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단 55년 만, 역사적 합의" 남북 정상, 평양서 두 손 맞잡았다[뉴스속오늘]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선언 도입부에서 남북 정상은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 6월13일부터 6월15일까지 평양에서 역사적인 상봉을 했고 정상회담을 가졌다"고 썼다.

이어 두 번째 항목에서 통일 방안을 담았는 데 합의 과정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고 한다. 결과적으로 담은 내용은 "남과 북은 나라 통일을 위한 남측 연합제안과 북측 낮은 단계의 연방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이어 세 번째로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에 합의했다.
또한 "경제협력을 통해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 분야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해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했다"는 내용을 합의문에 명시했다.
이어 "이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해 이른 시일 안에 당국 사이 대화를 개최하기로 했다"는 내용이 마지막 다섯 번째 항목으로 기록됐다.

또한 김대중 당시 대통령은 당선 직후부터 남북정상회담을 제안하며 북한과 대화, 협력을 위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인도적 지원을 확대하고 대북 포용 정책을 추진해 남북관계에 긍정적인 분위기를 형성했다.
이어 2000년 3월9일 독일 베를린에서 한반도 냉전을 종식하고 평화공존을 이루기 위해 남북간 화해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겠다는 내용의 '베를린 선언'을 발표했다. 또한 이후 박지원 당시 문화부장관 등을 통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하면서 남북정상회담의 기반을 마련했다.

6·15남북공동선언의 후속 조치도 꽤 의미 있게 진행됐다. 실무회담을 통해 이산가족방문단을 교환했고 남북 경제협력추진위원회가 구성됐다. 장관급 회담 등을 통해 대화도 지속됐다. 분단으로 끊겼던 경의선, 동해선 연결을 위한 복원공사도 시작됐다. 또한 경제협력과 관광교류를 위해 금강산 특구를 개방했는데 2008년 7월 남한 관광객 피격 사망 사건이 벌어지면서 중단됐다.
또한 2007년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 당시 위원장, 2018년 문재인 당시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 등 남북정상회담이 계승되는 성과를 낳았다. 다만 부시 행정부 출범, 북핵 문제 등으로 남북관계가 계속해서 경색되면서 현재는 6·15남북공동선언과 남북정상회담이 역사적 사건으로 남게 됐다.
양성희 기자 yang@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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