 배우고 또 묻기 위해서는 언어 장벽부터 넘어야 했다. 그 시간이 6개월 걸렸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은 자연스럽게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불렀다. 가뜩이나 혼자 사는 신세였다. 이방인이었고, 경기장을 떠나면 외톨이였다.

장현진은 “부모님도 안 계시고 기숙사도 아니었다. 혼자 월세 방에 살았다. 첫 해는 탈모도 오고, 우울증도 오고 그랬다”고 했다. 야구 실력도 잘 늘지 않는 것 같았다. 장현진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배우고 싶은 게 있는데 말을 못 하니까 알려달라고 할 수도 없고, 처음에는 영어로 하다가 힘들어서 야구는 뒤로 미뤄두고 언어부터 먼저 공부해야 했다”고 했다. 낮에는 방망이를 들고, 밤에는 일본어 교재를 들고 싸웠다.
그렇게 어렵게 적응해 나갔지만 시련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2023년 8월 열린 2024 KBO 신인드래프트 트라이아웃에 참가 신청서를 냈다. 훗날 황영묵(한화), 진우영(LG)과 같은 지명생들을 낳은 그곳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11라운드 전체 바퀴가 도는 동안 장현진의 이름은 불리지 않았다. 너무 큰 좌절이었다. 장현진은 “준비 기간 동안 정말 열심히 했다고 생각했는데 또 못해서 떨어졌다. (독립리그 팀으로) 복귀하고 나서도 성적이 그렇게 좋지 못했다. 멘탈적으로 많이 흔들렸다”고 두 번째 좌절 후를 되돌아봤다.
그때 아버지는 예정됐던 출장도 취소하고 아들을 찾았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를 보며 마음을 다잡았다. 장현진은 “그때 조금 힘들어서 많이 울었다. 그런데 그게 오히려 동기부여가 됐었다. 두 번 떨어졌다.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언젠가 돌아갈 때까지 해보자고 마음을 먹었다”고 말했다. 어차피 더 떨어질 곳은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편했다. 그러자 반전이 찾아왔다.
일본에서 1년을 그냥 보낸 게 아니었다. 시련을 겪으면서 마음에는 굳은살이 생겼고, 일본의 트레이닝 시스템을 이 악물고 충실하게 따라하다 보니 몸에 힘이 붙었다. 어느덧 한국을 떠날 때보다 10㎏이 불어 있었다. 타구가 계속 더 멀리 날아가는 것을 느꼈다. 장현진은 “아버지는 내가 잠실야구장에서 뛰는 것이 꿈이라고 하셨다. 그것은 지켜드리고 싶었다. 이렇게 많이 받았으니까 나도 그건 지켜드려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서 버텼다”고 말했다.

그렇게 묵묵하게 방망이를 휘두르면서 기회를 기다렸고, 일본 독립리그에도 꾸준히 레이더를 돌리고 있던 SSG가 장현진에 육성선수 입단을 제안했다.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장현진은 “작년에 시라카와 케이쇼(전 SSG·두산)와 같은 팀이라서 KBO리그 구단 관계자분들이 많이 와서 보셨다. 다만 이야기만 하고 가셔서 그런 식일까 그냥 열심히만 하고 있었는데 잘 봐주셔서 이렇게 빨리 오게 됐다”고 설명했다. 예전의 어두웠던 이야기를 차분하게 풀어놓던 장현진의 얼굴에는 그때서야 미소가 떠올랐다.
SSG는 장현진에 대해 “시라카와를 영입할 때부터 장현진을 눈여겨봤고 꾸준히 관찰했다. 일본 독립리그와 NPB 웨스턴리그에서 시속 150㎞ 이상의 빠른 공에 잘 대응했고 좋은 타구를 만들었다. 주루 센스와 수비 능력도 고르게 갖췄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야 1·3루, 코너 외야까지 소화할 수 있는 멀티 포지션 자원이며, 송구와 주력도 우수하다”면서 “장현진의 일본 야구 경험과 절실한 태도, 성장 가능성에 주목했고 내·외야를 소화할 수 있는 유틸리티 자원 확보를 통해 야수 전력을 강화하고자 이번 영입을 추진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정신없이 일본으로 갔다면, 또 정신없이 한국으로 왔다. 장현진은 “너무 급하게 왔다. 집에 아직 이삿짐이 있다. 야구만 할 수 있도록 챙겨서 왔다”고 웃어보였다. 이발도 깔끔하게 했고, 인천SSG랜더스필드에 와 시설도 보고 이숭용 감독과 인사도 나눴다. 모든 것이 꿈만 같은 일이지만, 기분을 낼 시간은 없다. 아직 정식 선수도 아니다. 지금부터 다시 시작이다. 정말 각고의 노력 끝에 얻은 기회다. 그래서 꼭 잡고 싶다. 자신도 있다.
장현진은 “똑같이, 변하지 않을 것이다. 여기는 더 좋은 환경이니 잘 이어 갈 수 있도록 하겠다”면서 “솔직히 고등학교 때 잘하는 선수는 아니었다. 열심히 하는 선수였다. 이제는 프로니까 잘해야 한다. 잘해서 여기서 뛰어야 한다. 지명을 받고 입단한 친구들에게 지지 않겠다. 친구인 (김)서현이를 비롯해 좋은 선수들이 많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들어올 때 조금 다른 것이지 들어와서는 다 똑같이 시작한다고 생각한다. 악바리처럼 지지 않고 내 야구를 하며 잘 올라가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년 반 동안 품었던 간절함을 잘 유지한다면, 어느덧 먼저 출발한 동기들 옆에서 뛰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SSG 담당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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