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서울’ 속 그 청년의 속사정

한겨레21 2025. 6. 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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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기획]스펙 딱지·비정규직 불안 등 청년 고통…섣부른 공감 넘어 ‘되어보기’ 통해 ‘실감’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미래는 미지가 되고, 미지는 미래가 되어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의 삶을 매개로 자신을 들여다본다. tvN 제공

*이 글은 ‘미지의 서울’의 전개 및 주요 장면에 대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카페에서 뜨개질하는 여자를 봤다. 평소 같았으면 ‘아, 부럽다. 한낮에 카페에서 뜨개질이라니!’ 같은 생각이 성급하게 떠올랐을 테지만, 이번엔 달랐다. 티브이엔(tvN) 드라마 ‘미지의 서울’에서 유미지(박보영 1인2역)가 한 말이 생각났다. “지나간 일을 생각해봤자 후회뿐이고 닥칠 일은 생각해봤자 불안‘하기만 하”니까 “한코 한코 뜨면서 오늘 하루만 버티는 거야.” 저 사람도 혹시 그런 마음일까? 물론 내 오해일 수 있다. 그냥 뜨개질이 좋아서, 혹은 누군가에게 줄 선물을 만드느라 바쁜 손놀림일 수도 있으니.

미래가 된 미지, 미지가 된 미래

누구와도 유대감을 가질 수 없고 서로를 감시하는 듯한 미래가 일하는 사무실의 전경을 카메라는 자주 비춘다. 청년세대가 묵묵히 견뎌온 일이 부당하고 고통스러운 일임을 일터도 말하고 있다. tvN 제공

카페에서 뜨개질하는 누군가의 평온한 낮도 해석과 실제가 다를 수 있듯, 인간세계는 생각보다 복잡한 곳임을 체감하곤 한다. 비슷한 삶을 사는 것 같지만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하고, 각자의 불안을 끌어안고선 서로를 조금씩 부러워하며, 어설픈 이해와 완벽한 오해 사이를 오가며 산다. 그 사람이 돼보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투성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보이는 것만 보며 다 아는 것처럼 굴 때가 많다. 유미래와 이호수(박진영)에 관해 잘 알지도 못하면서 ‘사귄다’고 확신한 친구들처럼. 사실은 동성애자인 송경구(문동혁)가 미지의 ‘전남친’으로 알려진 것처럼. ‘미지의 서울’은 그런 인간의 복잡한 사정을 두루 헤아리는 드라마다.

미래와 미지는 일란성쌍둥이지만 얼굴만 같을 뿐 성격과 취향, 삶의 궤적 등 모든 게 다르다. 미래의 일상은 평범해 보이지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직장을 그만두지 못한 채 죽은 듯 산다. 미지는 ‘유캔디'라 불릴 정도로 쾌활하지만 매일 아침 “어제는 끝났고 내일은 멀었고 오늘은 아직 모른다”는 말을 주문처럼 외야 집을 나설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러던 어느 날, 미지는 미래에게 반찬을 가져다주기 위해 서울에 갔다가 미래의 사정을 알게 된다. 미래에게 미지는 말한다. “관두지도 말고, 버티지도 마. 대신 해줄게. 내가 너로 살게. 넌 나로 살아.” 그렇게 미지는 미래가 되고, 미래는 미지가 된다.

미래가 된 미지는 어떤 미래를 볼까? 심장병을 가지고 태어난 미래는 자신 때문에 고생한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어릴 때부터 뭐든 알아서 척척 잘했다. 공부마저 잘해 고시 공부를 하지만 실패를 거듭하다 공기업에 들어간다. 남들 눈에는 부러워할 만한 직업이 미래에게는 ‘실패'의 결과인 셈이다. 미지는 미래가 되고 나서야 부러움의 대상이던 미래가 감당해온 삶의 무게를 짐작하게 된다.

미래가 본 미지의 세계는 어떨까? 미지는 “흙을 퍼먹어도 건강”한 아이로 여겨졌지만, 아프고 공부도 잘하는 미래에게 밀려 소외감을 안고 살았다. 달리기를 잘해 육상선수가 되어 “미래의 미지”가 아닌 미지 자체로 주목받았지만, 뜻밖의 사건으로 꿈이 좌절돼 3년간 은둔할 정도로 깊은 상실감과 두려움을 경험했다. 남들 눈에는 쉽게 인생을 사는 것으로 보였던 미지는 주변의 무시를 ‘밝음'으로 받아내며 ‘오늘만 견디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다. 미래는 미지가 되고 나서야 미지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삶을 매개로 자신을 들여다본다.

SNS 바깥에 존재하는 청년의 사정

앞집에 사는 이호수(박진영 분)도 미래와 미지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tvN 제공

앞집에 사는 이호수도 미래와 미지에게 중요한 인물이다. 호수는 사춘기 때 교통사고로 아버지를 잃었다.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왼쪽 청력을 잃고, 왼쪽 팔에 화상 흉터가 생겼고, 왼쪽 다리 3분의 1은 인공뼈를 박은 채 살게 됐다. 고통에 고립돼 살던 호수를 끄집어낸 건 미래와 미지였다. 미래와는 ‘아픈 몸'이라는 공통점을 공유하며 서로를 배려했고, 미지와 호수는 서로의 닫힌 문을 열어준 친구다. 미래와 미지를 단박에 구별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외할머니 강월순(차미경)도 마찬가지다. 월순은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미지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할머니가 이렇게 눕고 나서야 미지 마음을 알았어. 늙은 나도 이렇게 무서운데 얼마나 무섭고 힘들었을까.” 미래와 미지, 호수와 월순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말’로써가 아니라 ‘되어보기'의 경험을 통해 서로를 더 깊이 이해한다는 것이다.

“살자고 하는 짓은 다 용감한거”라며 미지를 다시 세상으로 나오게 한 월순의 말은 미지뿐 아니라 청년세대를 향한 ‘되어보기’의 언어다. 드라마는 공기업 정직원 미래와 백수로 취급되는 미지라는 사회적 라벨 너머에 있는 청년과 ‘인스타그래머블’한 세계 바깥에 존재하는 청년의 사정을 미지와 월순의 대화를 통해 이해하게 한다. 반면 미지를 향한 엄마와 동네 사람들의 충고는 미지를 위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의 삶을 존중하지 못하는 말들이다.

미래와 미지를 유일하게 구별하는 존재 외할머니 강월순은 갑작스러운 뇌경색으로 쓰러진 뒤 미지의 고통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된다. tvN 화면 갈무리

드라마는 같은 공간에 있어도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향한 시선과 대우가 어떻게 다른지도 현실감 있게 보여준다. 미래와 미지의 동창이자 호수를 짝사랑하는 박지윤(유유진)은 겉으로는 자기 일을 사랑하는 당찬 커리어우먼이지만, 계약 종료를 앞둔 비정규직이다. 직장에서 은근한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불안정한 내면에 열등감을 품고 산다. 미래가 일하는 공기업에서는 성과 가로채기와 직장 내 괴롭힘이 구조적으로 행해지고, 성희롱은 은폐된다. 피해자가 도리어 괴롭힘을 당하지만 누구도 나서서 바로잡으려 하지 않는다.

미래와 미지의 동창이자 호수를 짝사랑하는 박지윤(유유진)은 겉으로는 자기 일을 사랑하는 당찬 커리어우먼이지만, 계약 종료를 앞둔 비정규직이다. 직장에서 은근한 차별과 멸시를 당하며 불안정한 내면에 열등감을 품고 산다. tvN 화면 갈무리

카메라는 그런 미래가 일하는 사무실의 전경을 자주 보여준다. 누구와도 유대감을 가질 수 없고 서로를 감시하는 듯한 자리 배치를 통해 청년들이 조직 사회를 쉽게 떠나는 이유를 시각화했다. ‘요즘’ 청년들이 나약하고 편한 것만 찾아서가 아니다. 이런 사회에서는 ‘나’로서 존중받으며 공존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드라마는 미래와 미지가 서로의 인생을 대신 살게 하며 청년세대가 묵묵히 견뎌온 일이 사실은 부당했음을, 고통스러울 수밖에 없다는 걸 명확히 보여준다.

전형성에 갇히지 않은 입체적 인물들

우리 사회가 청년들을 스펙과 성과로만 재단하거나 저마다의 편견이나 필요에 기대어 문제적 인간으로 호명할 때 드라마는 청년들이 왜 뜨개질을 하는지, 어떤 심정으로 방에서 나오지 않는지 보여준다. 미지의 ‘은둔’과 ‘뜨개질’은 청년세대가 겪는 정서적 고립감과 현실적 막막함을 대변한다. 그래서 ‘되어보기’가 이 드라마에서 중요하다.

‘미지의 서울’이 특별한 건 기존 힐링 서사와 다른 접근 방식 때문이다. 대부분의 힐링 서사는 공감에 기댄다. 주인공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의 성장과 회복을 지켜보며 대리만족을 얻는 구조다. 시청자는 안전한 거리에서 타인의 고통을 관찰하고 위로받는다. 하지만 이런 공감은 종종 피상적이다. 진정한 이해 없이 “나도 그래”라며 쉽게 동일시하거나 “그래도 나보다는 낫네”라며 상대적 위안을 얻는 데 그치기 쉽다.

미래는 미지가 되어봄으로써 미지가 주변의 무시를 ‘밝음\'으로 받아내며 ‘오늘만 견디는\' 마음으로 살고 있었음을 이해하게 된다. tvN 제공

‘미지의 서울’ 속 ‘되어보기’의 극적 실천, 삶의 교환이라는 설정은 공감을 넘어 ‘실감'하게 한다. 미래와 미지는 서로의 삶을 단순히 이해하는 게 아니라 몸소 살아낸다. 미지는 직장에서 괴롭힘당하는 미래의 심정을 미래의 증언을 통해 상상으로 짐작하는 게 아니라 실제 그 자리에 앉아 모욕을 당하고 무력감을 경험한다. 동시에 미래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를 개선하려 애쓴다. 미래 역시 미지가 ‘밝음’으로 얼마나 많은 무례와 상처를 견디고 있는지 몸소 경험하며 미지와는 달리 애써 웃어주지 않거나 엄마의 말에 논리적으로 반박함으로써 자신을 보호한다.

나아가 드라마는 사회적 구분과 정체성의 경계를 허문다. 미래와 미지의 삶의 교환은 나와 너, 성공과 실패, 부러움과 연민, 대도시와 농촌, 정규직과 비정규직, 이성애와 동성애 등의 구분과 경계를 허문다. 경계가 허물어지니 인물들의 복잡성이 부각된다. 미래와 미지뿐 아니라 지윤과 경구도 보이는 게 다가 아닌 복잡한 사정이 있다. 또한 한국대 사회학과 출신 시인이자 ‘로사식당’ 건물주인 김로사(원미경)에게도 피치 못할 사연이 있고, ‘성공한 장애인’으로 알려진 변호사 이충구(임철수)는 그간 미디어가 재연한 장애인을 더 입체적으로 재현하며 인물의 이면을 보여준다. 드라마의 이런 인간 이해 방식은 타인과 나를 더 너그럽게 이해하는 단서를 제공한다.

왜 하필 미지의 ‘서울’일까

서울에서 미래가 되어 호수를 만난 미지. tvN 제공

그런데 제목이 왜 하필 미지의 ‘서울’일까? 서울은 우리가 가장 잘 안다고 여기는 도시지만, 그 속에 살아가는 개인들의 진짜 이야기는 익명이라는 이름에 감춰지고 통계 수치로 뭉뚱그려진다. 그래서 서울은 여전히 ‘미지'의 공간이다. 기회의 땅으로 여겨지는 서울 한복판에서도 누군가는 뜨개질로 하루를 버티고, 공기업 정직원도 직장 내 괴롭힘을 당하며 무력감에 시달린다. 좁다면 좁고 넓다면 넓은 ‘서울’로 표상된 삶의 공간에서 우리는 과연 우리를 잘 알고 있을까? 미래와 미지처럼 돼보지 않고서는 모르는 각자의 사정이 존재함을 이해하기만 해도 서로에게 조금 더 너그러워질 수 있지 않을까?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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